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현장.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공"핵융합 에너지는 꿈의 에너지가 아니고 문턱 가까이 왔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유석재 원장의 말이다. 현존하는 원자력발전과 같은 핵분열이 아니라 핵융합을 통한 전력 생산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3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제18차 국가핵융합위원회를 열고 '핵융합 실현을 위한 전력생산 실증로 기본개념' 등의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기본개념에 따르면 핵융합 실증로는 차세대 기저전력원으로서 핵융합 발전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타당할 뿐 아니라 안전하다는 점을 입증하게 된다. 최대 전기츨력 500메가와트 이상에 안정적 연료 자급을 위한 삼중수소 유효 자급률1 이상,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의 안전 관리, 경쟁력 있는 전력생산단가 제시 등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안에 산·학·연 전문가가 참여하는 실증로 설계TF를 구성한 뒤 2026년까지 예비개념설계, 2035년까지 공학설계를 마치고 실증로 건설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원자력발전의 경우 1942년 핵분열 연쇄반응 성공으로부터 1956년 상업운전 시작까지 14년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증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2050년대에는 핵융합 전력 생산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 일본 등이 주도국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핵융합장치 분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 운영 중인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케이스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공본래 핵융합이란 가벼운 원자핵들이 충돌해 무거운 원자핵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줄어든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태양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바로 핵융합인데 초고온에서 음전하를 가진 전자와 양전하를 가진 이온으로 분리된 기체상태인 플라즈마 상태에서 구현된다. 따라서 이같은 과정을 지구에서 실현하려면 태양과 같은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가 필요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한국의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인 케이스타(KSTAR 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이다. 지난 2007년 완공된 케이스타는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토카막(태양처럼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자기장을 이용해 가두는 핵융합장치) 중 가장 진보적인 장치이다.
이를테면 케이스타는 2010년 초전도 핵융합장치로는 세계 최초로 고성능 플라즈마 상태인 H-모드를 달성했고,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H-모드를 1분 이상 유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2018년에는 이온온도 1억도의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을 최초로 선보였고, 2020년에는 1억도 운전 20초, 2021년에는 1억도 운전 30초 등에 성공하며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케이스타는 현재 내부장치 중 하나인 디버터를 탄소에서 텅스텐으로 바꾸고 있으며 오는 10월부터 실험을 재개한다. 케이스타는 2026년까지 1억도 플라즈마를 300초까지 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00초 운전에 성공하면 사실상 24시간 케이스타를 안정적으로 정상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의미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윤시우 부원장은 "케이스타를 제외하면 온도 1억도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초고온 운전 10초가 중요한데 이미 넘어섰고 100초에서 300초까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자신했다.
초전도핵융합장치 케이스타 내부 모습.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공이와 함께 한국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에 참여해 실험로 건설에 역량을 집중하고, 한국 연구진의 파견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국제 공동연구개발사업인 ITER는 2050년대 상용 핵융합발전소 건설을 위한 원천기술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은 이 사업 참여를 통해 핵융합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초전도자석 등 핵심조달 품목의 제작과 납품 등을 하게 된다. ITER의 핵융합 기술과 케이스타의 고성능 플라즈마 제어 기술이 입증되면 실증로 건설·운영이 가능해진다.
한국에서 토카막 개발의 역사는 197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에서 그 해 SNUT-79라는 초보적인 형태의 핵융합장치를 만들었다. 1980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했던 유석재 원장은 당시를 돌아보며 "그 때는 청계천에 가서 필요한 소재를 찾아 자르고 붙이면서 핵융합장치를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잠수함만 빼고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는 그 옛날 청계천 얘기다. "군대 제대하고 복학한 뒤에는 청계천에서 구해온 물건을 분해하고 조립하느라 1년 내내 용접만 했던 기억이 있다"는 유 원장은 "이제 기술적 과제는 거의 해결됐다, 골든타임이 그리 길지 않다"며 적극적인 관심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