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대표가 쏘아올린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되면서 국민의힘이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권성동 원내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분출하고 있다. 지도부가 현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쇄신론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이 부딪치면서, 국민의힘의 '비상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27일 다섯 시간에 걸친 마라톤 의원총회를 거쳐 새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를 촉구하기로 했다. 결의문에는 "원내대표의 거취는 이번 사태를 수습한 후 의원총회 판단에 따르기로 했음"이라는 문구도 포함됐다. 의원총회에서 권 원내대표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다수 나왔지만, 결국 사태 수습 전까지는 '권성동 체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음을 못 박은 것이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사퇴와 현 지도부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에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의 결정에 반박하는 '권성동 책임론'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권 원내대표를 향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책임정치의 시작은 권성동 원내대표의 사퇴"라며 "새로운 원내대표와 지도부가 구성되어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빠르고 깔끔하다"고 주장했다. 4선의 윤상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권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것이 정치, 민주주의, 당,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3선 김태호 의원도 "권 원내대표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사태 수습의 첫 단추"라고 글을 올렸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제 다시 권성동 체제로 돌아갈 건가. 떠나는 민심은 어떡하려고 자꾸 그렇게 하나"고 비판했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지도부 사퇴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허은아 의원도 "비상한 각오와 당 지도부의 책임지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허망하기만 하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권 원내대표의 리더십 위기는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지난 4월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후 검수완박 합의에 이어 9급 공무원 발언,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 노출 등 치명적인 실수가 연달았다. 이미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는 비대위 출범에 대한 책임론을 들어 권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 절차 끝에 가까스로 원내대표직을 유지했지만, 열흘 만에 다시 책임론이 분출된 것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8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처럼 사태에 책임이 있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 수습을 맡아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자진사퇴론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부를 꾸려 당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원내대표가 임기 중 사퇴 또는 사고로 인하여 궐위된 때에는 궐위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를 의원총회에서 실시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선출시기를 달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면서 절차나 시간 소요에 따른 제약은 크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당 대표가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고, 비대위원장도 직무가 정지된 사실상 '지도부 공백' 상태에서 사태 수습을 위한 권 원내대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현실론도 비등하다. 박수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현 사태 수습이란 당헌 당규의 개정과 이에 따른 새 비대위의 출범"이라며 "1~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동안 당 지도부가 있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한 재선의원은 "당의 의사 결정을 할 주체가 혼란스러운데 원내대표까지 물러나면 완전한 지도부 붕괴 사태"라며 "새 지도부 안착 때까지 권 원내대표가 어려워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