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의 시민분향소에서 이 중사의 부모님이 추모객을 맞이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해 전 국민 공분을 샀던 공군 부사관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이 특별검사의 재수사를 받게 됐다. 거듭된 '불기소' 처분으로 '부실수사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지 못하는 부실수사'라는 말까지 나오고 유족이 강력 반발한 끝에, 여야 합의로 특검법안이 15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간인 특별검사가 군에서 벌어진 사건을 수사하는 일은 창군 이래 최초다. 남은 과제는 어떠한 특별검사가 선임되고, 지난해 최종 수사 결과 당시 수사가 미진했던 관계자들을 어떻게 다시 수사할 것인지다.
특검 임명 뒤 120일 '카운트다운'
특검법 2조는 이번 특검의 수사 대상을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과 연관된 공군 내 성폭력, 2차 피해 유발 등 불법행위와 함께 이와 관련된 국방부와 공군본부 내 은폐, 무마, 회유 등 직무유기·직권남용과 이에 관련된 불법행위, 그리고 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여야는 이미 지난 4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특검법 처리를 시도했지만 특검 후보자 추천 방식과 관련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불발됐었다. 민주당 특검법안은 교섭단체가 특검 후보자를 1명씩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반면 국민의힘·정의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이 공동발의한 특검법안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4명의 후보자 가운데 교섭단체가 합의해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가운데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 법의 수사 대상 가운데 군 법무관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변협이 이를 추천하게 될 경우, 현직 법무관들의 선후배에 해당하는 법조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 날 이 중사 유가족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불필요하게 외부 법조인 단체 등으로부터 특검 후보자를 추천받아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었다.
결국 여야는 열흘 뒤인 14일 법원행정처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각각 2명씩을 추천하고, 이 중 원내 교섭단체가 2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는 방안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이렇게 임명된 특별검사는 10명 이내로 파견검사, 이를 제외하고도 30명 이내 파견공무원을 요청할 수 있다. 대통령은 특별검사가 추천하는 특별검사보를 4명 이내로 임명하고, 특별검사는 40명 이내로 특별수사관을 임명할 수 있다.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장례식장 영안실 모습.이 사건이 지난해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가 나섰음에도 부실수사 의혹을 받았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특별검사보와 파견검사, 특별수사관 모두 민간인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원칙적으로 군인과 군무원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지만, 이번 특검으로 기소된 경우 서울중앙지법 합의부에서 재판한다.
유족과 군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날 오후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입장문을 내고 "국방부 및 군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 주요 수사 대상자와 직·간접적 친분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특별검사와 특별검사보 등의 주요 직위를 맡아야 한다"며 "군 사법·수사체계의 공고한 카르텔 속에 이루어진 부실수사가 원인이 되어 이예람 중사가 세상을 떠났고, 그 부실수사를 국방부가 또다시 부실수사했기 때문에 이 중사가 아직도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차가운 냉동고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별검사는 임명된 날부터 20일 동안 시설 확보와 특별검사보 임명 요청 등 준비를 하고, 이 기간이 만료된 다음날부터 70일 이내에 수사를 마치고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 승인을 받아 30일 연장이 가능하다.
즉, 특검이 임명된 뒤 최대 120일 동안 시간이 있는 셈이다. 이 기간 내 수사를 마치지 못하거나 기소 여부를 결정 못하면 사건은 관할 지방검찰청으로 인계돼, 여기에서 마저 하게 된다.
'잘못은 했는데 기소는 못한다'던 20비 군사경찰 대대적 재수사 예상
이예람 중사와 관련된 사건의 특징은 관련자들이 분명히
잘못을 하긴 했는데, 형사적으로는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실수사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지 못하는 부실수사'라는 말이 나왔던 이유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 중사에 대한 수사를 게을리한 혐의로 수사 관계자들에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다. 문제는 직무유기 혐의로 유죄를 받게 하려면 이들이 일부러 그랬다는 점(고의성)을 증거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아주 까다롭다.
특검법안은 이미 기소된 사건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바꿔 이야기하면
기소가 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사건은 얼마든지 재수사할 수 있고, 기소된 사람이라도 불기소된 혐의는 재수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합뉴스가장 먼저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는 이들은 초동수사를 맡았던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들이다. 군사경찰대대장 고모 중령과 수사계장 황모 준위는 3월 2일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뒤, 가해자 장모 중사를 조사하기도 전에 '불구속' 방침을 미리 결정하고,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날 같은 부대 선임 김모 중사와 통화한 녹취파일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 하지 않았다. 또 압수수색영장도 신청하지 않는 등 초동수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이와 관련해 "피해자와 피의자에 대한 조사, 휴대폰 압수수색영장 집행 등이 합리적 이유 없이 상당히 지체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황 준위는 3월 8일 범죄혐의 인지보고서에 장 중사에 대해 '불구속' 의견을 기재했다. 같은 달 17일에 첫 가해자 조사를 하기도 전이었다. 그가 변호사를 선임했기 때문에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에서 파견나온 성범죄 전문 수사관이 3월 7일 '강제추행 정도가 매우 심하고 구속영장 신청 검토가 가능하다'고 의견을 전달했지만, 이튿날 고 중령이 20전투비행단장 이성복 준장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에 보고한 내용에는 불구속 수사 방침이 유지됐다.
지난해 8월 11일 7차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위원들은 군사경찰이 이런 식으로 수사를 진행한 일이 통상적으로 수사에 걸리는 기간과 관행을 벗어나지는 않았다며 직무유기죄 성립에 필요한 '고의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다수결로 판단했다. 징계할 사항이긴 해도, 형사처벌할 일은 아니라는 논리다.
관련해서 군인권센터는 9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황 준위는 '고 중령이 불구속 방침과 압수수색 최소화 등을 지시해 그에 따라 불구속 방침을 세웠다'고 주장하고, 고 중령은 '3월 8일에 황 준위에게 구속 수사해야 하지 않냐고 묻자 전문 수사관이 불구속 의견을 줬다고 보고해 그에 따라 군 검사와 협의하고 결과를 다시 보고하라 지시했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는 얘기다. 유족 요구로 특임 군 검사로 임명된 해군본부 검찰단장 고민숙 대령이 이 사건을 다시 조사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
군 관계자는 "군사경찰 단계 수사에서 허점이 컸는데, 이런 부분들이 검찰 수사에서 어느 정도 그대로 이어지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최우선 특검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불구속 수사에 동의했는지 여부가 현재까지 명확치 않은 20비 군 검사 박모 중위도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군 검찰 총괄하는 공군 법무실은?
연합뉴스군사경찰 단계에서 부실하게 진행된 수사는 검찰로 송치된 뒤에도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최종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 공군본부 법무실도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법무실장 전익수 준장은 3월 2일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3월 8일, '참고보고' 형식으로 20전투비행단 법무실로부터 성추행 사건 관련 보고를 받았다.
이후 이 중사가 5월 21일 사망하기 전까지 공군본부 법무실에는 특별히 사건 관련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4월 7일에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고, 같은 달 14일에 이성용 당시 공군참모총장이 사건사고 관련해서 '주간 보고' 형식 서면보고를 받을 때 해당 사건이 포함돼 있었을 뿐이다.
지난해 10월 국방부 수사 관계자는 "전 실장이 법무실장으로서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휘감독을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언제 어떤 타이밍에서 무엇을 했어야 할지가 명확하지 않았다"며 "구체적으로 지휘감독을 했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지시할) 명분이 없었다"고 설명했었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해 수사 과정에서 전익수 실장과 고등군사법원 군무원 양모 사무관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공군본부 법무실 압수수색(6월 9일)을 하루 앞둔 6월 8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파악했는데도 이를 수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 사무관은 그보다 6일 전인 6월 2일에도 가해자 장모 중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상황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 실장에게 누설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입건됐다. 하지만 이 내용이 이미 언론에 나왔다는 이유 등으로 공무상 비밀이라 보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됐다.
전 실장은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통화와 관련해선 이미 검찰단에서 조사를 받았고, 일상적인 안부 전화에 가까웠으며 압수수색과 관련해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며 "해당 직원은 고등군사법원 재판연구부 소속인데 영장은 보통군사법원이 발부하기 때문에 해당 업무와도 무관하여, 영장 발부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인권센터는 제가 마치 이 중사 사건 가해자의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처럼 계속 주장해왔으나, 인권위는 관련 내용에 대해선 추가 조사 권고조차 하지 않았다"며 "인권위도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제가 불구속 수사 지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 또한 특임 군 검사가 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 실장과 고등검찰부장 한모 중령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
장관도 수사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론 글쎄…공군참모총장은?
서욱 국방부장관(오른쪽)이 지난해 10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故 이예람 중사 아버지의 호소가 담긴 화면을 바라보는 모습. 윤창원 기자한편 특검법안대로라면 이 중사가 숨진 뒤 관련 사건을 수사했던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 관계자 등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건이 언론을 통해 불거진 뒤 사임하고 민간인이 됐기 때문에 국방부 검찰단이 건드리지 못했던 이성용 전 공군참모총장 또한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14일 법사위에서 민주당 소병철 의원은 "특검법 법문대로면 (서욱) 국방부 장관까지도 수사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며 "심각하고 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철저한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소 의원 질문에 "추상적으로는 수사 대상이 되겠다"고 답했다. 다만 실제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수사를 하는 데는 100일 정도 시간이 있는데 그 동안 이 중사 사건을 수사했던 군사경찰과 법무실의 혐의를 밝혀내면서, 다시 이들을 수사했던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에 장관까지 또 수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성용 전 총장 쪽이 더 가능성이 높다. 그는 민간인이 된 뒤 국방부 검찰단의 참고인 조사 요청에 여러 차례 불응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민간인을 입건할 수 없지만, 특별검사는 민간인이기 때문에 이 전 총장을 불러 조사하거나 입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 군에서 참모총장은 군정(軍政)권을 행사하며, 여기엔 수사와 법무도 포함된다. 따라서 그가 언제 어느 정도까지 보고를 받았고 어디까지 알고 있었으며, 어떤 조치를 지시했는지 등이 사건 수사를 반전시킬 수도 있는 포인트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