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국가경찰위원회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좌동훈 우상민'라고 하더니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입이 요새 열렸다. 지난 행안부 장관들과 달리 그의 입이 거침이 없다.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지난 정권에서 수사가 됐어야 할 것들 중 수사가 안 된 것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위법 논란이 있는 '경찰국'을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경찰 수사를 직접 관장하겠다는 내심을 폭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놀라운 발언이다.
행안부 장관이 서해 공무원 사건을 언급한 것도 특이하다. 그는 "역대 정부에서 청와대가 경찰 수뇌부 인사를 밀실에서 거래해 왔다"고 전제하고 "일명 '해경왕'으로 불리는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해수부 장관을 제치고 (해경과) '직거래'한 걸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제도 개선안에 대한 취지 설명과 현장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6일 오후 광주경찰청을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토론회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아한 이유는 '서해 공무원 사건'이 아직까지는 경찰과 직접 관련 없는 사안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사건은 과거 해경이 수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사 분장 상 검찰 수사 사안이 되었다. 더욱이 국정원은 이 사건과 관련 두 명의 직전 국정원장을 어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장악하고자 한들 이른바, 지난 정부의 '암장 수사'의 한 예로 이 사건을 꺼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자가 잘못 독해한 건지, 오히려 이상민 장관 머릿속에 전 정권에 대한 전면 사정 계획이 법무부 등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추측을 낳게 하는 부분이다.
특히 이 장관은 "전 정부 치안정감 승진자들이 정치권력과 연관돼 있다는 세평이 있다"고도했다. 걸러 새겨 들어야 할 '세평' 따위를 언급하며 '실세'로 불리는 장관이 경찰에 불신을 표시하는 방식은 매우 부적절하고 과도하다.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에 대한 반발이 계속되자 경찰을 '정치 집단'으로 내모는 프레임을 작정한 모양새다. 경찰을 정치집단화해서 국민이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 많은 국민과 경찰 내부의 우려를 사실 그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야당 주장에 편승하는 정치적 행위로 마구 몰일이 아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 민관기 충북 청주흥덕경찰서 직협회장 등 각 4개 경찰서 직협회장들이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한 뒤 삭발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정권 출범 후 경찰 조직은 초토화되고 있다. 대통령은 '중대 국기 문란' 조직으로 갈라치기 하고 행안부 장관은 '야당에 편승하는 정치 집단'으로 엮고 있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가 치안이다. 그런데 치안 서비스를 담당하는 국가 조직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서야 되겠는가. 개혁은 정당하면 자연스럽다. 결국은 정권의 의지대로 장악될지 모르겠지만 그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현재의 정부 조직법 등 법률을 보면 법무부 장관과 달리 행안부 장관은 경찰의 구체적 업무에 관여해선 안되고 할 수도 없다.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명문화했지만, 국가경찰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가경찰위원회'를 대체해 행안부 장관이 개입할 근거 규정이 전혀 없다. 시행령으로 우회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쟁점이 될 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 짐이 될 사안이다.
특히 '정치 편승' 발언은 '직업 공무원제'를 무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무원이 공직을 명예롭고 보람 있는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근무할 수 있도록 헌법은 직업 공무원제를 명문화하고 있다. 직업 공무원제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직에 긍지를 가지게 해서 공무원이 선망의 대상으로 사회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장관의 거친 발언은 경찰 공무원들 사기를 꺾고 있다. 일선에는 '정치 편승'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다는 푸념까지 들린다. 경찰 수사를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보완돼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렇게 치안 조직을 송두리째 흔드는 무리수를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