◇정다운>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취임 1년을 맞았죠. 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용산시대를 열었는데, 그 명분이 '국민과의 소통 강화'였습니다. 그래서 취임 초반에는 '도어스테핑'으로 불리는 출근길 문답도 하고,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하면서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6개월여만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올 초 신년 기자회견도 생략했고,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기자회견을 회피하나? 권영철 대기자의 [어게인 Why뉴스]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권영철> 안녕하세요.
◇정다운> 어제가 취임 1년이었는데 기자회견 없이 넘어갔거든요. 조만간 할 수 도 있나요? 안하는 건가요?
◆권영철> 이 질문은 지난 2일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윤 대통령과 오찬 간담회를 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답은 하겠다. 안하겠다가 아니라, "기자회견이 될지 간담회가 좋을지 홍보수석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취임1주년인 어제(10일) 기자실을 깜짝 방문해서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습니다. 기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드실 의향이 있냐고 물었더니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정다운> 그래서, 한다는 건지 안한다는 건지 아리송한데요?
◆권영철> 안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기 싫다는 걸 완곡하게 표현한 걸로 보시면 될 겁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일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서 뭐를 했고 뭐를 했고 하는 그런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해 놔서, 여러분과 그냥 이렇게 맥주나 한잔하면서 얘기하는 그런 기자 간담회면 모르겠는데, 무슨 성과 이래 가지고 자료를 쫙 주고서 잘난척하는 그런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고,"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5월 2일 간담회도 윤 대통령이 처음부터 참석하기로 한 공식 행사가 아니라 김대기 비서실장과 조태용 안보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진과 출입기자 간담회로 예정됐었는데 대통령이 깜짝 참석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취임 1주년인 어제도 기자실 방문 30분 전에서야 기자들에게 통보가 됐다고 합니다.
연합뉴스◇정다운>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기자회견을 몇 번 했죠?
◆권영철> 지난해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은 제외하고요. 올 신년기자회견은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로 대체했고,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시사와 같은 민감한 사안은 외신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정다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한 명분이 '국민과의 소통' 아니었나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자주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왔습니다. 지난해 3월 10일 당선인 첫 기자회견 때의 발언 들어보시죠.
2022.3.1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첫 기자회견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윤 당선인은 특히 대통령실 이전 공약을 상기시켰는데요, 그 대목도 들어보시죠.
2022.3.2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용산 이전 발표 기자회견
"청와대는 본관과 비서동이 분리되어 있어 대통령과 참모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 특히, 청와대 공간의 폐쇄성을 벗어나 늘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자 약속 드린 것입니다." ◇정다운> 소통을 어떻게 강화하겠다, 방법에 대해서도 직접 답변했었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기자회견 당시 기자가 어떻게 소통할거냐고 질문했는데, 질의응답 들어보시죠.
2022.5.1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소감발표 후 질의응답
-기자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달라."
=윤석열 "기자들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 (박수소리)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 대통령실 제공◇정다운> 실제로 초반에는 기자들 앞에 자주 서지 않았나요?
◆권영철> 윤 대통령이 밝힌대로 초반 6개월은 기자들 앞에 자주 섰습니다. 처음으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이라는 형식으로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틀째였던 5월11일부터 11월18일까지 192일간, 61차례의 출근길 문답을 진행했습니다.
청와대는 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이 별도로 분리돼있어서 대통령을 만나는 게 1년에 한 두 차례 정도였던데 비해,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이 한 건물에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정다운> 그런데 왜 출근길 문답도, 신년기자회견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사라진 걸까요?
◆권영철> 표면적인 이유가 있고, 속사정이 있습니다.
◇정다운> 먼저 표면적인 이유는요?
◆권영철> 첫 번째는 취임 1년이라고 거창하게 성대하게 하는 모습보다는 민생과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이미 여러 차례 했다는 겁니다. 4월에 한미정상 공동기자회견, 5월에 한일정상 공동기자회견, 그리고 지난 5월 2일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를 했다는 겁니다.
◇정다운> 그건 윤 대통령이 혼자 언론 앞에 나서서 허심탄회하게 소통을 하는 그런 기자회견과는 좀 다르지 않나요?
◆권영철> 의미가 다르죠, 그렇지만 내용은 차치하고 외견상 이미 했다는 거겠죠?
세 번째는 역대 대통령들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잘 안했다는 겁니다.
◇정다운> 실제로 그런가요?
◆권영철> 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동안 신년 기자회견 4번, 취임일을 기준으로 한 기자회견 4번, 국민과의 대화 2번이 전부였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했지만, 국민과의 소통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불통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1주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질문지를 사전에 받아서 논란이 됐습니다만 하긴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100일, 1994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기자회견 횟수가 150회에 이를 정도로 수시로 기자회견과 토론을 했습니다,
◇정다운> 그럼 표면적 이유 말고 기자회견을 안 하는 속사정은 뭘까요?
◆권영철> 첫 번째는 윤 대통령의 소통 스타일과 맞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정다운> 윤 대통령의 소통 스타일이 어떻기에요?
◆권영철> 최근 몇 차례 윤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이해가 갈 겁니다. 윤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1주년을 맞아 국무위원, 여당 지도부와 함께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했습니다. 오찬 직후에 여당지도부와 함께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보셨죠?
5월 2일 출입기자단과 오찬간담회를 했는데 사전 예고가 없었고, 행사장에서도 헤드테이블에서 간사단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했습니다. 이 대화내용이 기자단에 공개됐고요.
4월 6일 부산의 한 횟집에서 부산 지역 국회의원,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등과 만찬을 한 뒤 참석자들이 도열해서 악수를 하는 모습 기억나시죠? 좋게 표현하자면 격의 없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모습이고요, 비판적으로 보자면 의례적인 격식 있는 자리는 불편해 한다는 겁니다.
◇정다운> 근데 일반인이면 격식 차리는 것 싫다, 이해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잖아요. 껄끄러워도 소통해야 할 의무가 있을텐데요. 그런데 제 기억엔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엔 언론과 굉장히 가깝지 않았나요?
◆권영철> 90년 중반 평검사 시절부터 윤 대통령을 봤습니다만, 검사시절에는 언론과 자주 소통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도 잘했고요, 전화를 걸면 늦게라도 응답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검사시절 소통과 대통령의 소통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검사시절 소통은 주로 수사하는 사건과 관련한 것이거나 검찰 내 현안과 관련된 일이 질문이었다면, 대통령이 된 뒤에는 질문의 내용도 외교, 안보, 국방, 경제, 복지, 인사, 등등 분야도 다양하고, 내용도 복잡하고, 답변에 따른 파장도 훨씬 크지 않습니까? 특히, 답변을 잘못하거나 말실수가 나오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파장이 일기도 합니다. 여기에 답변하기 싫은 귀찮은 질문도 감내해야 하니까요.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너무 많으면 대화하기도 어려우니까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자리를 한번, 인원이 적어야 김치찌개도 끓이고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기자회견보다는 친근하면서 좌중을 끌어가는 그런 자리를 선호한다는 걸 스스로 밝힌 대목입니다.
연합뉴스◇정다운> 속사정이 또 있나요?
두 번째는 이른바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는 논란 이후 언론과 거리두기에 나섰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분석입니다. 윤 대통령이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만남을 한 뒤 나오면서 한 발언을 보도한 게 문제가 된 겁니다. '국민듣기 평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논란이 확산됐죠.
특히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이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최초로 보도한 MBC를 겨냥했고 이후 MBC에 대한 여권의 집중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특히 출근길 문답에서 MBC 기자의 항의성 발언이후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을 중단했고. 신년기자회견도, 취임1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은 겁니다.
◇정다운> 그게 국민과의 소통을 중단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가요?
◆권영철> 중대한 사인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빌미가 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 속담에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출근길 문답에서 말실수로 폐지여론이 높았고, 윤 대통령도 대통령실의 용산이전에 대한 명분을 얻은 만큼 폐지하고 싶었을 수 있는데, MBC 기자가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겁니다.
윤 대통령이 검사시절 자신은 '소신 있는 강골 검사'라는 말을 들었지만, 후배들이 그렇게 하는 건 용납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정다운> 그래도 국민과의 소통을 이렇게 계속 외면 할 수는 없을 텐데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그제(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정원동력은 소통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들어보시죠.
2023.5.9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 中 박광온 원내대표
"국정의 원동력은 소통에 있습니다. 도어스테핑도 신년기자회견도 1주년 기자회견도 없었습니다.…국민과 소통하지 않으면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낮은 자세로 언론과 소통하고, 야당과 소통하고, 국민과 소통하길 바랍니다." 긴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100일 기자간담회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자주 여러분 앞에 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들어보시죠.
2022.8.17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언론인 여러분 앞에 자주 서겠다고 약속 드렸습니다. 질문 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다운> 취임 초반에 이렇게 정말 수차례에 걸쳐 소통을 강조했는데, 윤 대통령 특유의 그 격의 없는, 털털한 소통 빨리 재개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