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P 우승자의 샷' 권순우가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테니스 단식 1회전 정윤성과의 경기에서 리턴샷을 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코리아오픈대회조직위원회'한국 남자 테니스 간판' 권순우(121위·당진시청)가 후배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26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16강에 올랐다. 1년 후배 정윤성(426위·의정부시청)도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권순우는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총상금 123만7570 달러)' 단식 1회전에서 정윤성을 눌렀다. 1, 2세트를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2 대 1(7-6<7-5> 6-7<3-7> 6-1)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9월 아스타나오픈 우승 이후 1년 만의 ATP 투어 단식 3회전 진출을 노린다. 권순우는 오는 29일 2회전 16강전에서 젠슨 브룩스비(46위·미국)와 맞붙는다. 둘의 첫 대결이다.
권순우와 정윤성의 세계 랭킹 차이는 300위 이상. 그러나 승부에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24살 정윤성은 힘이 넘치는 샷으로 현재 한국 선수 최고 랭커를 괴롭혔다. 앞서 3번의 대결에서 정윤성은 오히려 권순우에 2승 1패로 앞서 있었다.
1세트부터 타이 브레이크 접전이었다. 정윤성은 패기를 앞세운 도전적인 스트로크로 선배를 압박했다. 권순우는 그러나 투어 수준급 선수답게 경험과 관록으로 응전했다. 특히 짧은 스트로크에 상대에 에이스를 내줄 위기에서 정윤성이 날린 회심의 백핸드 스트로크를 예측해 받아넘긴 장면이 압권이었다. 결국 정윤성의 백핸드가 허공을 가르며 권순우가 1세트를 따냈다.
하지만 정윤성은 기죽지 않았다. 2세트 게임 스코어 3 대 3에서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해 3 대 5로 쫓기는 상황. 정윤성은 권순우의 서빙 포 더 매치(Serving for the match)에 몰렸지만 브레이크로 되갚으며 기사회생했다. 여세를 몰아 다시 세트를 타이 브레이크로 끌고 간 뒤 파워 스트로크로 권순우의 백핸드 미스를 유도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정윤성이 27일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총상금 123만7570 달러)' 단식 1회전에서 권순우를 상대로 강력한 서브를 넣고 있다. 조직위권순우는 그러나 ATP 투어 우승자다웠다. 분위기를 자칫 정윤성에 내줄 수 있었지만 마지막 3세트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좌우 코너를 찌르는 정교한 스트로크로 정윤성의 힘을 뺐고, 공이 네트를 타고 떨어지는 행운까지 따르며 초반 3게임을 따냈다. 정윤성도 1게임을 지키며 마지막 힘을 짜냈지만 세계 강호들을 상대해온 권순우의 노련한 운영에 밀렸다.
경기 후 권순우는 "윤성이가 너무 잘했다"면서 "둘 다 컨디션이 최상이라 좋은 경기를 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친한 선후배, 게다가 상대 전적에서 뒤진 상황. 여기에 랭킹까지 훨씬 높은 권순우로서는 이겨도 본전이 될 경기일 수 있었다. 권순우는 그러나 "부담도 있었지만 윤성이는 예전부터 잘 했던 선수였다"면서 "내가 제일 잘 하는 선수가 아니라 부담 없이 마음 편히 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승부에 대해 권순우는 "첫 세트는 내가 포인트 관리를 더 잘 했지만 2세트 기회를 놓쳐서 윤성이가 오히려 포인트 관리를 잘 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3세트 상대가 집중력 흐려지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타이트하게 붙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려면 윤성이가 흐트러질 거라 생각했다"고 승인을 밝혔다.
특히 권순우는 "예전 같았으면 1세트 이기고 2세트를 뺏기면 무너졌을 것"이라면서 "ATP 투어를 다니면서 큰 경기 때 느낀 게 평정심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는데 서브 게임을 뺏겨도 자신 있게, 여유 있게 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경기 중 "집중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같은 이유다.
권순우는 후배에 대한 조언을 묻자 "같은 선수로서 평가하는 게 좀 그렇다"고 조심스럽게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예전에는 윤성이가 경기 중 화도 많이 냈는데 평정심을 유지하더라"면서 "오늘 서로 좋은 경기를 했고 매너도 좋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많이 좋아졌고, 여유가 더 생긴 것 같다"고 선배로서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 테니스 간판답게 팬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특히 이번 대회는 1996년 KAL컵 이후 26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ATP 투어다. 권순우는 "평일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팬들이 와주셨다"면서 "응원 덕에 이길 수 있었다.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브룩스비와 16강전에 대해서도 "공이 세지 않지만 플레이 스타일이 다양해 까다로운 선수"라면서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 다시 긴장의 끈을 조여맸다.
권순우가 27일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총상금 123만7570 달러)' 단식 1회전에서 정윤성을 꺾은 뒤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조직위정윤성도 졌지만 장점인 파워 스트로크가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자력으로 생애 첫 ATP 투어 본선 진출을 이룬 성과도 있었다.
경기 후 정윤성은 "순우 형과 오랜만에 경기해서 좋았고 투어 본선에 뛰어서 기대도 많았고 긴장도 됐다"면서 "져서 아쉽기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잘 끝낸 거 같고 후련하다"고 첫 투어 본선 경기 소감을 밝혔다. 이어 권순우에 대해 "첫 서브 확률도 너무 좋아졌고 강점을 많이 살리도록 많이 훈련한 것 같다"면서 "형이 너무 잘 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센터 코트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정윤성을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컸다. 이에 정윤성은 "한국에서 시합한 것도 정말 오랜만인데 테니스가 인기 스포츠가 됐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응원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면서 "그래서 더 기쁘고 행복했다"고 팬들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윤성은 2020년 이탈리아와 데이비스컵 원정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경기에 대해 "국내에서 팬들이 없는 경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익숙하다"고 너스레를 떤 바 있다.
모처럼 국내에서 열린 ATP 투어에서 멋진 경기를 펼친 한국 테니스의 현재와 미래. 권순우는 코리아오픈의 도전을 이어가고, 정윤성은 10월 3일부터 열리는 ATP 광주 챌린저에 출전한다. 챌린저 대회는 투어보다 한 등급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