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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탄 제한=자살 예방'에 뿔난 민심…현장서 바라본 실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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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5차 자살예방 계획 공청회後 '번개탄 생산금지' 논란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 "수단 통제, WHO가 인증한 대책"
실제 '그라목손' 등 농약 관리 강화 후 관련 자살死 뚜렷한 감소세
"5개년 계획 등 단기방안 치중은 한계…보호요인 증진 상대적으로 약해"
"공공·전문가만으로 못 막아…가족·지인 등 '게이트키퍼' 양성 강화해야"

서울 마포대교의 자살예방 조형물. 한국생명의전화는 마포대교를 포함한 서울시 관할 19개 한강교량에 'SOS생명의전화'를 설치 운영 중이다. 2021년 말 기준 누적 상담건수는 마포대교가 최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은지 기자
서울 마포대교의 자살예방 조형물. 한국생명의전화는 마포대교를 포함한 서울시 관할 19개 한강교량에 'SOS생명의전화'를 설치 운영 중이다. 2021년 말 기준 누적 상담건수는 마포대교가 최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은지 기자

 
<자살에 대하여>(2021), 사이먼 크리츨리 中
"코로나19 팬데믹이 여러 정신적 피해와 결국에는 자살률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것도 확실히 알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좋은 소식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흔히 자살하는 계절은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듯 보이는 봄이고,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날은 사람들이 다시 일하려 노력하는 월요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자살에 미친 결과는 상황이 상당히 개선될 때까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만 3년을 넘긴 코로나19 유행이 서서히 잦아들며 일상회복이 가속화되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이행기가 누군가에겐 되레 고비가 되기도 한다. 모두에게 공통적이었던 격리와 고립이 '나만의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 더 큰 외로움과 박탈감이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재작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6.0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표준인구 기준으로 산출해도 평균치(11.1명)의 2배 이상으로, 2003년부터 20년째 압도적 1위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13일 공청회 당시 내놓은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안(案)에서 "국제적 재난 시기 사회적 긴장, 국민적 단합, 재정지원 등으로 자살률이 일시적으로 감소할 수 있으나 2~3년 후 자살률 반등 가능성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한국의 연간 자살사망자는 지난 2019년 1만 3799명에서 지난해 1만 3352명으로 3.2% 줄었다. 다만, 장기간의 거리두기로 인한 대인관계 단절, 일상생활 제약 등에 따라 같은 기간 우울증 관련 진료는 8.7% 증가했고,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는 각각 12.5%, 9.6% 늘었다.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 제공

보다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함을 일러주는 지표다. 정부는 5개년(2023~2027) 관련계획에서 ①실질적 자살사망자 수 감소 ②체감할 수 있는 자살예방정책 ③지역 맞춤형 자살예방정책 강화 ④탄탄한 생명안전망 조성 등을 통해 오는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이상 감소시키겠다고 했다.
 
정부 의도와 달리 도마에 오른 건 자살위해수단에 대한 물리적 통제다. 특히'번개탄(성형목탄) 생산을 금지하겠다'는 부분이 논란이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선 '그럼 밧줄이나 수면제도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거냐', '교통사고 줄이겠다고 차를 없애는 격' 등의 비난과 조롱이 잇따랐다. 자살을 유발하는 근본적 원인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치권에서는 "국정 농단"(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사실 이 부분이 왜 이렇게 논란이 되나,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지난 22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중인 하상훈 원장. 하 원장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해 자원봉사로 이 일을 시작했다"며 "생명의전화 사업의 취지가 좋아 지금까지 남아있게 됐다"고 했다. 이은지 기자
지난 22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중인 하상훈 원장. 하 원장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해 자원봉사로 이 일을 시작했다"며 "생명의전화 사업의 취지가 좋아 지금까지 남아있게 됐다"고 했다. 이은지 기자

해당 계획이 처음 공개된 복지부 공청회에 참석한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의 반응이다. 하 원장은 한국 최초의 전화상담기관으로 자살위기에 있는 이들을 365일, 24시간(연중무휴) 상담하는 민간기관인 한국생명의전화에서 30년간 일해 왔다. 현재 생명의전화가 위탁 운영 중인 서울 성북구 자살예방센터의 센터장을 지내기도 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22일 성북구 하월곡동 소재 생명의전화 본부에서 하 원장을 직접 만났다.
 
하 원장은 자살수단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 정책노선일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통용·권고되는 방책임을 지적했다. "영어로는 'means restrict'라고 하는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국가 자살예방정책에 꼭 들어가야 할 전형적 구성요소에 대해 예시를 든 게 있어요. 그 중 두 번째로 꼽는 게 자살수단 통제예요. 국제적으로 공인된 대책이란 측면에서 정부가 그런 정책을 발표한 건 너무 당연하다고 봐요.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근거가 있는 예방정책이라는 거죠."
 
'번개탄 규제'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도 비슷한 해명을 내놨다. 복지부 이두리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이날 긴급 백브리핑에서 "산화형 착화제는 번개탄에 불이 붙는 속도를 굉장히 빠르게 한다"며 "불이 천천히 붙게 된다면 번개탄을 자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불편해지거나 자살 사망의 치명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인체 유해성이 높은 산화형 착화제를 활용한 번개탄의 생산 금지는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산림청이 결정한 내용이라는 점도 들었다. '목재제품의 규격과 품질기준' 개정에 따라, 친환경 번개탄 대체재를 개발·보급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올해 말까지 시행이 유예된 상태다.
 
하 원장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다 이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서도 투신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안전 펜스가 너무 낮은 교량이라든지 다양한 위험시설이 있기 때문에 펜스를 높이기도 하고, 어느 다리는 밑에 그물을 처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수단을 제한하고 (자살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 제초제 '그라목손' 같은 농약 등을 관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농촌에서 자살에 흔하게 활용된 농약은 지속적인 관리 효과가 검증됐다는 게 중론이다. 11년 전 고(高)독성 농약을 생산 금지하고, 2020년 농약이 자살위해고시에 포함되면서, 이로 인한 자살사망자는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농약 중독사망은 2012년 2103명에서 2018년 806명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741명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표준인구 기준으로 산출 시 10만 명당 23.6명으로 가입국 평균(11.1명)의 2.1배 수준이다.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안 발표자료 중. 복지부 제공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표준인구 기준으로 산출 시 10만 명당 23.6명으로 가입국 평균(11.1명)의 2.1배 수준이다.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안 발표자료 중. 복지부 제공 

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자살사망에는 스무 번 정도의 자살시도가 선행될 가능성이 높다. WHO가 '자살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Limit access to means of suicide)'을 강조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풍선 효과'를 우려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자살 생각이 치명적 시도로 이어지지 않게 차단하는 방어막이 필요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다만, 하 원장은 누리꾼들의 비판에 공감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자살을 막기 위한 노력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수단 제어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분들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일부) 이해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나라 자살예방 정책은 사회적인 자살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자살시도자나 자살유가족 등 고위험군을 사후 관리하는 등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정책들이 많은 거죠. 
 
물론 시급성에 있어서는 우선순위가 있다고 봐요. 암 덩어리가 몸에 있으면 수술을 해야 하듯 자살을 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나 제도는 바꿔주는 게 맞는데…이쪽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근본적으로 자살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사회문화적 대책 부분에 대한 얘기는 적은 거예요."

 
하 원장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가리키는 말들 중 긍정적인 단어가 있냐고 반문했다. '갈등 사회', '저신뢰 사회', '불평등 사회' 등….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말들이다. 기댈 곳과 연대는 옅어지고, 각자의 생활에 급급한 양상이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들, 이야기들 속에서 국민들도 어떤 일이 안 됐을 때 그에 대해 더 절망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들이 많아요. '이게 안 되면 끝'이란 식의 흑백 논리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죠. 자살을 그 개인이 취약해서 발생하는 문제로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기도 해요.
 
한 문제에 하나의 답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 'A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B, C, D, E 등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가 돼야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있어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거예요. 이쪽(생명의전화)으로 전화가 오는 사람들은 보통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더라고요."

 
그는 "제가 말을 하면서도 이런 변화가 굉장히 막연하게 들린다"며 "하지만 어쩌면 이런 게 더 (자살에 있어서) 근본적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자살예방 기본계획이 5년 주기로 짜여지고 수행되다 보니, 정부 임기 내 '성과'를 보려는 한계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 원장은 "그건 문재인 정부도 그랬다. 또 우리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위험요인 제거에 더 앞장서는 경향이 있다"며 "단기간 내 실효성이 있고 눈에 보이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당초 자살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 생태학적 관점에서 사회의 보호요인을 증진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을 요구한다. 하 원장은 정권에 구애받지 않고 긴 안목과 호흡으로 가져갈 수 있는 정책을 강조했다.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게이트키퍼' 양성부터 생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학교·직장 내 교육 강화 등에 이르는 넓은 영역이다.
 
해마다 1만 3천여 명이 숨지는 사회적 재난에 대처하려면 역할 분담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게 하 원장의 시각이다. 자살 고위험군은 전문가들이 치료와 위기개입을 맡는 게 맞지만, 1차적으로는 가족과 친구, 지인 등이 심리적 저지선이 되어줘야 한단 것이다.

"힘들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어요. 그럼 그게 자살 시도로 가지 않게 하는 길목이 있을 거고, 시도한 사람이 또다시 자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길목, 자살한 이들의 유가족이 자살하지 않게 하는 길목이 있겠죠. 자살 예방은 전문가들만의 몫이 아니에요. 그 사람과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이들의 애기죠. 누군가가 조금 이상하게 보일 때, 정신건강이나 자살과 관련된 아주 기본적인 사인만 알아도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전문가한테 연계만 해줘도 큰 일이죠."

정부의 대책에 이러한 내용이 없는 건 아니다. 복지부는 자살위험 신호를 인지해 전문가에게 연계하는 '생명지킴이'를 매년 100만 명씩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담 홈페이지를 구축해 서비스를 안내하고 교육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학습관리시스템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교육대상도 특정 직종 등에 편중돼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간한 '자살 고위험군 조기발견을 위한 전략개발'에 따르면, 국내 성인 150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66.1%가 생명지킴이 또는 게이트키퍼 사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자살을 계획하거나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응답도 26.2%에 그쳤다.
 
응답자 대부분(96.7%)이 향후 자살을 계획·시도하려는 사람을 알게 될 경우 도움을 줄 의향이 있다고 했던 데 반해 게이트키퍼 교육 이수자는 5.1%에 불과했다. 관련 교육은 대체로 민간기관(교육이수 응답자 46.1%)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 원장은 학생들과 직장인 등을 상대로 한 일반적 예방교육뿐 아니라 게이트키퍼 교육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봤다. 코로나19 대응처럼 온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협력해야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민관협의회 등을 통해 확산시키겠다는 '생명존중 문화'가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지적과 관련해선 "자살을 '권리'로 생각하거나 너무 허용적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어려서부터 교육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자살 유가족 입장에선 '내 자녀가 충분히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서 그런 거냐'라고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도덕적 정죄를 위한 표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 원장은 "자살은 그 생명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공동체의 책임"이라며 "학폭(학교폭력), 성희롱, 직장갑질 등 모든 사회 문제의 귀결점이 자살이다. 이런 문제들에 먼저 대처가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성북구 소재 한국생명의전화 건물 내 전시돼 있는 SOS생명의전화 모형. SOS생명의전화는 서울 19개 한강교량과 춘천소양1교 등 전국 20개 교량에 총 75대가 설치돼 있다. 자살시도자가 '생명의전화' 버튼을 누르면 상담원과 연결되고, 지나가던 시민이 자살 시도를 목격할 경우 '119' 버튼을 눌러 신고할 수 있다. 이은지 기자 서울 성북구 소재 한국생명의전화 건물 내 전시돼 있는 SOS생명의전화 모형. SOS생명의전화는 서울 19개 한강교량과 춘천소양1교 등 전국 20개 교량에 총 75대가 설치돼 있다. 자살시도자가 '생명의전화' 버튼을 누르면 상담원과 연결되고, 지나가던 시민이 자살 시도를 목격할 경우 '119' 버튼을 눌러 신고할 수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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