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당선 인사 중 미소를 짓고 있다. 황진환 기자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0일 이규원(45·사법연수원 36기) 춘천지검 부부장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윤 전 총장의 당선 이후 검찰 내 첫 사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과거사 수사에 참여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파견된 데 이어 승진까지 얻어낸, 소위 잘 나가던 친정부 성향 검사의 사표 제출이라 상징성이 크다.
이 검사의 사직 배경에는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으로 기소된 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검사는 2019년 3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당시 긴급 요청서를 조작해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위법하게 막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여기에 '김학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조사하면서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와의 면담 보고서를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이 검사의 범죄사실 중에는 윤중천씨가 진술하지 않았는데도 윤석열 당선인이 윤씨의 원주 별장에 다녀온 적 있다는 취지의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혐의도 들어있다. 윤석열 정부 검찰에서 이 검사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공신인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같은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며 친분이 두터운 이력도 운신의 폭을 제한할게 뻔하다. 이 전 비서관 역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를 승인한 공범으로 기소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이규원 춘천지검 부부장검사. 연합뉴스윤석열 정부 검찰에서의 지각변동은 대다수가 예견하는 특수통의 부활 이외에 이규원 검사처럼 김학의 사건에서도 명암이 갈릴 전망이다. 이미 김학의 사건은 추미애·박범계 두 법무부장관 체제에서 검찰 균열의 단면을 충분히 보여줬다. 추 전 장관은 불법 출금 의혹을 제기한 검사들을 콕 집어 "검찰개혁에 반하는 행태"라고 비판했고, 박 장관은 '공소장 유출' 진상조사로 수사팀을 압박했다. 반대로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을 금지한 검사들은 개혁적으로 평가했다.
이규원 검사와 마찬가지로 '김학의 사건'을 겪으면서 친정부 성향을 더욱 공고히 보여준 인물로는 이성윤(60·23기) 서울고검장이 대표적이다. 이 고검장은 2019년 6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당시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하려는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외압을 행사해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뒤늦게 수원지검에서 외압 의혹을 다시 수사하고 나섰지만, 이 고검장은 소환에 줄곧 불응하며 공수처 수사를 자청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이 이 고검장을 관용차로 에스코트해 비공개 면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황제 조사' 논란도 낳았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성윤 서울고검장. 윤창원·황진환 기자우여곡절 끝에 수원지검이 이성윤 고검장을 기소했지만 이번에는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공소장 외부 유출을 문제 삼으며 이 고검장을 비호했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내부 진상조사를 받는데서 모자라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뒤바뀌었다. 박 장관은 그전에도 수사팀 핵심 검사 2명의 파견 연장을 불허하면서 번번이 수사 동력을 꺾었다. 지난해 7월에는 수사팀 인원 상당수를 지방으로 좌천시키면서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정부 첫 검찰 인사에서 이들 수사팀 검사들의 수도권 복귀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수사팀장인 이정섭 부장검사는 수원지검에서 대구지검으로 좌천돼 현재까지 이동이 없다. 이 부장검사 다음 선임이었던 이상혁 부부장검사도 대전지검으로 발령받아 지금도 그대로 있다. 파견 연장이 불허된 임세진 검사와 김경목 검사는 모두 부산지검에 내려가 있다.
더불어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공익신고자 장준희(52·31기) 부장검사의 중용도 예상된다. 장 부장검사는 의정부지검 형사1부장으로 근무하다가 '김학의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이후 인천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중경단)으로 전보됐다. 사실상 좌천성 인사다. 그간 정권에 쓴소리를 해온 강수산나(54·30기) 부장검사, 정희도(56·31기) 부장검사, 박영진(48·31기) 부장검사 등 강골 검사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모두 중경단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