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A(54)씨의 시간은 4년 전에 멈춰있다.2018년 1월 18일 대전의 한 연립주택에서 불이 났다. A씨의 아내와 둘째아들, 막내딸은 안방에서, 큰아들은 작은방에서 자고 있었다. 문이 닫혀 연기가 덜 들어온 작은방에 있었던 큰아들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날 화마는 안방에 있던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화재는 주방 쪽 전선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주방은 안방과 반대방향에 있었지만 가족들은 빠르게 대피하지 못했다. 집 안에는 화재경보기도, 소화기구도 없었다. 화재 발생 원인에 대한 책임은 가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재판부는 "단독경보형감지기가 설치돼 작동했더라면 망인들도 더 빨리 잠에서 깨어 빠져나오거나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를 사망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A씨 가족이 살던 집은 대전 남대전고등학교 학교법인인 대운학원이 소유한 '수익용 기본재산'이었다. 수익용 기본재산은 학교 건물과 학교 부지를 제외한 재산 등을 가리킨다. 2017년 공동주택 단독경보형감지기와 소화기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A씨가 살던 집에는 설치돼있지 않았다. 대전지법은 원고(유족)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유자인 대운학원이 유족 측에 2억 3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임차인으로서 계약 당시와 같은 상태로 보존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주택을 복구하는 데 쓰인 2600여만 원을 공제한 금액이었다.
배상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운학원은 불복해 재판을 이어갔지만 고등법원, 대법원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진 때가 2020년 10월. 이전에도, 이후에도 유족들은 학교법인 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배상에 대한 입장 한 번 듣지 못했다.
배상명령 이행 않는 학교법인
사립학교법상 법인 기본재산
유족 측이 강제집행 등 못 해
"학교법인이 법 뒤에 숨은 꼴"
2018년 1월 18일 대전의 한 연립주택에서 불이 나 3명이 숨졌다. 불이 난 연립주택은 대전 남대전고등학교 학교법인인 대운학원이 소유한 '수익용 기본재산'이었다. 집 안에는 설치가 의무화된 화재경보기와 소화도구가 없었고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재판부는 이를 사망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김정남 기자대운학원이 배상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지만 유족 측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유재산이 아닌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이 지닌 '특수성' 때문이다. 학교법인의 기본재산은 사립학교법상 해당 학교법인의 동의 절차가 없인 처분할 수 없다. 기본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서는 학교법인이 관할청에 신청하면, 관할청인 대전시교육청이 검토를 통해 이를 허가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 '신청'부터 학교법인이 아닌 제3자는 할 수 없고 관할청의 허가 역시 신청이 들어와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상을 계속 하지 않아 법으로 압류 절차를 밟더라도 현금화 등의 실질적인 조치는 할 수 없다.
대운학원 측은 "현재 임시이사 체제로서 기본재산 처분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운학원은 이사장 갑질 논란 등이 불거지며 지난해 이사장과 이사들의 임원승인이 취소되고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임시이사회는 재산 처분에 대한 논의 권한은 없다고 한다. 임시이사 체제는 2023년까지 운영된다. 그 이후에 관련 논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대운학원의 한 관계자는 "배상금액이 커 기본재산을 처분하더라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에는 '수리비 달라'
내용증명까지 보낸 학교법인
"오랜 싸움 고통스럽고 괴로워
책임 인정하는 태도 보였으면"
유족 측은 배상이 이뤄지지 않는 데 이 같은 법인의 '외부' 사정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당초 배상을 이행하기 위한 대화나 행동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때는 임시이사 체제가 아니었지만 이사회에서 이와 관련된 안건이 다뤄진 적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은 사고 직후 학교법인이 보였던 태도를 기억한다. 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리비를 부담해 달라'는 연락이 왔고,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내용증명이 왔다. 유족에게 배상을 하라고 할 때는 빠르게 대응하고 법을 운운하던 학교법인이 정작 법인의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왜 침묵을 이어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진짜 교육자들이 맞나라는 생각만… 법인 재산에 대해 법적으로 제가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도 그쪽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 같고, 개인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도 같다. 이사장 면담도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A씨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학교재단이 법을 방패로 삼아 뒤에 숨은 것 같다"고도 말했다.
지난 4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8살 막내딸이 자꾸만 눈에 밟혀 아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서있던 날도 적지 않다. 그랬기에 재판 과정도 고통이었다. 이제는 매듭이 지어져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싶지만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끝나지 않는 이 상황이 너무 괴롭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사고 이후 유족 측에 연락했던 학교법인 관계자는 "처음에는 화재현장 정리로 내부에 있는 집기를 처분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의였고 법인 측에서도 (수리비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