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나경원 전 의원의 건배사 중 자리를 뜨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나경원 전 의원의 출마가 초읽기로 접어들었지만 공식적인 우군을 찾기 힘든 당내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 달 전만 해도 압도적인 인지도와 당원들의 지지를 업은 '당협 초청 1순위'의 스타 정치인이었지만, 현재는 초선 의원들에게마저 공개적인 압박을 받는 처지가 됐다.
지난 주말 나 전 의원의 출마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친윤계는 일제히 수위 높은 견제에 나섰다. 선봉에 선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반윤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며 공격했고, 친윤계 박수영‧배현진 의원도 '羅(나경원) 홀로 집에'라는 이미지를 공유하며 나 전 의원을 비꼬았다. 나 전 의원은 16일 기자들과 만나 "저는 죽었다 깨도 반윤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들끼리의 친윤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반윤 프레임' 공격을 일축했고, 나 전 의원을 돕는 박종희 전 의원도 라디오에서 "후배 정치인들이 선배 정치인을 조롱하고 폄하하고 마타도어를 퍼뜨리고, 이렇게 혼탁한 적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당권 경쟁에 뛰어든 김기현 의원. 황진환 기자
4선 중진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지냈지만 지원은커녕 후배 정치인들의 조롱을 받는 처지가 현재 나 전 의원의 당내 입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친윤계와 나 전 의원 측의 갈등에 "나 전 의원은 당내 몇 안 되는 장수 중 한 사람(김형오 전 국회의장)" "2024년 총선은 윤핵관을 중심으로 치르는 게 아니다(서병수 의원)"라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절대 다수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나 전 의원에게 동조하는 이들은 김기현 의원과 경쟁하는 안철수‧윤상현 의원 등 당권주자들과 일부 친이준석계 의원들 정도다.
대신 친윤계를 비롯한 다수의 의원들은 일찌감치 김기현 의원의 편에 섰다. 출정식을 비롯한 김 의원 관련 행사 때마다 현직 의원 20~30여명이 참석해 눈도장을 찍으며 세과시를 돕고 있다. 김 의원의 '윤심 마케팅'에 더해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의 '김장연대'가 "윤심은 김 의원에 있다"는 시그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현재 현직 의원들 중에 나 전 의원을 지지한다는 사람은 공식적으로 없다고 보면 된다"며 "집권 3~4년차도 아니고 6개월 밖에 안 된 정부에서 '윤심'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원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나 전 의원이 출마를 결정한다면 경쟁 후보들보다 레이스가 늦은 만큼 지역 조직력을 갖춘 당협위원장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이를 기대하기는 힘든 처지다. 나 전 의원이 지난 10일 제주도당에서 일방적으로 일정을 취소당한 것이 상징적이다.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지금 상황에서 사실 나 전 의원을 돕는다는 것은 모험"이라며 "윤 대통령이 해임으로 '나 전 의원을 돕지 말라'고 하는 마당에 나 전 의원을 지지하는 것은 맞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노골적인 '나경원 때리기'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도 있지만 당 주류의 목소리에 쉽게 반기를 들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다른 초선의원은 "장제원 의원이 너무 과했던 측면이 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김기현 후보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이런 반발표가 나 전 의원에게 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관계자는 "원래 당협위원장들이 행사에 초청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사람이 나 전 대표였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며 "권력 눈치를 보면서 공천에 목매는 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들키지 않고' 나 전 의원을 응원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당원들이 현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거나 비판을 하는데, 제가 나서서 나 전 의원을 돕겠다고는 할 수 없고 당원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라며 "100만 가까운 당원들인데, 흘러가는 대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나 전 의원 응원은 다들 '조용히'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