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원석 후보자가 운이 되게 좋으신 것 같아요. 힌남노 태풍 때문에 국민적 관심이 그쪽에 쏠려있고, 거기에다가 오늘 야당 위원님들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여당 위원에 대해 흠집, 혹은 자격 요건에 대해 공방을 펼치고…(중략) 이원석 후보자 청문회가 아니라 최강욱 위원 청문회로 바꾸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에게 이처럼 운이 좋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장에서 정작 이원석 후보자 본인 문제보다 김건희 여사,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의혹을 둘러싼 공방만 오간 것을 두고 한탄조로 내뱉은 말이다.
청문회 초반 여당은 최강욱 의원의 청문회 참여 자격을 집요하게 문제 삼으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인사청문회법 제17조 1항(제척과 회피)에 따르면 위원은 공직후보자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거나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으면 그 공직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 참여할 수 없다. 최 의원은 총 3건의 형사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①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법무법인 명의의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의혹 ②총선 기간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의혹 ③채널A 사건 관련 허위 녹취록 요지 글을 게시해 채널A 기자를 명예훼손한 의혹 등으로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박주민·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제원·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의 과거 선례를 언급하며 최 의원 방어에 적극 나섰다. 이에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단순 여러 건의 민사사건이 아니라 형사사건이 계류돼 있어 검찰을 지휘해야 할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이해 관계가 상충된다고 볼 수 있다"며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당사자인 최강욱 의원까지 "말씀하는데 끼어들지 말기 바란다"거나 "고장난 레코드가 열심히 돌고 있다"는 등 감정 섞인 발언을 내뱉으면서 청문회장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최 의원의 청문회 참석 적절성 논란은 결국 공방으로만 끝났다.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야당은 오후 청문회 대부분 작심한 듯 '김건희 의혹'을 집중 추궁하며 반격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소득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김 여사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촉구성' 질의가 계속되자 이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장관들이 이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권을 배제해 파악하는 바가 없다며 전 정권 책임으로 돌렸다.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박범계 법무부장관과 김오수 총장, 이정수 검사장 체제 하에서 이 주가 조작 사건 관련해 다 기소하면서 왜 김건희 여사만 기소를 안했는지 박 장관에게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되는 게 아니냐"며 후보자의 지적에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야당이 예상됐던 도발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가 하면 후보자 본인과 큰 관계없는 의혹 제기에 집착하다 시간과 명분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정작 후보자 본인 의혹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맥 빠지고 성의 없는 질의는 이런 비판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이 후보자의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 유출 의혹은 다루기에 따라서 후보자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이 후보자는 감찰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한정해 통보했을 뿐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왜 40회나 넘게 여러 번 통화했는지 △영장 청구 예정 사실까지 통보한 게 사실인 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 후보자는 40여 차례 통화라고 하지만 모든 통화가 5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뤄졌다는 점, 윤리감사관과 사법연수원 동기일뿐 사적 인연이 없다는 점, 영장 관련 내용은 자신이 전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적극 해명에 나섰다. 후보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누가 영장 내용을 통보했는지 등은 여전히 미궁이었지만 야당의 집요한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특정 의혹을 거론하지 않고 무작위로 자료 제출을 압박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당황케 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문회 내내 이 후보자의 자녀들에 대한 출신 학교별 학적 변동 현황, 장학금 수령 내역 등의 제출을 요구했다. 이 후보자는 자녀들이 일반 인문계고 출신으로 대학에 정시 입학했고 장학금도 받은 적이 없다며 제출할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골프장 회원권이나 예술품 소장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소지한 적이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권 의원은 이 후보자에게 '없다는 주장'을 증명하라는 요구만 반복해 반감을 샀다.
청문회 다음날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 후보자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에 충성을 다하는 권력의 시녀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야당 청문위원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정도로 자신들의 청문회가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민들이 힌남노 태풍 등으로 검찰총장 청문회를 제대로 못 봐서 운이 좋았던 쪽은 이 후보자일까. 민주당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