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3차 내각 인선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윤석열 정부의 첫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한국노총 출신의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이 지명됐다.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던 이 후보자가 보수 정권의 고용노동 정책을 들고 노동계의 협조를 어느 수준까지 구할 수 있을까 주목된다.
尹, 고용노동 정책 수장으로 한국노총 출신 인사 '깜짝' 선택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추가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발탁했다. 인수위사진기자단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차 내각 인선안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고용노동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각각 발표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노동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전 사무총장에 대해 "30여 년간 노동계에 몸 담으며 한국노총 기획조정국장과 사무처장을 지낸 노동 분야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이어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의 전문위원을 역임했고, 노사발전재단 창립 이래 노동계 출신으로는 최초로 사무총장을 지냈다. 노사 관계를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며 "노동현장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고 합리적 노사관계 정립의 밑그림을 그려낼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윤 당선인의 소개대로 30년 동안 한국노총에서 활동했던 이 후보자는 충북 제천 출신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노총에서 정책연구위원으로 시작해 대외협력본부장, 기획정본부장 등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노사정 대화를 이끌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실 정책보좌관 등을 맡은 때도 있었지만, 다시 노동계로 돌아가 2014년~2017년 3년 동안은 한국노총에서 사무처장을 지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로는 2017년부터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맡았고, 이후 2020년 삼성전자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사회적 대화' 강조한 이 후보자, '反노동' 색채 강한 윤석열號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노조 출신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노동전문가인 이 후보자는 이메일 아이디를 '윈윈메이커(winwinmaker)'로 지을 정도로 '노사정 상생 전도사'로 자임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양대노총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질문에 "(윤 당선인이) 늘 소통 협치를 말했고, 우리 사회가 건강히 가기 위해서는 노동계와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며 "조건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누구든지 격의 없이 만나는 것이 소통과 협치를 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동안 윤 당선인이 노동시간, 최저임금 등에 대해 경영계에 편향된 발언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점에 대해서도 "IMF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대타협 이후 최저임금 등에서 사회적 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노사간 신뢰를 토대로 사회적 대화를 정부가 주도하기보다 촉진시키고, 조정해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노사관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 제도, 의식, 관행 등을 모두 바꿔야 할 문제인데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안으로는 대화하기 어렵다"며 "긴급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가능한 청년 일자리 문제, 양극화 해소, 노동권 사각지대 보호, 사회적 취약계층인 플랫폼 종사자나 프리랜서 등의 보호, 차별 시정 등"을 대표적인 사회적 대화 주제로 꼽았다.
인수위사진기자단그동안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과 인수위에서 거론되는 정책 논의를 살펴보면 고용노동부 관련 정책 중 '고용'에 방점이 찍혀있었고, '노동' 문제는 비교적 무게가 실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동계 출신인 이 후보자를 깜짝 지명한 배경에는 윤 당선인이 앞으로 '보수 정부'라는 멍에를 넘어 고용노동 정책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노동계의 협조를 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했던 현 정부 초기만 해도 노동계를 중심으로 '노사정 8자회의'가 제안되면서 노사정 대화에도 봄이 찾아오는 듯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선(先)정책변화 후(後)사회적 대화 참여 입장을 바꾸지 않자 결국 민주노총이 빠진 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했고, 이후 경사노위는 민주노총과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된 바람에 '반쪽짜리' 사회적 대화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윤 당선인은 최저임금, 노동시간에 대해 경영계에 편향된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또 노조의 불법행위는 엄정하게 법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노조와의 대립각도 날카롭게 세워왔다.
아울러 노동계의 반대가 극심했던 직무급제 도입이나 노동시간 유연화 등을 공약에 담는가 하면, 이러한 문제를 노조와의 대화가 아닌 각 사업장의 직무, 직군별로 쪼개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노조 패싱' 논란까지 일었다.
이처럼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노동계와의 의견 차가 분명하게 드러난 가운데, 이 후보자가 장관으로 취임한다면 과연 노동계와 대화를 성사시키고 합의점까지 찾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직무급제·유연근무제부터 전국민 고용보험, 중대재해법까지…산적한 노동 현안
윤 당선인이 공약으로 강조한 직무급제 도입, 유연근무제 확대 문제에 더해 이 후보자가 맞이할 시급한 과제로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았던 사회안전망 확대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 경제 위기 속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고용보험을 확대하며 적극적인 실업자 보호 정책을 펼쳤지만, 재정적자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해 차기 정부에서는 예정됐던 '전국민 고용보험' 계획의 속도를 조정하는 등 긴축 태세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 정책의 제3의 축으로 우뚝 선 산업안전에 대한 차기 정부의 행보도 관심이 모아진다.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자는 경영계가 제기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주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많이 우려하는 것 같다"며 "산업현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 대책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정부 개정에 이어 올해 1월 시행된 중대재해법으로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내용이 지나치게 모호해 오히려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법 시행령의 문구를 명확하게 수정하고, 더 나아가 중대재해법의 사업주·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조항을 개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불과 3개월, 이제까지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겨우 1건에 불과할 정도로 법이 현장에 안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행령 개정을 시도할 경우 현장의 혼란은 물론 노동 및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윤 당선인은 플랫폼 종사자 등 노동 취약 계층에 대해 '모든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도록 법제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해법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또 기후전환에 따른 대규모 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단순히 직업교육훈련을 강화해 재취업을 돕겠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어서, 이 후보자가 이러한 문제에서 어떤 해법을 모색할 것인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