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홍준표 대구시장을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하면서 당이 내홍에 휩싸였다. 애초 무리수를 두며 전당대회 룰을 '당심 100%'로 바꿀 때부터 전광훈과 같은 극우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던 만큼 '전광훈 리스크'는 예견된 후유증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여전히 당에서 '전광훈 세력'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전광훈과 절연해야 한다"며 쓴 목소리를 내 온 홍 시장에게만 징계성 조치가 내려지자 '전광훈 실세설(說)'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지도부는 "전광훈은 우리 당원도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전광훈 추천'으로 들어온 당원들부터 전부 탈당시키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전광훈을 당 핵심으로 끌어들인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를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심 100%' 변경해 '전광훈 리스크' 자처한 與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전광훈 리스크'는 전당대회 룰을 '당심 100%'로 변경하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시절 황교안 대표 때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 전광훈씨 측에서 입당 시킨 책임당원 숫자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황 전 대표도 최근 "전씨 측에서 수십명 공천 요구를 해왔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실제 '아스팔트 보수'라 불리는 강성 보수층에서 전씨 영향력은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너알아TV'의 구독자가 46만명을 넘어섰고, 대표를 맡고 있는 자유통일당 당원 숫자도 약 15만명(2021년 기준)에 육박한다. 이번 전당대회 기준 국민의힘 책임 당원이 약 78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보수 전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씨는 지난해 말부터 유튜브 채널 등을 중심으로 '국민의힘 점령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한 지역 당협에만 '추천인 전광훈'이라 적힌 입당원서가 하루 700장 들어왔다고 한다.
정치평론가인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지난 12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전광훈 목사가 자유통일당 대표를 하고 있지만 태극기 부대 등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강경 지지층이 국민의힘에 입당,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유지가 되고 있다"며 "(전씨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민의힘 당원 숫자는) 최소 10만명에서 한 30만명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당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 책임"이라며 "지난해부터 당을 100% 장악하려고 전당대회 룰을 바꾸고 이 사람 저 사람 주저앉히고 그러지 않았나. 대통령 의중에 따라 벌어진 일이고, 김 대표와 지금 최고위원들도 윤 대통령 의중에 따라 당원 100%로 선출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고위원들이 5·18 관련, 전광훈 목사 관련, 밥 한 공기 관련, 제주 4·3 관련 실언을 했는데, 그럴 사람들인 줄 모르고 뽑았나"라며 "(당을) 이렇게 만든 건 윤 대통령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전광훈 추천' 쳐낼 수 있을까…"현실적으로 어려워"
박종민 기자당내에선 내년 총선을 위한다면 전광훈 세력을 일찌감치 끊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지도부는 "전광훈은 우리 당원도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행태만 보이고 있다. '추천인 전광훈'이라 적고 입당한 당원들부터 전수 조사해 '이중당적'을 이유로 탈당 등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정당법상 이중당적은 불법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2개 이상 정당에 당적을 동시에 보유할 수 없도록 한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만약 이중당적으로 적발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현재 전씨는 자유통일당의 실질적인 대표로 알려져 있다. 전씨가 실제 자유통일당 당원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씨 지시에 따라 국민의힘에 가입한 이들은 자유통일당과 이중당적일 가능성이 높다.
하태경 의원은 이달 초 SBS 라디오에 출연해 "전광훈 세력과는 완전히 선을 그어야 한다. (전광훈 측과 연대하면) 우리 당에 미래가 없다"며 "실제로 전광훈 세력이 당에 많이 들어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는 전광훈 측 당원들이 이중당적자"라며 "전광훈 정당이 따로 있다. 전광훈 측 이중당적자들 전수조사해서 다 출당시켜야 한다, 전광훈 측 당원은 추천자에 '전광훈'이라고 쓰여 있으므로 조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중당적자를 조사하려면 양당의 당원 명부를 대조해봐야 하는데, 강제수사가 아닌 이상 어렵기 때문이다. 혹여 수사가 시작되더라도 '정치 자유 침해' 등 이유로 수사기관이 당원 명부를 확보하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무감사에서 점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추천인을 보고 (전씨 측) 규모를 추산하는 것만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洪 해촉에 "순서 잘못" 비판…전광훈에 먼저 '손절' 당한 與
문제는 "전광훈과 절연해야 한다"며 지도부를 향해 쓴 목소리를 내 온 홍준표 대구시장을 돌연 상임고문직에서 해촉시켰다는 점이다. 당 일각에선 김재원 최고위원이나 전광훈 측에 대한 징계가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순서가 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앞서 김 대표는 1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홍 시장을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하기로 결정했다. 김 대표는 "우리 당 상임고문의 경우 현직 정치인으로 활동하거나 현직 지자체장으로 활동하는 분은 안 계신 것이 그간 관례였다. 그에 맞춘 정상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홍 시장이 연일 전광훈 사태와 관련, 당 지도부를 향해 쓴 목소리를 낸 것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홍 시장은 김 최고위원의 '전광훈 찬양' 발언 등을 문제 삼으며 이에 대한 당 지도부의 조치가 김 최고위원의 '셀프 자숙'에 불과하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김 대표를 향해선 "살피고 엿보다가 끝나는 판사식 정치", "(전씨를)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스스로 추켜세웠으니 그 밑에서 잘해 보시라" 등 저격하기도 했다.
이어 김 대표가 "지방자치 행정을 맡은 사람은 그에 전념했으면 좋겠다"며 반격하자, 홍 시장은 "나는 그냥 대구시장이 아니라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내고, 없어질 당을 바로 세운 유일한 현역 당 상임고문이다. 중앙정치에 관여할 권한과 책무가 있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결국 김 대표는 홍 시장을 해촉한 당일 최고위 공개 발언에서 "지도부를 두고 당 안팎 인사들의 과도한 설전이 도를 넘고 있다"며 "특정 목회자가 국민의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 지도부가 그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라며 홍 시장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김기현 대표와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대화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하지만 김 대표의 결정을 두고 "순서가 잘못됐다"는 여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당을 흔드는 외부 언사에 대한 강한 경고와 김 최고위원에 대한 조치가 우선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김기현 체제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윤리위원장 공석 등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홍 시장의 계속된 강경 발언은 결국 '지도부 흔들기'로 밖에 인식될 수 없었다는 반박도 나온다.
한편 집권 여당을 뒤흔들고 있는 전씨는 16일 사랑제일교회 예배에서 "국민의힘이 나가라고 하니 나가주겠다"며 "'광화문'이 없으면 어떤 우파 정당도 성공할 수 없다. 내가 시범을 보여주겠다. (국민의힘은) 두 달도 못 돼서 우리에게 다시 들어와 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17일 오전 10시 '국민의힘과 결별'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에 홍 시장은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손절해야 할 사람에게 손절 당하는 치욕스러운 일이 생기게 됐다"며 김기현 대표를 향해선 "손잡고 가야 할 사람은 손절했다. 선후도 모르고 앞뒤도 모르는 그런 식견으로 거대 여당을 끌고 갈 수 있겠나"라고 비꼬았다.
홍 시장은 또 16일 밤에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더 올리고 "전당대회 이후 우리 당이 가장 시급했던 일은 극우와의 단절이었는데, 극우 세력과 연결고리 역할하는 사람들을 쳐내지 못하고 황교안 전 대표처럼 똑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었겠나"라며 "이젠 총선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지도부 리스크가 돼 버렸다. 지도부끼리 서로 잘못을 감싸주고 견강부회로 당을 끌고 간다고 해서 국민들이 따라오겠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