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극우단체 관계자가 4·3 유족에게 고성을 지르고 있다. 고상현 기자제75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당일 극우단체가 4·3 학살 주범인 '서북청년단' 이름으로 집회를 열려다 유족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유족은 "가슴이 찢어진다"며 가슴을 쳤다.
3일 오전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 3명은 집회를 열겠다며 4·3추념식이 열리는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입구를 찾았다. 이들이 집회 준비를 위해 차량에서 내리려고 하자 유족들이 막아섰다.
'서북청년단'은 70여 년 전 4·3 당시 악명을 떨쳤던 단체다. 도민을 상대로 약탈과 갈취, 폭행, 살인을 일삼았다. 이번에 집회를 신청한 A씨가 옛 서북청년단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도내 시민단체와 4·3유족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극우단체와 유족들 간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극우단체 관계자들을 격리했다. 1시간여 동안 대치 상황을 이어가다 결국 극우단체 집회 차량은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충돌이 일단락되는가 싶다가 한 극우단체 관계자가 4·3평화공원 인근 평화교육센터 앞에 4·3 폄훼 현수막을 내걸려다 재차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 한때 몸싸움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차량에 격리당한 서북청년단 극우결사대. 고상현 기자4·3희생자유족회 양성주 외무부회장은 "서북청년단이 추념식장에서 집회한다는 말을 듣고 황당했다.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집회하겠다고 해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4·3평화공원에 발을 딛지 않도록 하는 게 후손된 도리가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국민의힘 태영호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갑)의 망언이 촉매제가 돼 4·3 폄훼 현수막에 이어 이날 서북청년단 집회 소동까지 벌어지자 4·3 유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했다.
4·3 당시 2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얼굴도 모른다는 이모(77) 할머니는 연이은 4·3폄훼와 왜곡에 대해 "속상함을 넘어서 목이 막히고 가슴이 찢어져서 울음이 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4·3평화공원 각명비. 고상현 기자
집회 소동을 일으킨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를 두고도 "우리 아버지는 아무런 이유 없이 돌아가셨다. 평생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살아온 서러움을 알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에 산다는 허인상(72)씨는 "4·3 당시 서북청년단은 죄 없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많이 했다. 역사를 바로 알고 집회를 한다고 해야지. 대단히 잘못됐다"고 했다.
"자기 표현이라고 해도 강력하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사람의 도리에 어긋났다. 4·3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면 처벌하도록 한 4·3특별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에 통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송재호 국회의원(제주시갑, 민주당)은 지난달 9일 4·3희생자와 유족을 비방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제주4·3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