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퇴근길 무방비 물폭탄과 반지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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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서초구 한 도로에 지난밤 폭우로 침수된 차량들이 뒤엉켜 정체를 빚고 있다. 박종민 기자9일 서울 서초구 한 도로에 지난밤 폭우로 침수된 차량들이 뒤엉켜 정체를 빚고 있다. 박종민 기자
말그대로 물폭탄이 쏟아졌던 8월 8일. 내가 하루종일 정부기관서 물과 관련된 안전 안내 문자를 받은 것은 모두 10개였다. 그날 오전 10시 17분, '하천·해수욕장에서 물놀이시 주의하라'는 행정안전부의 첫 문자를 비롯해 서울시에서 집중호우 주의 통보, 산림청의 산사태 주의단계 발령 등에 관한 문자였다.
 
18시경, 서울시에서 온 문자는 서울지역에 호우경보가 발효 중이니 퇴근 시 자가용 이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권고였고, 이어 중랑천 수위 상승, 탄천 홍수주의보 발령, 그리고 마지막은 23시 41분 서초구청에서 '양재천 범람 위험이 있으니 인근 주민은 주의하라'는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그날 밤 9시 23분경, 반포대로 인도에 위치해 있었다. 이미 고속버스터미널 앞 도로는 물이 내천이 됐고 승용차 바퀴 절반 정도까지 물이 차올랐다. 차들이 지날 때 마다 도로 위 빗물은 강물처럼 파도를 이루며 주변으로 주변으로 넘쳐 흘러갔다.
 
그러나 넘쳐 흐르는 물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구청에 전화를 해야 하는가. 시청에 전화를 해야 하는가.. 지금 할 수 있는 방책이 뭐가 있을까..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모래주머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잠깐 했다. 그러나 이 물난리 중 어디서… 그것을 구한단 말인가. 한 주민이 배수가 잘 이뤄지도록 폭우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하수구를 청소하는 서울 강남역 sns사진을 나중에서야 봤지만 그때는 미련하게 그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이윽고 물은 철철철 흘러 지하 전철역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버스와 차량 운전자들도 당황한 것 같았다. 비상등을 켜고 곳곳에서 차량 경적 소리가 요란했다.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폭우로 목숨을 잃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의 가족들의 빈소가 10일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발달장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지난 8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폭우로 목숨을 잃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의 가족들의 빈소가 10일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발달장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80년 전의 시간당 강수량을 깼다는 이번 폭우로 반지하방에서 4명이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악구 반지하방에서는 3명의 장애가족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약자가 재난에서도 약자임이 또 확인됐다. 전국에서 반지하 가구는 36만 가구 쯤 된다고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 96%가 몰려 있는데 서울에 22만 8천여가구, 경기도는 10만 가구에 약간 못 미친다.
 
반지하방 대책은 지난 2010년 물난리 때도 있었다. 당시 호우 대책으로 침수 우려 지역에서 반지하 주택 신규 건축 허가를 제한하겠다고 서울시가 건축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그 법은 완벽하지 않아서 그 이후에도 4만 호의 반지하 주택이 더 공급되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경기도서 가장 많은 반지하 주택을 갖고 있는 도시가 시흥시다. 시흥시에는 1만 5천 가구가 있는데 이번에 2백 가구 정도에서 침수 피해가 났다고 한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여튼 다행히 큰 사고가 없어서 그렇지… 집중호우 때마다… 아슬아슬 합니다. 아슬아슬…"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듯 했다. "이건 딜레마입니다. 풀 수 없는 딜레마에요…." 목소리에 수심과 한계가 가득했다. "시장님! 딜레마가 구체적으로 뭡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역부족하다는 거죠. 역부족….아이고.."
 
공공이 반지하를 매입하면 좋겠지만 예산 상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반지하는 취약 계층의 회전문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한 취약 계층이 돈을 모아 반지하방서 탈출하면 또 다른 취약 계층이 그 방으로 전입한다. 그들은 대부분 기초 수급자나 한부모 가정들이다. 집주인은 어쩔 수 없이 임대를 계속 놓아야 하고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또 그 방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시흥시는 8일 오후 5시, 비상메뉴얼에 따라 1단계 대응 발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매뉴얼에 따라 시 공무원의 1/4을 동사무소에 배치했고 주거복지지원센터 등을 통해 반지하 취약 계층에 "큰 비가 온다 하니 준비를 하시라"고 대비 알림을 했다. 시흥시 처지에서는 천만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만 하다.
 

큰 피해가 났으니 구조적 대책도 필요하다. 대심도 터널도 필요할 수 있고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멸실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대책은 수년이 걸리고, 큰 예산이 소요되는 일일 뿐더러 그 과정서 이해자들의 형평성 문제가 수반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큰 대책에만 기댈 수 없는 이유다. 큰 것의 신이 있다면 작은 것들의 신도 있어야 한다. 우선은 재난 시 반지하 취약계층을 사전에 관리하고 대비시키는 일을 각 지자체가 성실히 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재난에서 예방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대심도를 파 자연을 극복하겠다고 하지만 늘 상 우리는 재난 앞에 무력하다. 전문가들 판단은 잘 모르겠지만 기후 위기가 키운 자연 재해라 생각된다. 앞으로 시간 당 110 밀리 폭우를 대비한다고 앞으로 200 밀리 비가 안 올리 없다.
 
정부와 서울시,지자체 등 당국이 재해 피해 최소화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숙고해 봤으면 바란다. 재난 문자 알림으로 양치기 소년처럼 시민들을 길들여 온 것은 아닌지, '적당히 오다가 말겠지…"하면서 오히려 공무원들이 양치기 소년의 무덤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큰 재해가 올 때 모래주머니 아니면 빗물 유입구의 폐기물을 쓸어 낼 수 있는 빗자루나 무슨 도구라도 손쉽게 닿을 수 있다면 나같이 미몽한 시민 의식도 깨워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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