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참사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8년 동안 싸운겁니다. 근데 무엇이 바뀐거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원석(단원고 2학년 6반)군의 어머니 박지미씨는 1일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8년 만의 악몽 재현…"왜 아무것도 변하질 않죠?"
목포신항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 김광일 기자지난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304명이 사망·실종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이로부터 8년여가 지난 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규모의 '이태원 참사'가 이어졌다. 사상자의 규모부터 피해자 대부분이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젊은 세대였다는 점이 두 참사의 공통점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원고 학생들의 119와 112, 122 등에 대한 전방위 구조 요청이 묵살되고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이 피해를 키윘다. 이태원 참사도 사고 전에 "압사위험이 있다"는 절박한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되면서 공통점은 더 늘어나고 있다.
그래픽=김소영 기자이날 경찰청은 이태원 참사 관련 11건의 112 신고 접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을 통해 사고 약 4시간 전부터 이태원 골목의 혼잡도가 시민들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박씨는 "다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지금까지 노력한 것인데, 또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며 "용산에는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경찰이 사방에 깔려 있는데, 왜 근처인 이태원에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경찰이 없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혼잡한 지역을 찾아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듯 한 일부 비난 여론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젊음을 즐기지 못한 세대"라며 "이들이 잠시 젊음을 만끽하려고 한 것을 두고 비난한다면 피해자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안주현(단원고 2학년 8반)군의 어머니 김정해씨도 "우리가 바랐던 것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안전망이었는데, 8년이 지났음에도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며 "이런 참사가 재발한 것은 안일한 정부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꼬집었다.
"자식 잃은 슬픔 누구보다 잘 알아" 위로의 메시지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박씨는 "나는 아직도 우리 아이가 살아 있는 것 같아 사망신고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를 잃은 슬픔은 내가 죽어야 끝나는 것인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도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딸(김초원 교사) 생각과 유가족들이 겪고 있을 슬픔에 요즘 잠에 들지 못한다"며 "허망하게 아들, 딸을 보낸 슬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도 못 한다"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밥을 먹어도 자갈을 씹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충격이 심해 정신과 치료도 소용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하니 조금이라도 몸을 챙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재단, 4·16연대 소속 유가족 등 27명은 전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마련된 임시 추모공간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김종기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갑작스러운 비보로 고통에 잠겨있을 유가족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같은 아픔을 먼저 겪은 아빠로서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 책임을 묻고 예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국민이 비극적 참사의 유가족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국가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