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정부가 오늘(17일)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의무 해제 여부 발표를 앞둔 가운데 기존 7일 격리를 아예 없애는 것이 아니라 5일로 줄이는 방안을 유력한 선택지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논의를 위해 구성한 별도의
TF(태스크포스)에 참여한 방역·의료 전문가들은 대부분 예외 없이 해제 자체엔 부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20일 포스트 오미크론 '안착기'로의 전환을 4주 연기한 정부는 그때의 유행상황 등을 토대로 지침 변경을 재판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모두 풀린 상태에서
'실내 마스크' 외 유일한 방역지침인 1주일 격리를 자율에 맡길 경우 하반기 재유행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현행 7일 격리 유지 △격리기간 5일로 단축 △격리의무 해제 등 3가지 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한 것으로 파악됐다.
방역 안정세에도 재유행 위험 '여전'…"격리 풀면 9월 초 피크 예상"
황진환 기자4주 새 방역지표는 분명 더 안정됐다. 최근 1주일간 신규 확진자는 지난 10일 9310명→11일 8440명→12일 7377명→13일 3823명→14일 9776명→15일 9435명→16일 7994명 등 하루 평균 8022명이다. 이는 매일 2만~3만 명대의 환자가 나오던 지난달 20일(주간 일평균 2만 6800여명)과 비교해 약 3분의 1 수준이다.
의료대응체계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는 위중증 환자는 전날 기준 98명으로 집계됐고, 사망자도 사흘째 10명 미만을 기록했다. 위중증 병상 및 준중환자 병상 가동률도 각각 7.9%·8.4%로 여력이 넉넉한 편이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큰 하반기 재유행의 촉발 시점과 규모다. 한 달 전, 방역당국은 연구진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격리의무가 지금처럼 유지된다 해도 이르면 올여름부터 면역 감소효과로 인한 유행 반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질병관리청은 격리의무가 권고로 바뀐 뒤 확진자의 50%만 자율 격리를 이행할 경우, 아무도 격리를 하지 않을 때를 가정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7월 말 각각 1.7배, 4.5배의 추가 확진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연구진 10곳 중 9곳의 결론도 같았다.
오미크론 유행 감소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재확산의 위험은 여전하다. 백신 접종으로 얻은 면역이든, 자연감염을 통해 보유한 항체든 수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재감염으로부터 안전한 완치자는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격리의무를 해제하는 순간부터 환자는 다시 증가할 것"이라며
"오는 20일 기준으로 격리를 전격 해제해버린다면 9월 초쯤 17만에서 18만명의 피크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격리를 현재대로 유지하면 11월 말이나 12월 초쯤 정점이 오는 걸로 예측되고 있다"며 "(정부가) 확진 검사체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환자) 숫자는 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 TF, 대부분 '반대' 의견…닷새 축소도 "과학적 근거 없어"
황진환 기자정부가 의견 수렴을 위해 구성한 전문가 TF에서는 90% 이상이 격리의무 해제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감염 전파가 가능한 기간을 감안할 때, 현행대로 1주일은 격리하는 것이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TF 회의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전문가들은 다 격리의무를 완전히 푸는 것은 반대"라며 '5일 격리'로의 단축에 대해서도 "그 근거가 뭐냐고 했을 때 댈 수 있는 근거가 별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의 권고처럼, 일반적으로는 증상 발현일 또는 검사일 기준 5일을 자택에서 격리하되 고위험군은 10일을 적용하는 등 위험도에 따라 차등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전문가는 "그게 현장에서 (일률적으로) 반듯하게 분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TF에 속한
일부 전문가들은 기간을 닷새로 줄여서라도 격리 자체는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격리의무 해제를 강행한다는 전제 아래 그보다는 차라리 '축소 적용'이 낫다는 의미에서다.
정부는
5일은 의무격리, 2일은 자율격리(권고)로 두는 '5+2' 절충안도 막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5일 격리' 역시 오미크론 대유행이 몰아치던 2~3월 의료기관 등 필수시설에서 한시적으로 쓰인 비상대책이었던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병원 직원 태반이 (코로나19에) 걸리다 보니 3차접종을 받은 건강한 성인인 의료진이 격리 닷새 만에 나와 일한 적은 있다"며 "정부가
고령자·미접종자·기저질환자 등에 대해서도 격리를 5일만 하라고 하게 된다면 이것도 황당한 얘기"라고 말했다.
또 2급 법정 감염병은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도 짚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2급인 홍역, 결핵 등은 한 명만 있어도 다 격리를 하고 있는데, 이런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며 "만약 복지부 장관 시행규칙 등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격리를 안 해도 된다고 한다면, 정부가 불법을 조장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취약계층 지원, 상병수당 등도 과제…"점진적 완화가 바람직"
황진환 기자격리의무를 풀더라도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근로자, 특히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특수고용 또는 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는 내달 4일부터 1년간 서울 종로, 경기 부천, 충남 천안 등 6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의 60%를 지급하는 '상병수당'을 시범도입하기로 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전국 확대 시점을 3년 후인 2025년으로 잡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는 "각 사업장이나 상황별로 격리의무 해제를 조금씩 진행하지 않을까 싶다"며 "격리의무 해제 시 생계가 어려운 취약계층에 대한 일정한 지원, 아플 때 법적 불이익 없이 쉴 수 있게 하는 제도 등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격리기간을 점차 줄이는 식으로 가다가 실내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격리의무를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TF와 감염병 위기관리 자문위원회 등의 논의를 거친 정부는 이날 격리해제 여부와 함께 이를 판단할 세부 기준도 발표한다. 출범 이후 '과학 방역'을 줄곧 내세워온 정부는 현행 지침 유지 가능성도 열어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이달 10~12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여론도 '격리 유지' 쪽이 46.8%로 '해제'(36.4%)보다 다소 우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