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니마을 학살 의혹'을 제기해 온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왼쪽 세 번째)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 소송 법정 진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티탄 씨와 그의 삼촌 응우옌득쩌이 씨(왼쪽 두 번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국 법정에 서서 당시 피해 내용을 증언했다. 연합뉴스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게 학살당했다는 피해자가 처음으로 한국 법정에 증인으로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9일 열린 응우옌티탄(62)의 국가배상소송 변론기일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 소속이었던 응우옌득쩌이(82)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응우옌득쩌이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낸 응우예티탄의 삼촌이다. 그는 1968년 학살 현장 바로 옆 초소에서 한국군의 작전 상황을 무전으로 들었다고 한다. 또 학살 직후 피해자를 헬기로 이송했다.
응우예티탄은 '퐁니마을 학살 의혹'을 제기해 왔다.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 들어가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0여명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당시 8세였던 피해자는 복부에 총상을 입었고 가족들을 잃었다.
"여기 법정에 있는 사람처럼 생긴 군인들이 총 쏘고 수류탄 던져"
베트남인 피해자의 증언은 피고 측인 한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변론에서 나온 청룡부대 소속 군인의 증언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하면서 이뤄졌다.
당시 작전을 수행했다는 류모씨는 지난해 변론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학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하지만 정부는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 5월 응우옌득쩌이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
응우옌득쩌이 씨. 연합뉴스응우옌득쩌이는 이날 한국군이 어떻게 퐁니마을 주민들 수십 명을 살해했는지 상세하게 증언했다. 그는 "무전기를 통해서 한국 군인들이 퐁니마을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퐁니마을 근처로 갔다. 망원경을 통해서 한국 군인이 마을 주민들을 죽이는 모습을 봤다. 한국말로 고함을 치는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인들이 총을 쐈고 주민들이 쓰러진 후에 수류탄을 던졌다"고도 했다.
학살 가해자가 한국군이 맞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한국인과 베트남인은) 얼굴이 다르고 눈도 다르다. 여기 법정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생겼다"고 답했다. 또 군인들의 대화를 듣고 한국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도 했다.
70여명 학살 구체적 진술…"불 탄 시신 수십구씩 쌓여있었다"
연합뉴스응우옌득쩌이는 학살 후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학살이 끝난 뒤 퐁니마을에는 시신이 두 곳에 나뉘어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한 곳은 원고 응우옌티탄의 집 옆이었다. 각각의 위치에는 불에 탄 베트남인 시신이 수십구씩 쌓여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날 변론에서는 당시 상황이 담긴 흑백 사진도 공개됐다. 사진 속에는 신체 일부가 훼손된 여성도 있었다.
응우옌득쩌이는 이웃의 집 마당에 쌓여있던 시신들 속에서 원고 응우옌티탄의 어머니 시신을 직접 수습했다고 말했다.
원고 측 변호인은 거듭 총을 쏜 가해자가 한국군이 맞는지 묻기도 했다.
이에 응우옌득쩌이는 "원고가 (부상 치료 중) 의식이 돌아왔을 때 '따이한'이라고 했다"며 "옛날에는 한국을 '따이한'이라고 불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