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고갈은 '태생적 운명'…왜 불신의 늪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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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도입 당시도 "2049년 고갈" 전망
애초 적게 내고 많이 타가는 구조로 설계
연금 고갈된다고 연금 안준 나라는 없어
연금 개혁만 하기에는 한국 사정은 달라
턱없이 낮은 수급액…노인빈곤율 세계 1위
"연금액, 필요자금보다 월 100만원 적어"
이 차액 어떻게 메울까가 논의 중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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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이 또다시 화두가 됐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연금은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운명를 안고 시작했다.
 
국민연금이 지난 1988년 도입될 때도 오는 2049년에 바닥날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는 보험료율은 3%로 낮았지만, 소득대체율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파격적으로 높은 70%였다.
 
이후 2007년 연금개혁을 통해 소득의 9%를 내고, 평균 소득의 40%(2028년까지 단계적 인하)를 받도록 했지만, 여전히 받는 금액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을 납입하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인구 구조의 변화는 연금 재정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연금 역사가 오래된 복지 선진국 뿐 아니라 우리도 '더 내는 늦게(덜) 받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면밀히 보면 연금 선진국과 한국의 상황은 너무도 다르다.
 
우선 연금이 연금 역할을 못해 노인 빈곤율이 세계 1등이고,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국민 불안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개혁을 추진하기에 앞서 우리가 놓쳤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따져봐야 한다.
 

'39만원' 연금인가 용돈인가…그마저도 절반이 사각지대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지난 2021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13.1%보다 3배 이상 높다. 76세 이상을 보면 55.1%로 10%p 정도 올라간다. OECD 평균은 15.3%로 소폭 오르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나이 들수록 생활고에 더 피폐해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노후를 보장해 주기 위한 국민연금이 있는데 왜 이리 한국 노인들은 가난의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연금 수령액이 너무 적다는 데 있다.
 
지난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 전체 평균 수령액은 55만 7천원이고, 가입기간이 10~19년 사이에 있는 사람은 고작 39만5천원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노인으로 좁혀서 살펴보면 상황은 더 나쁘거나 비슷하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친 공적연금을 받는 노인의 평균 수급액은 39만8천원으로 국민연금 전체 평균보다 크게 낮다. 노인이 되기 전에 한번에 일시금으로 타가는 금액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를 뺀 수치이기 때문이다.
 
전체 노인(비수급권자 포함)을 분모로 평균을 내면 19만8천원으로 뚝 떨어진다.
 
공무원.군인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을 넣고 계산해도 수급노인은 평균 54만5천원, 전체 노인은 평균 29만4천원을 받는다.
 
노인의 절반 이상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였다. 2021년 말 65세 이상 인구는 약 1146만명인데 이 중 국민연금을 받은 수급자는 42.1%에 그친다. 장애.유족 연금을 포함하면 수급률은 50.4%로 조금 높아지지만, 전체 노인 인구의 절반 수준에 머문다.
 
서유럽 등 연금을 일찍 도입한 나라들 보다 수십년 늦은 1988년에 국민연금을 도입하다보니, 뒤늦게 가입한 노인들 중에는 연금 수급이 가능한 '10년 이상 납입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다.
 
약속된 소득대체율은 40년간 장기 납입을 조건으로 한 것인데, 이를 충족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대만큼 연금액이 많지 않은 이유다.
 
공공에서 개인에게 지급되는 소득인 공적이전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 57.1%의 절반도 안되는 25.9%에 불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금 최저액 160만원 제시에도 들끊은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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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연금 개혁안을 먼저 내놓은 프랑스는 국민적 반발에 부딪히면서 내홍에 휩싸였다.
 
프랑스 역시 연금 재정 건정성 문제로 연금을 받는 나이를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 늦추고, 연금을 100% 받기 위해 납입하는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리기로 한 시점을 8년 더 앞당기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는 대신 최소 연금 수급액을 최저임금의 75%인 월 1015유로(약 135만원)에서 최저임금의 85%인 월 1200유로(약 160만원)로 인상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받는 연금액보다 3배 이상 많은 금액이지만, 노조가 대규모 파업을 예고하는 등 반발 여론이 들끊고 있다. 물론 프랑스의 보험료율은 27.8%로 우리의 3배 정도다.
 
기업 감세를 해온 마크롱 정부가 재정건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 개혁을 강행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도 적지 않다.
 
세대 간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의미에서 '개혁'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수 있지만, 연금 개혁은 어느 나라를 떠나서 국민들 입장에서는 불리해지는 방향이다.
 
문제는 한국은 국민연금 역사가 짧아 성숙되기도 전에 '개혁'의 대상이 되면서 프랑스보다 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됐다. 연금을 축소하는 '개혁'만 하면 노인 빈곤율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21년 국민노후보장패널 9차 본조사 결과, 노후 생활비로 개인이 최소 월 124만원, 부부는 199만원이 필요한 걸로 나왔다.
 
유희원 국민연금원 연구위원은 "최소 월 84만~104만원에 달하는 노후 소득의 공백을 어떤 수단으로 채워나갈지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공적연금을 통해 당장 큰 차이를 메울 수 없다면 최저생계비(62만원)를 목표로 삼고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신뢰도 바닥인 국민연금…"정부가 불안감 조성에 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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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민연금은 뿌리가 약하다보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상대적으로 더 냉랭하다. 특히 젊은층일수록 연금에 대한 불신이 골이 더 깊다.
 
지난해 7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향후 국민연금 수급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53%는 '받을 수 있다'고 응답했고, 38%는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40대에서는 52%가, 30대에서는 64%가, 20대에선 57%가 받을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런 불안감 탓에 국민연금이 의무 가입제가 아니라면, 가입하겠다는 응답이 56%에 달했다.
 
정부도 국민들이 이런 인식을 갖는 데 일조했다는 따가운 비판이 나온다.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채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부각시키는 정부의 연금재정추계 발표가 국민연금을 불신에 늪에 빠뜨리는 데 큰 몫을 했다.
 
김성욱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이 인구학적으로 소멸하는 사이 정부가 아무런 정책 개입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60년 이후의 개인소득, 경제구조, 노동, 교육, GDP 등을 추계하고 이를 또 연금 추계에 반영하고 있다"면서 "이런 소설같은 숫자를 우리는 왜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두려워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급기야 지난해 초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돼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고갈됐다고 낸 돈을 받지 못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만약 고갈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부과방식은 지금과 같이 돈을 쌓아놓고 운영하는 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처럼 그해 걷은 금액으로 그해 나눠주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심리적 이탈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나온 게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제화하는 방법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 "지급 보장을 전제하지 않고는 연금 개혁을 논할 수 없다"며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급 보장 법제화는 지난 17대 국회시절 열린우리당 장복심·유시민 의원이 처음 법안을 낸데 이어 21대에서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2020년 7월에 관련법을 발의했다. 지금의 여당에서도 법안이 나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국가의 잠재적 부채(충당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등 국가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입장을 보여왔다. 최근까지도 국회에 "중장기적인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신중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미래세대의 불안을 최소화하려면 신뢰도를 높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급보증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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