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령도 무력화? 발표 늦춰지는 개정안 속사정은[노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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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 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 깔아봅니다.

추석 전 발표한다던 중대재해법 시행령 정부 개정안, '9월 중 발표'로 늦춰졌습니다. '태풍 수습'에 바쁘다는데, 막판에 경영계 요구사항을 끼워넣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경영계는 사업 대표의 처벌을 피하도록 '경영책임자 법위'를 확대해달라는데요. 법적 근거도 부족한데다, 중소기업에는 먼 나라 얘기나 다름없다네요. 대신 중소기업은 '안전보건 관리체계 인증제'를, 노동계는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과도하게 축소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편 2024년이면 5인~49인 사업장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데, 시행령 개정보다 법 제도 안착에 집중하자는 지적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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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정부 개정안 발표가 임박해 마지막 조정 국면에 돌입했다. 이미 윤곽을 갖춘 정부 개정안의 골자에서 노사 양측의 요구가 얼마나 더 반영될 것인지 주목된다.

발표시점 늦춰지는 중대법 시행령 정부 개정안, 경영계 '입김' 들어가나?


10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 달(9월) 안에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 초안을 이미 완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추석 연휴 전에 발표하리라 예상됐지만, 발표 일정이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다음 주에도 발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개정안 발표가 늦어지는 원인으로 정부는 우선 태풍 '힌남노'를 지목한다.

중대재해법은 비단 중대산업재해 뿐 아니라 다양한 부처가 연관된 중대시민재해도 함께 다루는데, 태풍 피해 복구에 바빠 관계 부처 협의가 늦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이 과정에서 개정안 내용을 놓고 막판 세부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존 초안에서 어떤 내용이 추가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일각에서는 경제부처 등을 중심으로 경영계의 요구사항을 개정안에 반영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상당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워낙 예민한 사안이어서 여러 방식으로 의견을 듣고 수정 작업을 반복하며 신중히 작업하고 있다"며 "이 달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목표지만, 입법 예고를 위한 여러 절차 등을 고려하면 늦으면 9월 마지막 주에 발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근거 없는 '경영책임자 범위 확대', 끝내 시행령 개정 포함될까


시행령 개정을 둘러싸고 가장 논란이 됐던 사안은 '경영책임자'의 범위 확대 여부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어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는데, 이 때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사업대표 등을 대신해 책임질 수 있도록 시행령에 새로운 규정을 만들라는 것이 경영계의 요구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노동·안전·법률 전문가들은 물론, 주무부처인 노동부도 중대재해법에 규정된 조항을 하위법령인 시행령에서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대재해법은 민간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이미 명시했다.

따라서 현행 법에 따르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CSO를 따로 선임하더라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수준에 '준하는' 권한·책임이 없다면 결국 최종 책임은 대표이사 등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류영주 기자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류영주 기자
노동부 이정식 장관도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입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위임된 한계 내에서 입법 취지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 가장 큰 원칙"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더구나 이러한 경영계의 요구는 이른바 '경영상의 혼란'을 줄이자는 것일 뿐, 중대재해를 감축하려는 법 제정 취지를 위한 요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회사 경영진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중대재해를 예방·감축하려는 중대재해법의 기본 목표에 역행하는 주장에 가깝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법적 근거가 없는 요구사항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보다 유연하게 해석해달라고 요구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임우택 안전보건본부장은 "법 규정의 CSO 관련 규정은 (시행령에 대한) 위임 근거가 없다"며 "시행령 개정이 큰 폭으로 이뤄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영책임자에 준하는 자가 선임되면 대표이사가 면책되느냐 관련 부분을 정부가 해석지침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부분을 정부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경영책임자 논란, 중소기업에는 남 얘기…"인증제가 핵심 요구사항"



다만 이에 대해 경영계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중대재해가 주로 발생하는 중소 사업장의 경우, 대개 사장 외에 CSO를 따로 선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양옥석 인력정책실장은 "중소기업에서는 사실상 대표 한 사람이 안전보건 등 모든 것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며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게는 (CSO 논란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신 양 실장은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이행의 내용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부가 기준을 정해 제대로 구축했는지 살피고 인증해달라는 것"이라며 "물론 사업주가 산재 예방의 주체지만, 정부 역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안전보건 인증제를 담은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또 최근 기획재정부가 노동부에 제안한 시행령 개정 방안에서도 인증제를 다뤘다.

다만 인증제가 도입되면 자칫 실제 현장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작동 상황보다 인증 여부에만 집중돼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낮추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勞, 중대재해법 안착이 최우선 과제…관계법령 확대해 규제 실효성 높여야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의 애초 법 제정 취지인 중대재해 감축을 제대로 달성하려면 관련 규제를 더 꼼꼼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중대재해법에서 지키도록 하는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범위다. 노동부는 중대재해법 해설서에서 광산안전법, 선원법, 항공안전법, 원자력안전법 등 특정 업종, 사업장에서 지켜야 할 10개 법령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이를 아예 시행령에서 나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최명선 안전보건실장은 "본래 시행령 4조에서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인력, 예산을 편성하도록 의무화했는데, 노동부 초안에는 산안법 등 특정 법령으로 제한된다"며 "이럴 경우 2인 1조 근무 원칙 등 주요 안전 장치가 다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사망사고가 잦은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작업을 다루는 건설기계관리법, 폭발·화재 사고를 막는 소방법 등도 10개 법령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대로라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중대재해조차 중대재해법 보호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가 시행령 개정 논란에만 발목을 잡히기보다 중대재해법이 현장에 안착해 실제로 재해를 감축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한국노총 김광일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법 시행으로부터 이제 겨우 200여일 지났고, 실제 처벌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경영계도 더 이상 '대표이사 구하기'에만 올인할 때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현장에서 이해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특히 2024년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법 대상으로 들어오는데 이 사업장들은 아직 중대재해법에 관심도 없다. 이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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