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수위사진기자단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장관 라인업 구성이 끝났다. 외교부와 통일부에는 각각 4선씩인 당선인의 최측근 현역 국회의원, 국방부에는 중장 출신 미국통 퇴역 장성이 내정됐다.
특히 외교부 장관 후보자 박진 의원, 통일부 장관 후보자 권영세 의원은 윤석열 정부 '실세'로 꼽힌다는 점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세' 정치인 박진-권영세…청와대 중심 외교안보 정책 바뀌나?
먼저 외교부와 통일부 장관에는 실세 정치인이 기용됐다. 박진 후보자는 외무고시 출신 4선 현역 의원이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도 지냈다. 권영세 후보자는 검사 출신 4선 현역 의원으로 국회 정보위원장, 박근혜 정부 시절 주한중국대사를 지냈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외교부와 통일부는 정권이 바뀌면 업무 방향 자체가 180도 바뀌기 쉽다. 외교와 대북정책 자체가 본래 정치와 연관이 깊은 탓이다. 현 이인영 장관도 정치인이지만 외교부와 통일부 모두에, 그것도 정권 첫 장관으로 실세 정치인을 동시 발탁한 일은 보기 드물다.
전쟁이 나면 이기는 것은 군대의 역할이지만, 전쟁이 나지 않게 하는 일은 정치의 역할인 만큼 엄중한 국제정세 상황에 정무감각이 있는 정치인 출신을 기용해 해결책을 찾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후보자는 입장문에서 "어느 때보다 외교의 중요성이 높은 엄중한 시기이기에 더욱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외교안보 문제는 당리당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랜 소신이고, '외교에는 오직 국익뿐이다'는 자세로 국회 청문 과정부터 겸허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권 후보자는 기자회견에서 전날(12일) 밤에 (장관을 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가 엄중하고, 지난 몇 년 동안 노력이 있었지만 별로 진전된 것이 없다"며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고 있고 대화는 단절돼 환경이 매우 안 좋은데다 통일부가 국민들 지지를 받지도 못해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은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결정됐고, 외교부와 통일부가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는 영역이 별로 없었다. 특히 남북관계에는 국가정보원까지 관여하면서 이런 경향이 심했다.
그런데 박 후보자는 인수위에서 한미정책협의대표단장을 맡아 미국에 다녀왔고, 권 후보자는 부위원장을 맡은 만큼 외교부와 통일부 두 부처에 힘을 크게 실어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현재 남북관계는 누가 통일부 장관이 되든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구조적으로 통일부 장관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북한은 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합의를 이행할 수 있는 실세형 대화·협상 파트너를 원하기에 권 내정자 장기인 전략기획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많은 현안들에 대해 정치적 타협안을 도출해 보수진영을 설득하고, 미국·중국 등 주변국을 설득하는 역량을 발휘한다면 역사에 남을 통일부 장관이 될 수도 있다"며 "북한은 권 내정자의 향후 말과 행동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대응 수위를 조절할 전망이다"고 덧붙였다.
한미동맹 '박사' 이종섭 후보자…'훈련'과 '정신' 강조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육군사관학교 40기로 임관해 7기동군단장과 합동참모차장을 지낸 중장 출신이며,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인수위원이기도 하다. 대장이 아닌 중장 출신이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일은 오랜만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그는 1999년 미국 테네시 대학교에서 '무임승차인가 흥정인가? : 한미동맹의 사례(Free-riding or bargaining? : the case of the U.S.-South Korean Alliance)'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방부 정책기획차장과 합동참모본부 신연합방위추진단장도 지냈기 때문에 한미동맹 전문가로 꼽힌다.
일단 국방부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비태세 자체는 기존과 똑같이 유지해야 한다. 물론 보수 기조가 강한 윤석열 정부 특성상, 이 후보자는 북한 도발이 이어진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보다도 더 강한 수위로 대응하는 방안을 추진할 전망이다.
실제로 그는 11일 출근하는 길에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어떤 도발, 위협을 해올 것인지 고려를 해야 한다. 북한이 계속 그렇게 (도발)하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거기에 상응하는 추가적 위협을 억제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가 이날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의미가 없다"며 "훈련은 가장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고 기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 점까지 감안하면, 차후 정세에 따라 전구(theater)급 기동훈련(FTX)이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
전구급이란, 한국작전전구(KTO) 즉 쉽게 말해 한반도 전체를 범위로 삼는 규모를 뜻한다. 현행 작전계획 5015를 기반으로 만든 모의 전쟁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습을 진행하는데, 2018년까지는 대규모 기동훈련도 함께 진행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대화 분위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2019년부터 전구급에서는 지휘소훈련(CPX)만 진행하고 기동훈련은 실무부대에서 계속 진행했다. 다만 언론에 공개하진 않았다. 군 관계자는 "
공개를 안 해서 그렇지 일선 부대에선 거의 매일 연합훈련이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 후보자는 "야전부대 장병들 입장에서도 장병들이 가치관이랄까 정신세계에서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일반적 평가"라며 "장병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런 생각을 바로 갖도록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도 언급했다.
이 발언은 크게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이른바 MZ세대가 군 생활을 하고 과거보다 인권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기존 간부들과 신세대 간부·병사들 충돌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머지 하나는 이른바 '대적관' 고취다.
2018년과 2020년 국방백서는 기존에 북한군을 '주적'으로 기술한 부분을 삭제하고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포괄적 개념으로 규정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주적은 북한'이라며 '주적' 개념 부활을 시사한 바 있다.
물론, 국제정치가 기존 미소 냉전처럼 양극체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심한 다극체제로 재편돼 가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육군 특전사령관을 지냈던 전인범 퇴역 중장은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서 "북한이 됐든 누가 됐든, (어떤 한 나라를)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현명한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한다"며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데, 우리나라에선 주적이란 개념으로 사상을 검증한다. 오히려 현행 국방백서에 기술된 표현이 정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도 12일 정례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유·무형전력의 최적 조합이 중요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 장병들 정신전력에 있어서는 5년 동안 강화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고, 우리 장병들 역시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군사관학교 43기로 임관해 10여년 군 생활을 했던 퇴역 소령이다. 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마지막으로 직을 내려놨다.
한편 외교안보라인을 총괄 지휘할 국가안보실장은 아직 내정되지 않았는데,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간사인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