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고양특례시장. 고무성 기자"10년 전 누군가 받아냈으면 멈출 수 있었던 작은 공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결국 큰 바위로 몸집을 불려 나에게 돌아왔다." 이재준 경기 고양특례시장은 지난 2010년 도의원에 당선된 후 자족용지로 계획됐던 토지가 주택용지로 용도변경이 돼 많은 의혹과 논란을 일으켰던 '요진 Y시티' 사건의 1차 협약 문서를 처음 접하고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경기도에 도정 질문을 통해 항의한 이 시장은 이듬해 용도변경 허가에 관계한 모든 공직자와 도시계획심의위원에 대해 형사 처분까지 요구했다.
이 시장은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일부 주민들과 정치인들은 이 시장이 지역 발전을 방해한다며 현수막을 붙이고, 하루 수십 통씩 문자를 보내며 혹독하게 공격했던 것이다.
이 시장은 2018년 고양시장에 당선된 후에도 땅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이듬해 6월 백석동의 와이시티(Y-CITY) 내 학교용지와 업무빌딩 기부채납 협약을 이행하지 않은 요진개발이 고양시를 상대로 낸 기부채납 무효확인소송에서 고양시가 최종 승소했다.
이로써 고양시가 업무빌딩과 학교용지를 받아낼 일만 남았지만, 요진개발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이 시장은 요진개발의 자금줄을 봉쇄했다. 600억 원의 근저당권을 잡아놓고, 기부채납 지연 손해배상금으로 네 차례에 걸쳐 28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가압류하며 거세게 압박했다.
결국, 요진개발과 휘경학원, 고양시는 2020년 4월 "고양시에 학교용지를 돌려주겠다"라는 비공개 협약을 맺었다.
땅을 확실하게 가져오기 위해 몇 달 뒤에는 휘경학원에 소유권 등기 이전 소송을 제기했고, 이듬해 2월 마침내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면서 5년간의 힘겨운 법적 분쟁이 일단락됐다.
이 시장은 "누군가는 수억 원대의 소송비용을 들이는 것을 비난했지만, 이 소송은 그간 계속된 '자족시설 용도변경과 업체 특혜 의혹'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소중한 판례를 남긴 소송"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5년간의 법적 분쟁은 그동안의 무책임한 개발 행태를 돌아보게 한다"며 "고양시의 일그러진 이 모습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백서를 만들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업무빌딩을 받기 위한 소송은 1심에서 이겼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초과이득금을 분배하기 위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아직 법정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시장은 "수십 년을 바라보는 도시계획을 이끄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과 판단"이라며 "사람들은 먼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보다는 눈앞의 확실한 이익을 원하지만, 누군가는 더 크고 장기적인 이익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공공이 존재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고양시의 미래에 대해서는 "좋은 주거 환경과 가까운 직장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도시가 될 것"이라면서 "지금 진행 중인 대규모 자족 시설과 광역 교통 시설을 기반으로 수도권 서북부 중심 거점도시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다져나갈 일만 남았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재준 고양시장과의 일문일답
-경기고양방송영상밸리, 일산테크노밸리, 성사혁신지구 등 많은 자족시설이 공사를 시작하는 등 추진력이 대단하다.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대략적인 설명 부탁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자족시설 확보에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까지 일산테크노밸리, 경기고양방송영상밸리, 성사혁신지구, CJ라이브시티 등이 공사를 시작했다. IP융복합 콘텐츠 클러스터와 킨텍스 제3전시장도 착공을 앞두고 있다. 모두 초대형 자족시설인 만큼 그 경제적 파급효과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교통에 있어서는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된 고양시 7개 노선과 킨텍스·대곡·창릉을 잇는 GTX-A노선, 서해선 일산~소사 구간 등 총 9개의 새로운 노선이 계획 중이거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2018년 5월 고양시장 후보로 확정되고 난 후 후보로서는 최초로 시민이 원하는 공약을 직접 신청하는 '백지 공약'을 받았다. 생활 밀착형 요구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의외로 기업 유치와 광역교통망 확충에 대한 요구가 가장 많았다.
결국,
고양시민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더 가까운 일자리'였다. 그래서 공약의 첫 페이지는 일자리로 채웠다. 당선 후 이 약속은 어떤 일보다 우선해 시작했다. 단지 1순위 공약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일자리는 한 사람의 생존권이자 삶의 질을 높여주는 최고의 복지이며, 사람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기 4년 동안 다른 칭찬은 못 들어도 '일자리 시장'이라는 말은 꼭 듣자는 게 목표였다. 요진 부지 전경. 고양시 제공-일산신도시 건설 이후 당초 자족용지로 계획됐던 토지가 주택용지로 용도변경이 돼 많은 의혹과 논란을 일으켰던 '요진 Y시티' 사건이 있다. 여전히 분쟁이 진행 중인데 왜 이렇게 됐는지?
=고양시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일산신도시 외관이 어느 정도 완성된 1998년 대형 건설사인 요진개발에서 유통업무시설용지를 사들이고 주상복합용지로 용도변경 해줄 것을 경기도와 고양시에 수차례 요구했다. 당시 고양시는 7년 동안 요구를 번번이 반려하다가 요진개발에서 해당 부지의 약 절반인 49.2%를 고양시에 기부한다면 개발을 허락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요진개발은 땅을 절반에 크게 못 미치는 32.7%만 기부하고 대신 1200억 원 상당의 업무용 빌딩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기부할 땅 32.7% 중에서도 3분의 1은 학교용지로, 요진과 특수관계 법인인 휘경학원에 사업권을 줘서 명목만 기부채납이고, 실제로는 요진이 되돌려 받는 꼼수를 쓴 것이다. 잃어버릴 자족단지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땅을 더 얹어줘도 모자랄 판에 어째서인지 시는 2010년 1월 용도변경을 허락했다.
고양시와 요진의 1차 협약이 이뤄진 후 지방선거에 당선돼 도의원이 된 나는 이 협약 문서를 처음 접하고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2010년 11월 경기도에 도정 질문을 통해 항의했고, 이듬해에는 용도변경 허가에 관계한 모든 공직자와 도시계획심의위원에 대해 형사 처분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과 정치인들은 내가 지역 발전을 방해한다며 현수막을 붙이고, 문자를 하루 수십 통씩 보내며 혹독하게 공격했다.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도의원 시절에는 조치를 요구했던 사안이 시장이 돼서는 직접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요진으로부터 고양시 땅을 되찾아 오는 싸움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되찾아 올 수 있었는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낸 요진개발은 고양시에 "개발허가를 조건으로 기부채납을 요구한 것은 무효"라며 적반하장으로 소송을 걸었다. 휘경학원 역시 경기도 교육청에는 "자사고를 짓게 해달라"는 소송을, 고양시에는 "자사고 대신 사립초를 짓게 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두 소송 모두 2017년과 2018년 휘경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학교 설립이 불가능해지면서 학교 부지를 고양시에 돌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2019년 6월에는 요진개발이 제기한 부관무효확인 소송에서 고양시가 최종 승소했다. 이로써 고양시가 업무빌딩과 학교용지를 받아낼 일만 남았지만, 요진개발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우리는 요진개발의 자금줄을 봉쇄했다. 600억 원의 근저당권을 잡아놓고, 기부채납 지연 손해배상금으로 네 차례에 걸쳐 28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가압류하며 거세게 압박했다. 게다가 2014년 요진개발이 학교 용지를 휘경학원에 무상 증여했는데, 더는 학교 용지가 학교라는 용도로 쓰일 수 없게 되면서 휘경학원은 증여세를 내야 할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요진개발과 휘경학원 그리고 고양시는 2020년 4월 "고양시에 학교 용지를 돌려주겠다"라는 비공개 협약을 맺었다.
땅을 확실하게 가져오기 위해 몇 달 뒤 우리는 휘경학원에 소유권 등기 이전 소송을 제기했고,
이듬해 2월 마침내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면서 5년간의 힘겨운 법적 분쟁이 일단락됐다. 업무빌딩을 받기 위한 소송은 1심에서 이겼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초과이득금을 분배하기 위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아직 법정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법적 분쟁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누군가는 수억 원대의 소송비용을 들이는 것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그간 계속된 '자족시설 용도변경과 업체 특혜 의혹'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소중한 판례를 남긴 소송이다. 이 5년간의 법적 분쟁은 그동안의 무책임한 개발 행태를 돌아보게 한다. 고양시의 일그러진 이 모습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백서를 만들기로 했다. 전국 기초지자체와 의회에 꼭 읽도록 하고, 고양시 공직자 사무관 진급 시 필독서로 하고 싶은 마음이다.
10년 전 누군가 받아냈으면 멈출 수 있었던 작은 공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결국 큰 바위로 몸집을 불려 나에게 돌아왔다. 이익만을 좇는 자본 권력, 그리고 이 자본 권력에 자의든 타의든 타협하고만 정치 권력과 공공이 만들어낸 참상과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편법과 탈법, 부정과 불의의 성공 신화는 더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결국,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자족시설 용도변경이 문제인 것 같다. 이를 막기 위한 고양시의 대안은?
=부지를 용도 변경해서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단 하루 만에도 가능하다. 빈 자족용지는 얇은 유리창같이 늘 위태로운 상태다.
본래 목적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자족용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허가권보다 더 강력한 '법'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도의원 시절 경기도에 두 개의 대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자족시설 부지의 용도변경을 엄격히 막는 '용도변경 금지 특약'이고, 또 하나는 오랫동안 사업을 착공하지 않으면 사업권을 다시 회수하는 '사업권 강제 환수 규정'이었다. 의회에서 부결돼 법제화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가장 강력한 대안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고양시장 취임 이후 마주한 킨텍스 지원부지인 C4 부지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 모두 킨텍스 지원시설이 아니라 집을 짓겠다며 달려들었다. 킨텍스 지원 부지가 더는 주택단지로 변모하는 것을 막기 위해 C4 부지의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유례없는 '미래용지'다. 지난 2019년 10월 30년간 민간 매각을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해 C4 부지를 미래용지로 지정하고 공공에서 직접 활용하기로 했다.
고양시 철도 운행현황 및 노선계획도. 고양시 제공-도시계획을 바라보는 시장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
수십 년을 바라보는 도시계획을 이끄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과 판단이다. 사람들은 먼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보다는 눈앞의 확실한 이익을 원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크고 장기적인 이익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공공이 존재하는 이유다.자족시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법인세 등의 세수는 물론 일자리, 주변 상권 활성화, 도시 브랜드 가치 향상 등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황금알을 꾸준히 낳는다. 하지만 자족시설을 유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랜 노력이 필요한 장기전이다. 반면 주택지구 개발은 눈앞의 '황금알'이다. 단기간에 부지 매각 이익과 막대한 분양 수익을 안겨준다.
안타깝게도 국가와 지자체의 도시계획에서도 근시안적인 선택이 무수히 많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기업, 연구기관, 대학교, 공연장 등 자족시설이 들어서야 할 도시의 미래 부지를 아파트·주거용 오피스텔이나 상업시설 부지로 용도 변경하는 행위다.
-앞으로 고양시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는가?
=고양시는 좋은 주거 환경과 가까운 직장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도시가 될 것이다. 자영업이나 영세한 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4차 산업 스타트업까지 풍부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통해
앞으로 고양시민의 삶은 결혼, 육아, 여가 등 삶의 다른 요소도 이전보다 훨씬 윤택해질 일만 남았다.공공이 만드는 일자리는 한계가 있다. 괜찮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은 지속 가능한 도시의 필수재다. 고양시가 한 번도 유치해본 적 없던 기업을 들여오고, 한 번도 찾지 못했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한 작업을 경기도의원 시절인 5년 전부터 이미 진행해 왔다. 이제 남은 건 준공뿐이다.
지금 진행 중인 대규모 자족 시설과 광역 교통 시설을 기반으로 수도권 서북부 중심 거점도시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다져나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