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왼쪽부터), 이은애, 문형배, 이선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일명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싼 권한쟁의 심판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린 결정을 내놨다.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일부 침해되긴 했지만 입법 자체는 무효가 아니라는 '반쪽' 결론에 정치권의 반응도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전날 국민의힘과 법무부 및 현직 검사들이 각각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사건에서 주요 쟁점마다 의견이 4대 4로 갈리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유남석 소장을 비롯해 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 등 4명은 입법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반대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 등 4명은 법률 개정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다만 이미선 재판관이 인용과 기각, 각하를 오가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면서 헌재는 입법 과정에 다소 하자는 있지만 법률의 효력은 유효하다는 '반쪽' 결론을 도출했다.
권한쟁의 심판은 헌법상의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놓고 다툼이 생기면 헌재가 유권 판단을 내리는 절차다. 재판관 9명 전원이 심리하고 과반(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인용·기각·각하 결정을 할 수 있다.
연합뉴스법조계에서는 대체로 임명 당시 언론 등을 통해 분류된 재판관 성향에 따라 결정이 나왔다는 반응이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낸 청구를 기각했고, 또 법무부와 검사들이 낸 청구는 모두 각하했다.
유남석 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김기영 재판관과 이미선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이다.
반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은 권한침해 확인청구와 무효 확인청구 모두에 인용 의견을 냈다. 이은애 재판관은 이들과 뜻을 같이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으로 임명된 이은애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중도·보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지명으로 임명된 이선애 재판관은 대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 4명의 재판관은 두 건의 권한쟁의 심판사건에서 모두 검수완박 입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진보 성향 재판관 4명은 권한쟁의 심판 청구 일체를 기각했고, 보수 성향 재판관은 청구 전부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을 유지한 꼴이 됐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 강일원 변호사,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 노희범 변호사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마친 뒤 나서고 있다. 류영주 기자헌재의 이같은 '반쪽' 결론은 마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으로 양분된 정치권 상황을 연상케 한다. 결과적으로 양당이 뚜렷한 입장차를 보인 검수완박 입법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측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린 전주혜 의원은 선고 직후 "국회의장 손을 들어준 5명의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출신의 편파적 인사"라며 "편향적 시각을 가진 5명이 법치와 민주주의보다 자신의 편향적 시각에 따라 결정했기 때문에 의회 독재에 손을 들어준 결정이 나왔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음주하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에 해당 안 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가 어딨느냐"고 반발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헌법정신에 기인해 국회 입법권과 검찰개혁 입법의 취지를 존중한 결정"이라며 "헌재 판단을 계기로 수사·기소권 분리를 통한 검찰의 정상화, 중수청 설치를 통한 국가 반부패 수사 역량 강화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형사사법 체계를 완성하겠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