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이) 구조를 포기할 것이란 생각은 절대 안 했다. 하지만 헤드램프가 꺼지려는 걸 보고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다. 그때 발파 소리가 들렸고 불빛이 보였다. '이제 살았구나' 싶은 순간 동료가 뛰어왔고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약 221시간 만에 봉화 광산 지하 갱도에서 구조된 박정하(62)씨와 1년차 광부 A씨. 기적과도 같은 두 광부의 생환 소식은 핼러윈 참사로 슬픔에 젖어있는 국민들을 토닥이는 위로가 되었다.
추위와 목마름, 배고픔을 견뎌낸,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두 작업자에 대한 열렬한 환영은 오래도록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제 이들을 죽음의 위험으로 내몬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따져봐야할 때다.
"광산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안전한 범위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 형식적으로 (안전 점검)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안전한지 두들겨보고 만져보고 그렇게 해줬으면" 박씨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매몰 원인 찾기 위한 수사 본격화
3개팀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꾸린 경북경찰청은 먼저 사고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아야 업체 측의 과실 여부, 평소 안전 관리의 문제점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
경찰은 7일 오후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와의 합동 감식에서 정확한 갱도 구조를 파악하는 한편 1수갱으로 무너져내린 토사를 채취했다.
갱도 내에 무리하게 굴을 뚫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토사의 유입, 유출 경로가 이와 연관이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채취한 토사는 성분 분석을 의뢰할 방침이다.
수사가 완료되면 업체가 불법적으로 광물 찌꺼기를 매립했다는 일부 가족들의 의혹 제기가 사실인 지도 밝혀질 전망이다.
경찰은 아울러 갱도 내에 안전 설비가 잘돼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다만 추가 붕괴 위험이 높은 탓에 경찰은 작업자들이 구조된 지점(지하 190m)까지 직접 내려가지는 못한다.
경찰은 이날 감식 이후 필요한 경우 추가 감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책임 소재 따져 관계자 입건 예정
경찰은 목격자, 피해자 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일단 먼저 구조된 5명의 작업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 이들에게 생생한 당시 상황을 들음으로써 더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열흘 만에 구조된 박씨와 A씨, 두 명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경찰은 박씨와 A씨에 대한 조사는 신체적, 심리적 회복이 이뤄진 이후에 실시할 방침이다.
업체 측 대표와 관리자들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다. 현재 경찰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입건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책임자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만으로는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해야하지만, 지난 8월 이 광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와 병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8월 사고는 작업자 2명이 암석 위에서 작업을 하다가 암석 바닥이 내려앉은 것으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경찰은 그동안 업체 대표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해왔다.
매몰사고로 고립됐던 작업자들은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합뉴스신고 늦은 이유, 사고 은폐 의혹도 밝혀질 전망
경찰 수사를 통해 업체의 사고 은폐 의혹이 사실인지도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체는 갱도가 무너지기 시작한지 약 12시간 뒤에 소방당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산안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갱도가 붕괴되거나 지반 침하가 발생한 경우 업체는 즉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상황을 보고해야 하고 사고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
업체 측은 왜 이런 기본적인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을까.
일각에서는 지난 8월 사망 사고 이후 또다시 사고가 난 것을 우려한 업체가 자체적으로 구조를 완료한 뒤 사고를 숨기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구조가 늦어지며 고립 기간이 길어졌고 고립이 더 길어졌다면 작업자들이 사망에 이르렀을 수도 있었다. 늦게 신고를 한 행위의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조가 지연됨에 따라 작업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난의 시간도 더 길어졌다. 두 광부를 담당한 의료진은 구조가 사나흘만 더 늦었더라면 이들의 생명이 위험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늦게 신고를 한 부분은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지연은 행정처분 대상이다. 그러나 의혹이 사실이라면 향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양형이 높아질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상황과 열흘 간의 구조 작업
7일 오후 경북 봉화 광산사고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 관계자들이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연합뉴스한편 이 사고는 지난달 26일에 발생했다. 오후 6시 레일 설치 작업을 위해 작업자 7명이 이 광산 갱도 내로 들어갔다. 지하 갱도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은 1수갱과 2수갱, 두 개. 그러나 2수갱은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었고 작업자들은 1수갱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두 시간 뒤 작업자 두 명이 전기가 끊기는 등 이상 신호를 감지했고 이들은 스스로 바깥으로 올라왔다.
실제로 이때쯤 내부에서 토사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체 측은 자체적으로 작업자 구조에 나섰고 약 3시간 뒤 3명 구조에 성공했다.
업체는 새벽 시간까지 계속 자체 구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은 2명을 끝내 찾지 못했고 다음날 오전 8시 34분 소방당국에 상황을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곧바로 소방당국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기관이 구조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작업자들이 진입했던 1수갱은 이미 진입이 불가능한 정도로 토사가 무너진 상태.
1수갱을 더 파냈다간 붕괴될 가능성이 컸다.
구조대는 결국 사용이 중지된 2수갱을 이용해 지하로 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2수갱 역시 암석과 토사로 막혀 있었고 당국은 이를 부수고 파내며 진입로 확보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이 작업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 탓에 시간이 오래 소요됐다. 중반부쯤부터는 전동광차가 투입돼 속도가 높아졌다.
구조 작업이 장기화되면서 소방당국은 작업자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지하로 뚫은 작은 구멍을 통해 내시경과 음파탐지기를 넣어 갱도 내를 탐지한 것. 혹시 작업자들이 전달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구멍을 통해 물과 의약품도 전달했다.
약 열흘 간이 밤낮 없는 구조 활동 끝에 작업자들은 무사히 구조됐다.
현재 안동병원에서 치료 중인 이들은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태다. 그러나 장기간 고립돼 있던 탓에 잠을 설치는 등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한동안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