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매년 가혹행위 당하는 예산안,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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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고도 고쳐지지 않는 예산안 정쟁
법정시한 넘기고도 헌법무시 불감증에 빠진 여야
'윤석열표 예산' '이재명표 예산' 코웃음 사는 정치적 구호
여당의 몰염치와 야당의 뻔뻔함이 빚는 정치적 냉소주의
예산안 괴롭히기, 이제는 그만 둘 때 되지 않았나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과이불개(過而不改).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이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과이불개'를 한국정치에 들이대봐야 출처대로 '공자님 말씀' 밖에 안된다.
 
국회에서 매년 반복되는 눈살 찌푸려지는 장면이 한 두 장면이 아니겠지만 새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악습은 절대로 고쳐치지 않는 한국정치병이다.
 
2023년도 새해 예산안 처리가 법정처리시한을 넘겼다. 국민들도 처음부터 법정시한이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를 당연시하는 여야 의원들의 불감증은 더 기가 막히다.
 
한국 정치에서 새해 예산안은 매년 정기국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소재이다.
 
민주화 이전에는 여당이 번번이 날치기의 아름다운 표현인 강행처리를 감행하면서 대체로 법정시한은 지켜졌다.
 
날치기 후유증은 헌정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1985년 민정당 정권은 1986년도 예산안을 강행처리한 뒤 이를 육탄저지한 야당 의원들에게 무더기 구인장을 날렸다. 다음해에도 새해 예산안은 강행처리됐고 당시 야당인 신민당 의원 87명이 이에 항의해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다.
 
헌법이 정한 새해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이 매년 무시되자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은 2014년 국회 선진화법에 마지못해 합의했다. 예산안 심사를 기한내에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한 것이다.
 
이 덕에 2015년도 예산안은 법정시한 내에 처리됐다. 2002년 이후 12년 만에 헌법이 준수된 것이다.

대학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 연합뉴스대학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 연합뉴스 
그러나 이후에도 새해 예산안은 차수 변경이라는 꼼수를 거쳤을 뿐 매번 시한 내 처리가 불발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2020년 단 한 번만 시한 내에 예산안 처리가 됐으니, 새해 예산안은 여야에 집단되롭힘을 당하는 정치적 가혹행위의 최대 피해자라 할 만하다.

2023년도 새해 예산안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법정시한은 이미 넘겼고 정기국회 안에라도 처리되면 다행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는 15일 처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입법권력을 쥔 민주당에 씨알도 안먹히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법인세율 3% 포인트 인하가 쟁점이지만 정치적 요인이 예산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행안장관 해임건의안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등 정치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처리가 불투명하다.
 
입법권력을 쥔 민주당은 여당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예산 수정안을 단독으로라도 밀어붙이겠다는 태세이다.


 
'새해 예산안이 도대체 이상민 장관 해임안이나 국정조사와 뭔 관련이 있느냐?'는 의문은 한국정치에서 쉽게 답이 나온다.
 
야당이 여당을 위협하기에 예산안 만큼 좋은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표 예산이냐, 이재명표 예산이냐'라는 꼬리표는 재정을 조금만 아는 국민이라면 코웃음칠 정치적 구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158명의 청춘이 숨진 참사의 책임 장관을 감싸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몰염치도 어이없지만 여당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발목잡는 민주당의 투철한 야당정신도 뻔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권력은 돌고 돈다. 국민의힘은 언제 야당될지 모르는 일이고 민주당은 네 번째 집권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예산안을 놓고 벌이는 정쟁, 여야가 돌아가면서 집권하는 한국정치에서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됐다.
 
잘못된 것은 고치라는 과이불개가 정치적 냉소주의만 가속화시키는 공자님말씀이 됐다.
 
언제까지 헌법을 지키라고, 헌법 만드시는 분들에게 소리쳐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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