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얼굴 어루만지는 딸 김주애. 연합뉴스"본처 김영숙을 두고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김정남을 낳은 김정일에게 김일성은 집안 망신이라고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장성택은 이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수령님에게 고용희 모자를 절대로 데려가서는 안된다'며 만류했다고 한다…고용희는 장성택 부부에게 원한을 품게 됐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김정은에게 전해졌다. 김정은 또한 할아버지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손자 신세가 된 것에 분통이 터졌다.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었다면 스스로 '백두혈통'이라고 백 번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327쪽). "지금 사는(?) 그녀는 현재도 앞으로도 김정일 비서와 가정을 고수할지 모르나 '재포'(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고 있다는 것은 지도자에게 백두산 성지에서 태어난 혁명가계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거부감을 주고 있다. 그를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 언제인가 나는 어머니와 한담을 했다. '앞으로 정남이 빠빠 수반이 되면 누굴 데리고 나설까?' '누이를 데리고 나설망정 어느 여자도 못 내놓을 걸. 고가(고용희)를 내놓겠니, 서장동 여자(김영숙)를 내놓겠니'"(성혜랑, 『등나무집』 417쪽).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검은 코트에 중절모 등 75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주석단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12년 권력을 승계한 뒤 벌써 12년째이지만 '할아버지 따라하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백두혈통의 시조, 즉 김일성의 손자라는 사실이 북한을 통치하는데서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동시에 김 위원장이 성장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상처도 작용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일성은 생전에 손자 김정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물론 정책과 리더십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김일성을 빼 닮은 듯이 연출하지만, 김일성과 함께 한 일화나 사진이 공개된 적이 없다. 태영호 의원의 말대로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어도 스스로 백두혈통이라고 백 번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인데도 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외교안보 분야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라종일 교수도 "그(김일성)가 '세손'에 기울인 관심은 남아있지 않다. 손자들과 찍은 사진이 한 장이라도 있었더라면 현재의 3대 권력자에게 매우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라종일, 『장성택의 길』 50쪽).
김 위원장의 어머니 고용희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북한에서 재일교포는 '재포'라고 비하되기도 하는데, 별도 성분으로 관리되는 대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이다.
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자마자 북한은 2012년 5월 모친 고용희를 우상화하기 위해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일부 간부들에게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간부들 사이에서 "재일교포라는 출신을 밝히면 정치적 권위에 흠집이 난다"는 우려가 제기돼 일반 공개는 되지 못하고 사장됐다고 한다(마키노 요시히로, 『김정은과 김여정』 88쪽).
남조선 출신 유부녀 성혜림과 살림을 차린 것에 대해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큰 질책은 받은 김정일로서는 재일교포 출신 고용희·김정은 모자를 아버지 생전에 대면 인사를 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혜랑(성혜림의 동생이자 김정남의 이모)이 고용희에 대해 "백두산 성지에서 태어난 혁명가계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거부감을 주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북한 인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연합뉴스반면 김일성은 김정은과 달리 김정남에 대해서는 손자로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일성은 지난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을 방문한 카터 전 대통령과의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손자"를 언급했다고 하는데, 이 손자가 바로 당시 23세인 김정남으로 추정됐다(박진 외교부 장관 2017년 연합뉴스 인터뷰).
이처럼 할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한 추억이나 사진으로 공개할 내용이 없는 3대 백두혈통 김정은의 성장사는 어린 시절 심리적인 상처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딸 김주애와 '건군절' 기념연회 참석. 연합뉴스최고지도자 자녀의 신상은 비밀로 한다는 전례를 깨고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갑자기 부각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해 11월 18일 화성 17형 ICBM을 시험 발사하는 현장에 10대 초반의 딸 김주애를 동반해 사진을 찍은 뒤 이를 처음 공개한 바 있다. 최근 열린 건군절 기념연회와 열병식에서 김주애는 더욱 더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김주애 띄우기에는 핵이 북한 미래세대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메시지를 인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김주애의 존재를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으나, 김 위원장의 성장 경험도 심리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은의 나이 8세 때 이미 그를 후계자로 내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본격적인 후계 과정은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2008년 이후의 일이다. 3,4년간의 압축적인 과정을 통해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위원장이다. 4대 백두혈통 김주애의 조기 등판에는 이런 김 위원장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압축적인 승계가 아니라 미리부터 수령의 딸, 4대 백두혈통의 존재를 북한 인민들에게 각인시키고 공증하는 셈이다. 백두혈통의 시조 김일성 수령과 찍은 사진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 위원장의 성장 경험에 비춰볼 때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아버지 입장에서 딸의 조기 공개는 충분히 선택 가능한 방법이다. 김주애 위로 장남이 있다고 해도 이 같은 4대 백두혈통의 조기 등판이 그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백두혈통 전체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주애의 권위는 곧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장남의 권위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상속에 앞선 정통성의 사전 증여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핵·미사일은 북한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자 정통성으로 표상되고 있다. 화성 17형 ICBM 등 핵 무력과 군 고위 장성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4대 백두혈통의 존재는 이런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선전될 가능성이 높다. 김씨 가계 후손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이 앞으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 장기적으로 4대 후계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건군절 75주년' 열병식 참석한 김정은 딸 김주애. 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최근 김주애가 집중 부각되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건군절 열병식 과정에서 병사들이 단상 앞을 지날 때 '백두혈통 결사보위'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볼 때 세습부분에 대해서 좀 더 확실하게 해놓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어떤 특정인 보다는 북한이 4대 세습을 미리부터 준비하고 김정은과 백두혈통을 중심으로 한 체제 결속을 단단히 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김영수 서강대 명예교수는 "김정은은 권력승계 뒤 수령의 위상을 어디서 찾을지 고민했을 것인데,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핵·미사일 완성"이라며, "핵 무력을 상징하는 화성17형 ICBM 발사 현장과 열병식 현장에 딸 김주애를 등장시켜 인민들에게 4대 백두혈통의 존재와 승계 정통성을 각인시키고 증여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