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크레디트스위스은행(CS)의 합병, 도이체방크의 위기설까지…오죽하면 뱅크데믹(Bankdemic·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재무상황이 안정적인 도이체방크에서 조차 유동성 위기가 제기되면서, '불신'이라는 '시장의 마음'이 은행 위기의 주요 요소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29일 국내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등 은행들이 잇따라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콜옵션) 계획을 밝히고 있다. CS가 UBS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휴지조각(전액 상각)이 되자, 금융사들이 발행한 채권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국내까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CS의 경우처럼 신종자본증권의 가치가 '0'이 되는 일은 없다는 선언이 나왔고, 국내 역시 발행 은행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될 때만 신종자본증권이 상각되는 등 투자자들이 돈을 날릴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은행들은 '추가적'인 조치를 했다.
이처럼 일제히 시장 달래기에 열심인 이유는 "은행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시장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 24일 독일 최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의 주가가 장중 한때 14.9%까지 빠진 폭락 사태다. 외신들은 도이체방크가 10분기 연속흑자를 내는 등 자산규모와 건전성에 뚜렷한 문제가 없음에도 '막연한 공포'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앤드루 쿰스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도이체방크 관련 대혼돈의 원인은 비이성적 시장"이라며 "이런 시장 분위기가 확산해 결국 자기실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불신은 SVB 사태 등에서 보듯 예금대량인출 등을 통해 평소라면 충분히 통제가 가능한 리스크조차 확대시킬 수 있다. 정용택 IBK연구원은 보고서에 "SVB는 (안전자산의 상징인 미 국채 등)우량자산에 투자했으나 평가손(미실현손실)이 확대된 경우고, CS의 투자 실패는 대응 가능한 규모"였다고 평가했다. 무너진 시장 신뢰에는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비이성적 공포와 불신은 어디인지 예상하기 어려운 약한 고리부터 끊어내는 만큼, 현재 은행권은 "어디에 어떤 폭탄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이라고 볼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발생한 것처럼, 대규모 투자 부실 같은 '명확한 원인'을 찾아낼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유동성과 건전성 확보 같은 뚜렷한 대책이나 규제로 대응하기도 마땅찮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은행 비대면 거래가 86%에 달하고 24시간 모바일뱅킹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포라는 전염병이 퍼지는 속도가 빠르고 악재 대비 리스크의 규모도 클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1749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116조원 규모의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약한 고리라는 지적은 이어지고 있고, 정부당국도 이 부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현되지 않은 장부상 손실만 보고, 30여 시간만에 파산한 SVB의 사례가 디지털 강국인 우리에게는 특히 멀지 않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