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부터 정신병원 입소를 두고 아버지와 갈등을 빚어온 40대 아들이 전북 고창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꾸준히 약을 챙겨주던 아버지가 그를 남겨두고 이사한 지 두 달만이다.
4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쯤 고창군 공음면의 한 주택에서 A(40)씨가 집 안에 있는 집기를 사용해 아버지 B(76)씨를 살해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옆집에 피신해 있던 어머니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으나 A씨는 이미 도주한 상태였으며 B씨는 소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 주민 "평소 인사성 좋던 친구…아버지 원망하는 마음 컸다"
황진환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A씨와 B씨는 20여 년 전부터 전북 고창의 모 해수욕장에서 가족들과 슈퍼 딸린 집에 살았다. B씨는 슈퍼와 농사일을 병행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현병을 앓고 있던 A씨의 약을 홀로 챙기며 치료를 도와온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옆집에 거주하는 한 이웃 주민은 "평소 인사성도 좋은 아인데 한 번씩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괴성을 질렀다"고 말했다.
이어 "약을 먹지 않을 때만 그렇고 평소에는 아픈 줄도 모를 만큼 멀쩡했다"고 덧붙였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A씨의 범행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서 기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A씨로부터 줄곧 폭행당해온 것으로 이웃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던 B씨는 A씨를 정신병원 입소시키기로 결심하고 10년 전에 한 차례, 최근 한 차례 총 두 번 정신병원에 A씨를 입소시켰다. 중간 통원 치료는 B씨의 주도로 꾸준히 진행됐다.
또 다른 이웃 주민은 "평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던 아이"라며 "치료시켜주는 것이 아닌 자신을 해치고 있다고 판단해온 모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따라가지 않겠다던 아들…이사 두 달 만에 존속살해 비극
B씨는 지난 9월 딸이 장만해준 고창군의 새집에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지만, A씨는 이를 거부했다.
치매를 앓던 부인과 아들의 치료를 모두 책임지던 B씨는 고심 끝에 부인과 단 둘이 새집으로 이사한다.
평소 아버지가 A씨의 약을 챙겨줬지만, 이사한 이후 A씨의 병을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홀로 남은 집에서 무직으로 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은 "(A씨가) 이웃과 원래부터 자주 왕래하던 사람은 아니다"며 "최근에 그의 형제들을 따로 본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치료를 돕던 아버지가 떠난 후 A씨는 누구와의 왕래도 없이 홀로 지낸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A씨는 사건이 발생한 4일 오전 4시쯤 아버지 B씨가 살고있는 집으로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공조 수사 통해 붙잡아…"체포 시 저항 없었어"
황진환 기자경찰은 A씨가 1t(톤) 트럭을 통해 도주한 것을 확인하고 전남 등 각 경찰서에 A씨의 얼굴 사진을 보내는 등 전국에 공조 수배를 요청했다.
공조 요청을 받은 전남 영광경찰서는 오전 8시 40분쯤 A씨의 차량 번호를 조회한 후 폐쇄회로(CC)TV를 통해 A씨의 차량이 법성면을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무전을 받고 출동한 인근 순찰차와 마주친 A씨는 1t(톤) 차량을 영광군 법성면의 한 도로공사 현장 인근의 논에 버리고 갈대밭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갈대밭을 포위하고 A씨에 대한 도주로를 차단했으며 약 1시간여 동안 갈대에 숨고 도주하기를 반복하던 A씨는 결국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도주 당시 흉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갈대밭에서 숨어있었던 것은 맞지만, 체포 당시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