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운영되는 지적발달장애인 '그룹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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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정부는 장애인 시설 소규모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적장애인 스스로 사회생활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진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은 사회재활교사 1명이 4명의 장애인과 함께 주택에서 생활하는 형태다. 그러나 90년대 만들어진 이 제도는 근로기준법 위반과 과도한 행정업무로 지적장애인들의 자립은 물론 사회재활교사의 노동권까지 파괴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발달장애인 공동생활가정 실태①]
2023년 장애인공동생활가정 노동환경은 90년대 그대로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꼬박 일하고도 8시간만 인정
35년 경험 장애인 사회재활교사도 1년하고 "떠나고 싶다" 한숨
그만두고 싶어도 맡아줄 사람 없고 "보람 있고 사랑스러워" 못 떠나

서귀포시내 한 발달장애인그룹홈에서 이용자들이 사회재활교사의 도움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대휘 기자서귀포시내 한 발달장애인그룹홈에서 이용자들이 사회재활교사의 도움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대휘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운영되는 지적발달장애인 '그룹홈'
②30명 장애인 시설과 같은 '1인 그룹홈' 행정업무
③장애인 그룹홈 1인 다역 안전 사각지대…책임도 독박
④장애인그룹홈 재활교사, 과중한 행정업무에 노동권까지 파괴

올해 60살인 배영호씨는 장애인 복지사다. 35년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지적장애인 재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사회재활교사로 일하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노동자다.
 
배씨는 최근 1년 동안 서귀포시내에 있는 장애인공동생활가정 이른바 그룹홈(또는 공생)에서 사회재활교사로 일하고 있다. 배씨는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장애인 주거지(다세대주택)에서 장애인 4명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돌본다. 하지만 평생 장애인 재활로 잔뼈가 굵은 배씨지만 그룹홈 활동은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어요, 하지만 나를 대신해서 맡아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그냥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어요"
 
"사실 이 친구들은 제 가족 같아요. 보람은 엄청 많죠"
 
배씨와 함께 그룹홈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모두 남성이다.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이다. 이들은 연고가 없다.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은 1981년부터 시작됐지만 4인 기준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규모로 장애인거주시설 중 가장 작은 단위로 사실상 가정과 같은 환경을 지향하고 있다. 장애인 4명당 종사자(사회재활교사) 1명이라는 기준은 이때부터 적용됐다. 30년전 제도다.
 
2023년 기준 제주지역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은 18곳(제주시 7곳, 서귀포시 11곳)이다. 정원은 78명이지만 실제 이용자는 66명이다.
 
이용자의 상당수가 중증 지적장애인이고, 나머지는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낮 동안은 장애정도에 따라 주간보호시설이나 학교, 일터에 있다가 오후 5시쯤 자신들의 집이나 다름없는 공동생활가정으로 돌아온다.
 
이 때부터 사회재활교사들의 공식 업무가 시작된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원가정으로 돌아가지만 연고가 없는 이용자는 휴일에도 돌아갈 곳이 없다. 그래서 배씨는 주말과 휴일에 일하고 평일(수, 목)에 쉬고 있다. 하지만 혼자 근무하기 때문에 대체인력은 꿈도 꾸지 못한다.
 
공동생활가정으로 돌아온 이용자들을 위해 재활교사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잠들 때까지 돌본다. 다음날 아침까지 일거수일투족 재활교사의 직간접인 도움으로 생활이 이어진다.
 
사회재활교사 배영호(60)씨가 장애인그룹홈 운영의 고충을 말하고 있다. 김대휘 기자사회재활교사 배영호(60)씨가 장애인그룹홈 운영의 고충을 말하고 있다. 김대휘 기자
"오후 4시부터 근무지만 1~2시간 전부터 식사 준비를 위한 장을 미리 보거나 필요한 것들을 사러 다녀야 합니다. 집(공생)으로 돌아온 후 샤워는 스스로 하지만 마무리는 제가 직접 해줘야 합니다"
 
배씨는 1년 사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 때문이다. 밤 11시쯤이면 모두 각자 방에서 잠에 들지만 돌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깬다. 방문은 항상 열어둔다.
 
배씨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에 일 1시간 휴게, 연장근무는 1일 4시간으로 매월 최대 26시간이 법정 연장근무시간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동시간은 서류상 있을 뿐이다.
 장애인그룹홈 이용자 오모(39)씨가 인사를 하고 있다. 김대휘 기자장애인그룹홈 이용자 오모(39)씨가 인사를 하고 있다. 김대휘 기자
실제 장애인그룹홈 사회재활교사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18시간 이상을 이용자인 지적장애인과 한 공간에 있다. 하지만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8시간은 휴게시간으로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일반 직장인의 점심시간과 같은 개념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근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실상 이용자를 돌보기 때문에 실제 근무시간이다. 대체 인력도 없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주간보호시설이나 기존 장애인 시설에서는 교대자가 있고 퇴근 시간도 있지만 공생(그룹홈)은 혼자 근무하기 때문에 교대자도 휴게시간이 없는 사실상 근무시간이죠"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는 노동환경 때문에 다른 지방에서는 법적분쟁이 종종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그룹홈 종사자가 야간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달라며 진정한 사건에 대해 노동관계법 위반이라며 해당 그룹홈 법인에 대해 1500만원의 지급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로 힘든 일이 뭔 줄 아세요, 바로 행정업무입니다."
 
장애인 재활교사로 잔뼈가 굵은 배씨가 공동생활가정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과도한 행정업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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