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교환·환불제도인 자동차관리법 '한국형 레몬법' 규정이 시행 3년 6개월을 맞았지만, 도입 취지에 달리 소비자 보호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제출한 자동차 하자와 관련한 중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된 2019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중재심의위)의 중재 판정에 따라 이뤄진 교환은 4건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중재 판정에 따른 환불은 3건에 그쳤고 소비자와 자동차 제조사 합의로 자발적인 교환, 환불이 이뤄진 건수(취하)를 포함해도 81건과 106건이 전부다.
2019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1669건의 중재 신청이 접수된 것에 비춰보면 제조사와 당사자 합의 건수를 포함해도 10%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 속에 일각에서는 입법 취지에 맞게 소비자 보호에 더욱 충실하도록 한국형 레몬법 관련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년·2만km 이내' 협소한 요건…소비자 '입증' 책임도 부담
우선 레몬법 보장을 받는 요건이 협소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자동차관리법은 제47조의2 조항을 통해 자동차 교환·환불 요건을 정하고 있다. 한국형 레몬법 조항으로 신차 구매 후 1년 이내(2만km 이내)에 중대 하자 2회(단, 중대 하자로 1회 이상 수리한 경우로서 누적 수리기간이 총 30일을 초과한 자동차), 일반 하자가 3회 이상 수리했으나 재발(1회 이상 수리한 경우 누적 수리기간이 총 30일 초과한 자동차)한 경우 교환·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국내에서 신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1년 또는 주행거리 2만㎞ 이내에서 반복적으로 결함을 이유로 교환,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교수는 "1년, 2만km 이후에 발생한 하자에 대해서는 레몬법 규정을 받지 못한다"며 "자동차 보증기간도 5년에 10만km가 대부분인데 (제도와는) 실질적으로 온도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1년 이내 발생한 하자도 다시 기간을 구분해 출고 6개월 이후에 발생한 하자는 그 입증을 소비자가 직접 하도록 했다. 자동차관리법 제47조의3은 '자동차가 하자차량소유자에게 인도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된 하자는 인도된 때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 사실상 6개월 이내 발생한 하자만 자동차 제작사 책임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6개월 이후에 발생한 하자는 소비자가 결함 유무를 증명해야 하는 몫으로 일반적인 민사소송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박순장 사무처장은 "대부분 하자 발생이 출고 1~2년 사이에 발생하는데 출고 6개월 이후 차량에 대해 결함 유무를 소비자에게 입증하도록 한 것은 사실상 교환·환불을 막아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법에 없는 '수리 완성' 항변…'중재 규정' 고시에 자리 잡아
스마트이미지 제공중재심의위 고시인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 규정 제25조에는 '제작자의 항변'을 규정하고 있다. 자동차 결함 수리가 완료됐음이 인정될 경우에는 자동차 제작자 책임을 면해주는 것으로 자동차 소유자는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 규정 모법인 자동차관리법 제47조의2 규정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 하위 법규(고시)에 구체적인 내용을 위임하면서 관련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최근 중재심의위가 교환 판정을 내린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사례에서도 '수리 완성'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해당 사례에서 중재심의위는 "수리가 완료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고 교환 판정을 내렸다.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대표 변호사는 "수리 기간이 총 30일을 넘겨 교환·환불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도 30일을 넘긴 이후에 제작자가 수리에 성공해 하자가 제거됐다는 이유로 교환·환불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위의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 규정이 상위의 자동차관리법이 보장한 소비자의 교환·환불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용인한 것"이라며 "자동차관리법 제47조의2 교환·환불 규정에 위반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 변호사는 또 "수리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도 중요하다"면서 "교환·환불 중재 절차의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수리 성공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누적 수리 기간이 총 30일 지난 후 교환·환불 중재 신청이 제기된 경우에는 수리 성공의 항변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중대하자의 2회차 수리와 일반하자의 3회차 수리의 성공 여부도 기준시점을 그와 같은 수리가 실시된 후 다시 동일한 하자가 발생했을 때를 기준으로 해야 하며 중재절차의 심리종결시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 차례 심리기일을 거쳐, 예를 들어 1년이 지난 후에 마침내 수리가 성공해 심리종결이 된 경우에 교환·환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매우 부당한 결과"라고 말했다.
누적 수리기간이 30일을 초과한 경우에는 제작사의 수리 성공의 항변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그 밖의 경우에 설사 수리 성공의 항변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판단 시점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다.
까다로운 절차·중재 신청 이후 불복 불가 등 걸림돌 작용
이 외에도 까다로운 중재 신청 절차와 중재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는 점도 소비자에게 제도 활용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로 꼽힌다. 구입 단계에서나 교환·환불 중재를 신청할 때 레몬법 규정 적용에 대한 제작사의 합의(수락)가 있어야 하고, 교환·환불 중재 규정에 따른 계약서 작성, 차량 구매 후 하자가 발생하면 제작사에 알려야 하는 절차 등이 그 예다.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 규정 제10조에 따르면 소유자와 제작사는 교환·환불 중재 신청 후 중재 심리일 전에 관련 서류 및 차량하자와 관련된 일체의 정보를 교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사무처장은 "차량에 결함이 발생해 수리 센터에 입고가 되면 자연스럽게 제작사로 통보가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해당 내용을 모르는 일반 소비자는 제작사에 알리지 않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중재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1월 레몬법 시행 이후 1669건의 중재 신청 가운데 신청인이 신청서 흠결 보정을 못했거나 요건을 못 갖춰 진행 불가 판정을 받은 '진행 불가' 사례가 568건이나 된다.
박 사무처장은 또 "정부의 리콜 명령도 레몬법에서 정하는 수리 횟수 요건에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환·환불 중재가 성립된 경우에는 소유자와 자동차 제작사는 같은 내용의 교환·환불을 이유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중재 규정 제4조)는 규정도 걸림돌이다. 이의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레몬법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중재를 포기하고 개별 소송으로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는 의미다.
여기에 중재심의위가 동일한 하자인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는 관련 정보를 확보해야 하지만, 자동차 제작사가 해당 정보 제출에 소극적으로 협조할 경우 레몬법 적용을 받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