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러몬도(오른쪽) 미국 상무장관의 인터뷰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 6일(현지시간) 보도에 등장하는 사진. WSJ캡처미국정부가 우리 기업들의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놓고 정작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하는 법을 시행중인 가운데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 투자를 고려하던 대만의 반도체 회사를 설득해 미국 투자로 이끌어 간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나 러몬도(51) 미국 상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나온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첨단 산업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상무부가 해왔던 사례들을 소개했다.
우선 상무부는 지난 2월 대만 글로벌웨이퍼스가 50억달러 규모의 독일 투자 계획을 포기하고 대안을 찾기 시작하자 글로벌웨이퍼스에 접촉했다고 한다.
글로벌웨이퍼스는 세계 3위의 웨이퍼 생산업체다.
러몬도 장관은 특히 지난 6월에는 무려 1시간에 걸쳐 도리스 수 글로벌웨이퍼스 대표(CEO)와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당시 수 대표는 러몬도 장관에게 "미국의 보조금이 없다면 건설비가 미국의 1/3인 한국에 새 공장을 짓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러몬도 장관은 수 대표에게 "우리는 그 계산이 잘 되도록 하겠다(We will make the math work)"며 설득으로 응수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27일 글로벌웨이퍼스는 텍사스주 셔먼에 50억 달러(6조 9천억원) 규모의 신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은 최대 1500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매월 120만개의 웨이퍼를 제조해 TSMC, 인텔 등에 공급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당시 수 대표가 반도체산업 육성법안의 통과를 미국정부에 압박하기 위해 한국 투자 카드를 꺼내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반도체산업 육성법안이 한 달 뒤 하원을 통과한 정황과 러몬도 장관의 후일담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정부의 발빠른 대응이 글로벌웨이퍼스의 미국 투자를 성사시킨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연합뉴스러몬도 장관의 로비력은 다른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월스트리트보도에 따르면 러몬도 장관은 '개인 외교'를 활용해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인도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개인 외교'란 다름 아닌 인도의 담당 장관에 대한 '로비'를 말한다.
인도 피유시 고얄 상무장관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몬도 장관과 국제전화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러몬도 장관은 이번 인터뷰에서 "우리가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미국에서의 투자"라며 "미국이 핵심 광물,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특정 기술 분야를 지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몬도 장관이 이끄는 상무부가 중국의 지정학적 야심과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에서 '운전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상무부가 우호국들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통신장비 등 수출을 차단하는 수출통제를 주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러몬도 장관은 10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을 수출규제 리스트에 추가하는 등 미국의 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