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캐롯 이종현. KBL203cm의 장신 센터 이종현은 아마추어 시절 한국 남자농구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센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이종현이 활약하던 시절 고려대는 대학농구 무적의 팀이었고 그는 모두의 예상대로 2016년 KBL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커리어는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부상이 끊임없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20년 고양 오리온(현 캐롯)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부상이 반복됐고 부상 여파로 인한 기량 저하도 피할 수 없었다.
오리온에서 대학 시절 가까웠던 빅맨 이승현과 의기투합했지만 이승현은 자유계약선수(FA) 권리를 얻어 전주 KCC로 떠났다. 올 시즌 캐롯은 토종 빅맨이 담당하는 4번 포지션이 10개 구단 중 가장 약하다는 평가다. 전성기 이종현이 있었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김승기 캐롯 감독은 15일 오후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프로농구 원주 DB와 개막전을 앞두고 이종현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김승기 감독은 "이종현은 경기에 뛰면 안 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어떻게서든 이종현을 살려보고 싶다"는 김승기 감독은 "그래서 일부러 통영 컵 대회에 안 데려갔다. 태도가 안 좋았다. 그동안 연습경기를 할 때 출전시간을 많이 줬다. 따라오지 못하고 안주하더라. 못 해도 경기에 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승기 감독은 "이종현이 날 찾아오더라. 경기에 뛰고 싶다고. 뛰고 싶으면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만들라고 했다"며 "옛날의 이종현이면 말이 필요없다. 예전이 100%라면 지금은 10%가 될까 모르겠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뛰어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종현은 이날 주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예전처럼 당장 팀의 주요 공격 옵션을 맡기는 어렵다. 데이비드 사이먼, 디드릭 로슨 등 외국인선수들과 골밑을 지키고 전성현, 이정현, 한호빈 등 외곽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을 스크린 등으로 지원하는 역할이다.
이종현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공에서, 동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경기 초반 적극적으로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DB산성'이라 불리는 DB를 상대로 리바운드 경쟁력을 발휘하면서 팀에 기여했다.
이종현의 시즌 첫 득점은 그가 공격리바운드를 직접 잡아 만들어낸 공격권에서 비롯됐다. 1쿼터 중반에는 드완 에르난데스의 골밑슛을 블록하기도 했다.
공을 잡고 빠르게 판단하지 못했거나 실수로 이어진 장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승기 감독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고 이종현도 벤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에도 이종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후반 20분 동안 풀타임을 소화했다. 벤치의 기대와 믿음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3쿼터 막판에는 로슨의 절묘한 어시스트를 받아 이날 자신의 두 번째 야투를 성공했다.
이종현은 32분 동안 4득점 8리바운드 2블록슛을 기록했다.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캐롯의 골밑에 큰 힘을 실어주며 87-80 창단 첫 승에 기여했다. 시즌 출발이 나쁘지 않다. 이종현이 30분 이상 출전한 것은 2018년 12월 이후 약 4년 만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