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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장애인의 인간다운 삶 가로막은 장벽들 '복지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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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지식당'(감독 정재익·서태수)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 스포일러 주의
 
자유롭게 살 권리인 자유권,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이자 '생존권'으로도 불리는 사회권 등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헌법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권리의 대상인 '인간'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지 않는다. 이를 가르는 건 정책이고,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이다. 영화 '복지식당'은 장애인 앞에 놓인 수많은 장벽을 보여주며 이를 잊은 국가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청년 재기(조민상)는 홀로 거동조차 힘든 중증에도 불구하고 경증의 장애 등급을 받아 힘겨운 싸움 중이다. 하지만 그의 딱한 사정을 봐준 선배 장애인 병호(임호준) 덕에 취업도 하고 대출도 받으며 희망을 되찾는다. 그렇게 삶의 재기(再起)가 눈앞에 왔다고 여긴 순간 재기는 세상에 자신이 중증 장애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영화 '복지식당'(감독 정재익·서태수)은 사회 곳곳 제도의 모순으로 생(生)의 사(死)각지대에 놓여 인권과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실제 4급 장애인인 정재익 감독의 자기 체험에 바탕을 둔 영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수도권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한창인 지금, '복지식당'은 장애인 복지와 권리에 관해 좋든 나쁘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시기에 나온 영화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복지식당'은 무엇보다 우리가 몰랐던,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장애인 사회와 복지 실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상기시킨다.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황동혁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등을 통해 우리와 다른 세계를 가로막는 1인치의 장벽을 허무는 것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됐다. 1인치 장벽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맞닥뜨리는 장벽에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라 여기는 비장애인의 장벽은 관심의 대상이지만, '장애인'의 장벽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 혹은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른바 장애인(障碍人)과 비(非)장애인에서 '장애'와 '비장애'라는 단어를 떼어놓으면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人), 곧 '우리'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복지식당'의 주인공 재기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모두 경험한, 장벽 양쪽의 삶을 모두 겪은 인물이다. 영화는 재기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등급제, 장애인 일자리,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등 실제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복지정책의 허와 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멀쩡히 걸어 다니고 홀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병호의 코치 하에 장애인 2급 판정을 받은 봉수(송민혁)와 혼자 거동조차 힘든 중증장애인이지만 장애 등급 심사에서 경증에 해당하는 5등급 판정을 받은 재기의 대비는 복지 정책의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장애인들의 실태를 살피지 않고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도식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차별적으로 복지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허울뿐인 등급제는 오히려 장애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도가 됐다. 중증장애인이지만 정부가 낙인찍듯이 판정한 등급에 따라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현실은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이동하고, 스스로 일해서 살아가려 하는 장애인의 앞날을 시작부터 가로막는다.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넘는 조그마한 문턱이 재기에게는 사회가 바꾸려 하지 않는 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버렸다. 가장 기본적인 이동조차 재기에게는 장벽 중 하나다. 비장애인은 정해진 장소에서 끝이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버티면 되지만, 재기에게는 이동을 위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기다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5등급인 재기에게 1~3등급이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경증장애인에 해당하는 5급 재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장애인 콜택시만이 아니다. 휠체어 할인, 취업 지원 서비스 등 마땅히 받아야 할 장애인 관련 혜택 중 그 어느 것도 재기를 위한 혜택은 없다. 국가에서 중증장애인 재기를 '경증 5급'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국가는 재기를 복지 사각지대에 몰아넣었고, 재기는 인간적인 삶을 살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처럼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일자리 등 모든 장애인 문제에서 '장애인'이라는 단어만 빼고 보면 우리 모두가 겪는 일상이자 일반적이면서도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의 문제다. '이동권'과 '일자리' 등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야 할 일상의 모든 상황과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침해당하거나 불편부당함이 생긴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재기를 뒤쫓는 카메라는 관객에게 내내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복지식당'이 던지는 메시지는 장애인 기본권 문제만이 아니다. 영화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장애인'에게 가진 편견 중 하나를 맞닥뜨리게 만든다. 우리가 가진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바로 '장애인'은 선(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도 사람인 만큼 그 세계 안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다양성을 부정하고 하나로 뭉뚱그려서 '착한 사람' '약자' 등의 틀을 부여하고 여기서 벗어나면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극 중 병호는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고, 부정적인 인간의 모습들이 있는데, 그걸 집약한 게 병호다. 장애인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의 권력자인 병호는 아무것도 모르는 재기를 등쳐먹는 악역이다. 악역으로서 병호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재기의 문제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장애인 사회 내에서 차마 밖으로 꺼내길 꺼렸던 병폐를 '병호'라는 인물에 집약시킴으로써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영화 외적 역할로는 앞서 말했듯이 병호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던 '절대 선' '약자' 등으로 묶여버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병호가 극 중에서 벌인 여러 문제와 별개로 병호라는 캐릭터는 영화의 기능적인 부분에서는 '필요악'으로 작용한다.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96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재기는 힘겨우면서도 처절하게 끊임없이 무엇이 재기를 비롯한 장애인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길인지 보여주고 질문한다. 재기가 원하는 것은 비장애인이 그러한 것처럼 장애인 역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소소하게는 건물 내 경사로,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과 약자, 유모차를 끄는 부모에게도 유용한 시설이다. 이건 장애인만을 위한 '혜택'이 아니다.
 
장애인에게 높은 문턱은 우리 사회 수많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모든 시민에게 문턱이다. 모두를 위한 문턱을 낮춰달라는 것, 그것이 재기가 바라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비장애인, 장애인에서 '사람'이라는 존재 앞에 달린 우리 사회가 만든 수식어를 제외하면 모두 '인간'이다. 재기의 바람은 곧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답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말이다.
 
96분 상영, 4월 14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복지식당' 메인 포스터.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영화 '복지식당' 메인 포스터. 제주에스엘㈜·㈜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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