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성 접대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접대 제공자로 지목된 '핵심 참고인'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에 대한 마지막 접견 조사를 마쳤다.
그런데 조사에 임한 김 대표의 증언이 경찰의 혐의 입증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내용들이라서 배경을 놓고 의문이 증폭된다.
경찰 조사의 맥락은 마지막 참고인 조사를 통해 '공소시효' 여부를 판단한 뒤 다음 주부터 이 전 대표 등 피의자들을 소환한다는 것이다. 공소시효의 핵심은 여러 향응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제공됐다는 '포괄일죄' 입증이 필수적인 반면, 김 대표의 증언 내용은 포괄성을 분절시키는 발언이었다.
2013년의 성접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소개받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2014년 이후 향응은 SK 최태원 회장의 사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공소시효 도과 등 난관을 해소하기 위해 김 대표의 진술을 끝까지 청취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성진 "2014년 두 차례 접대…대가는 SK 최태원 회장 사면 추진"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 측 법률대리인인 강신업 변호사가 지난 4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기자회견 중 김 대표의 자술서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김 대표에 대한 6차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이날 조사는 오전 9시쯤부터 시작돼 오후 5시까지 이어졌으며, 마지막 참고인 조사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의 법률대리인 강신업 변호사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이뤄진 접대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김 대표가 이 전 대표에게 접대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날짜는 2014년에만 11월 15일, 12월 20일로 두 차례다. 나머지 날짜에도 몇 차례 만남은 있었지만 접대 행위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11월 15일에는 송파구 한강에 있는 배 위 레스토랑에서 이 전 대표를 포함해 7명의 사람을 만나 음식과 와인을 먹었고, 이때 김 대표가 음식값으로 195만 원을 냈다고 한다. 또 12월 20일에는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 김 대표와 이 전 대표가 단둘이 만나 식사비와 와인 값을 포함해 100만 원어치 접대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때 두 차례 접대에서 모두 김 대표는 이 전 대표에게 SK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언급했다고 진술했다. 강 변호사는 "(김 대표가) 최태원과 터키·중국 등에서 같이 사업하고 있었고, 최 회장 도와주면 아이카이스트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최 회장이 밖에 나와야만 큰 배포를 갖고 함께 사업을 벌일 수 있기 때문에 아이카이스트 사장으로서 사면이 중요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김 대표의 최 회장 사면 부탁에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12월 20일의 경우 김 대표가 최 회장 사면을 얘기했는데 이 전 대표가 별 반응이 없자 이 전 대표를 보내고 다른 사람과 어울렸다고 증언했다.
이후 둘은 2015년 1월 6일 새누리당 김상민 전 의원 결혼식 날 다시 만났고, 이때 최 회장 사면에 대해 추가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강 변호사는 "이준석이 2015년 1월 초쯤 (김 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저번에 김 대표가 말한 그걸 다시 추진해 보자'고 했고, 1월 6일 결혼식장에서 만나 최 회장 사면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종합하면 2014년 두 차례의 접대는 김 대표가 최 회장에 대한 사면을 청탁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고, 당시엔 이 전 대표가 거절했지만 2015년 1월 초쯤 그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13년 접대 - 박근혜 만남, 14년 접대 - 최태원 사면…포괄일죄 어려워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문제는 이 같은 진술로 '포괄일죄' 적용이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앞서 김 대표 측은 2013년 7~8월 이 전 대표에게 두 차례 성 접대를 했고, 그 대가로 같은 해 11월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이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특가법상 알선수재의 공소시효는 7년이라 이때를 기준으로 하면 2020년 11월 시효가 이미 도과됐다.
그러자 김 대표 측은 2013년 7월 성 접대를 시작으로 매년 크고 작은 접대를 이어갔고, 2015년 9월 추석 선물까지의 접대를 하나의 포괄일죄로 묶으면 마지막 접대를 기준으로 올해 9월까지는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괄일죄를 적용하려면 모든 접대 행위가 '단일한 범죄 의사'를 갖고 이뤄져야 한다. 김 대표의 진술에 따르면 2013년 이뤄진 성 접대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이뤄졌고, 2014년 접대는 SK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목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두 접대 행위의 목적이 달라 각각 분절되는 것으로 포괄일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게다가 이 전 대표는 2015년 1월 중순 이후부터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수첩 파동'으로 인해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수첩파동이란 2015년 1월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건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라고 적힌 김 대표의 수첩이 언론 카메라에 잡혀 논란이 된 사건이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외부에 공개되면서 홍역을 치렀는데, 수첩의 내용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A씨가 문건파동의 배후로 K(김무성), Y(유승민) 등의 정치인을 지목하는 대목이다.
당시 김무성 대표가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여당의 두 거물 정치인을 지목했다는 취지로 수첩을 공개했다는 해석이 제기됐었다. 이 전 대표가 김무성 당시 대표에게 청와대 관계자와의 술자리 대화 내용을 제보했던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의 2012년 모습. 황진환 기자수첩 사건 전후로 당청 관계엔 균열이 생겼고, 박근혜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이 갈등도 커지면서 이준석 전 대표는 '박근혜 키즈'에서 비박계로 정치적 위상이 바뀌게 된다.
이후 이 전 대표는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최 회장의 사면 등 청탁을 들어줄 위치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사실을 김성진 대표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 변호사는 김 대표의 경찰 진술을 전하며 "이준석의 정치적 입지가 급속하게 줄었다. 그래서 최태원 사면을 추진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2015년 설 선물과 추석 선물 등 접대를 계속 이어갔다고 한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선 "박근혜 대통령을 대전 카이스트에 내려오게 한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이준석과의 관계를 위해"서 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든 상황이라 별다른 대가를 바라고 준 선물은 아니라는 의미다.
2015년 이준석 정치적 입지↓…그럼에도 선물 "예의와 관계 유지"
지금껏 김 대표 측은 공소시효가 살아 있는 2015년 9월 추석 선물을 기준으로 앞선 접대 행위를 포괄일죄로 묶고, 그에 대한 대가(알선)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계속된 참고인 조사로 오히려 새로운 증언이 나오면서 접대와 대가 행위가 각각 분절되는 모양새다.
특히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마지막 접대 행위(2015년 9월 추석 선물)에 대해선 별다른 대가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를 별도로 처벌하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접대 행위를 포괄일죄로 묶지 않는다면 '2013년 접대 -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 '2014년 접대 - SK 최태원 회장 사면', '2015년 접대 - 최소한의 예의와 관계 유지' 등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공소시효가 남은 건 2015년 접대뿐이고 대가성이 없으면 처벌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핵심 참고인 조사를 마친 경찰은 오는 22일부터 차례로 핵심 피의자 소환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는 범인도피 혐의를 받고 있는 국민의힘 김철근 전 당 대표 정무실장이 될 전망이다. 이후 그 주 안에 이 전 대표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