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식고문' 의혹에도…물증 없으니 학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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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영상 등 물증 없는 아동학대 증언…'증거 인정' 쟁점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 유치원에 다니던 민아(6세·가명)양은 2020년 2월 "선생님이 음식을 억지로 먹였다"며 학대 피해를 털어놨습니다. 민아양이 피해를 털어놓은 직후인 지난해 8월, 가족은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지만 서울청 아동학대 특별수사대 '증거불충분'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CCTV 영상 등 '물증'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7월 중순 사건을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 의뢰해 피해 아동 증언에 대한 진술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진술분석을 통해 민아양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 경찰 조사 때와 달리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아동은 진술이 일관돼도 대부분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피해 아동 진술에 대해서도 신빙성을 면밀히 판단해 증언만으로도 증거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의 관리 부실로 아이들이 위험에 빠진 실태를 CBS노컷뉴스가 두 편에 걸쳐 고발합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보내기 겁난다②]
2020년 2월 송파구 대형 유치원 교사 학생에게 '밥 억지로 먹여'
아동학대 혐의, 서울경찰청 '증거 불충분'… "CCTV 등 물증 없다"
피해 아이 부모 "수사관이 '진술뿐이면 처벌이 어렵다' 말했다"
전문가들 "아동 피해자 진술이 일관된 경우 증거 능력을 인정 받아야"

나은양이 지난해 퇴소 전 유치원에서 써온 글. "엄마 꼭 혼내야 될 것 있어요"라고 쓰여있다. 이씨 제공나은양이 지난해 퇴소 전 유치원에서 써온 글. "엄마 꼭 혼내야 될 것 있어요"라고 쓰여있다. 이씨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단독]곰팡이 천지에도 방치, 쉬쉬한 어린이집…학부모들 '분통'
②유치원 '식고문' 의혹에도…물증 없으니 학대 아니다?
(끝)

"내가 입을 닫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입을 억지로 벌렸어요."
"밥 먹을 때 이거 억지로 먹였는데 내가 더 이상 못먹어서 화장실 가서 뱉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힘들었는데 선생님은 말을 안했어요."

 
지난해 8월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 유치원에 다니던 민아(6세·가명)양은 인형으로 상황극 놀이를 하던 중 어머니 이모씨에게 2020년 2월 담임 교사였던 A씨가 자신에게 밥을 억지로 먹인 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민아양은 "밥을 그만 먹고 싶다고 하니 선생님이 김치랑 고기랑 부추랑 섞어서 주먹만큼 커진 것을 통째로 억지로 먹였다"며 "더 이상 못 참고 화장실 가서 세면대에 토했다"고 진술했다. 어머니 이씨는 "피해 사실을 처음 털어놓은 이후부터는 아이가 하루에도 30~40번씩 당시 상황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했고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면서 '억지로 먹인 게 생각난다'는 말을 하는 등 감정적으로 불안한 반응을 자주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민아양은 신경정신과에서 중증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학대 피해로 인한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민아양이 피해를 털어놓은 직후인 지난해 8월, 가족은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지만 서울청 아동학대 특별수사대는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CCTV가 이미 지워진 상황이라 물증이 부족했고 아이의 증언을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당시 담임교사였던 A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7월 중순 사건을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 의뢰해 피해 아동 증언에 대한 진술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술분석을 통해 민아양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 경찰 조사 때와 달리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가족 측 경찰 '늑장 수사' 주장 "수사 중 '처벌 어렵다' 발언 있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이런 가운데 가족 측은 "경찰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지난 6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수사관 등 책임자들을 직무유기로 고소한 상태다.
 
이씨는 "지난해 9월 서울청 아동학대전담팀에서 수사가 시작된 이후, 사실상 수사 진척이 없다가 지난 2월 수사관이 바뀐 뒤에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돼 대부분의 증거가 상실됐다"며 "수사관이 '진술뿐이면 처벌이 어렵다'고 말하는 등 태도도 부적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의자 대면조사는 신고 8개월 후, 참고인 조사는 5개월 후에야 이뤄졌다"며 "사건 발생 초기 증언이 가능하다고 했던 같은 반 동료 원생마저 수개월이 지나면서 증언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가 시작되고 두 달 뒤에야 경찰이 현장 CCTV를 확보했다. 포렌식을 진행해보니 사건 당일 기록은 한 달 전에 삭제됐다. 한 달 전에라도 확보했으면 증거가 나올 수 있던 상황 아니냐"고 주장했다.
 
실제 서울청 감사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수사 과정에 일부 부적절한 점이 있었다는 대목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감찰수사계는 지난 4월 담당 수사관이 실제로 '진술뿐이면 처벌이 어렵다', '그런데 신고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 수사 매뉴얼을 위반했다며 '주의' 처분을 내렸다.
 
또 국민권익위는 지난 5월 결정문에서 "수사를 개시한 날부터 매 1개월이 지난날 수사진행상황 통지를 해야 함에도 수사관이 변경되기 전까지 약 5번의 수사 상황 통지를 누락했고 수사 개시 3개월 초과 시점에 부서장에게 수사기간 연장 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승인을 받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며 "해당 경찰관의 업무처리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며 시정을 권고했다.
 
다만 경찰은 늑장 수사라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범죄 일시보다 6개월 이상 경과되어 신고된 것으로 이미 영상이 삭제돼 복원이 어려웠던 점 등으로 보아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지었다.

 

물증 없는 아동학대 피해, 일관적 증언에도 '증거 인정' 어려워


나은양이 그린 본인과 가해 선생님의 모습. 가해 선생님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이씨 제공나은양이 그린 본인과 가해 선생님의 모습. 가해 선생님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이씨 제공
가족 측은 나은양이 피해를 처음 호소할 때부터 최근까지 일관적으로 증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증'이 없으면 아이의 증언이 증거로 채택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나은양이 지난해 9월 해바라기 센터에서 상담받을 당시 동석했던 진술조력인은 "아이가 잘못된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지 체크하는데 '아빠랑 왔지?'라는 질문에 아빠, 엄마라고 바로 정정했고 또래처럼 조금 산만할 때도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다 했을 정도로 집중력을 보였다"며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안다는 표현을 진술녹화가 끝난 후 부모에게 해주었다. (중략) 또래에 비해 진술 능력이 높았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아동학대 범죄와 성범죄가 비슷한 부분은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아는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며 "차이점은 성범죄 같은 경우는 피해자의 진술이 이렇게 일관성이 있는 경우 증거 능력을 인정 받지만 아동의 경우 대부분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유치원 뿐 아니라 학원 등은 CCTV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일부 가해자들은 일부러 CCTV 없는 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며 "아동 학대의 경우에도 증언분석 등 통해 신빙성을 면밀히 판단해 증언만으로도 증거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동학대 범죄에 있어서도 '아이들 진술이 일관되면서 믿을 만하다'고 판사가 판단을 하는 경우 상급심에서 유죄 판결이 된 적이 있다"며 "경찰은 너무 증거 중심주의적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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