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으로 열연한 배우 오영수. 넷플릭스 제공참가번호 001번 오일남, 혹은 '깐부 할아버지'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배우 오영수가 미국 보수성과 폐쇄성의 상징 골든글로브를 뛰어 넘으며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TV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트로피는 한국 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활약한 배우 오영수에게 돌아갔다.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의 주인공이 된 오영수는 이번에 처음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시상식에 후보로 올라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 그렇게 동양인 배우는 작지만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백인 위주의 '그들만의 리그'에 균열을 냈다.
오영수, 보수성의 보루 '골든글로브'를 뛰어넘다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번호 001번으로 등장한 후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때로는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선보인 오일남은 잔혹한 서바이벌이 펼쳐지는 극 중 현실에 묵직한 경종을 울렸다.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기와, 특히 이정재가 맡은 성기훈에게 "우린 깐부(가장 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잖아"라고 말한 대사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는 '깐부'가 해시태그 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는 할리우드의 대대적인 보이콧에 직면해 무관중·무중계로 진행된 골든글로브에서 볼 수 있듯이, 백인 위주 골든글로브의 보수성과 폐쇄성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수상을 두고 "그동안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정받고, 아카데미상도 받았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미국 백인 위주 보수성의 보루가 골든글로브였다"며 "이번에 골든글로브에서 수상함으로써 한국 콘텐츠가 확실하게 미국 사회에서 주류 반열에 올랐다"고 의미를 짚었다.
골든글로브는 미국 제작사가 제작하고 미국 배급사가 배급한 자국 영화인 '미나리'조차도 외국어인 '한국어' 대사가 대부분이라는 이유로 제78회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린 바 있다. '미나리'는 온전한 미국 작품임에도 비(非)백인·비(非) 영어 작품이라는 점에서 패널티를 얻어 골든글로브의 높은 차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또한 골든글로브는 아시아계 배우들에게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빗장을 열었다. 한국계 캐나다 배우 산드라 오는 '킬링 이브'로 76회 골든글로브에 이르러서야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영화 부문에서는 이듬해인 77회 시상식에서 '더 페어웰'의 배우 아콰피나가 아시아계 배우로서는 최초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TV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으르 수상한 배우 오영수. 골든글로브 제공 노장의 힘 보여준 79세 오영수, 나이의 장벽까지 허물다
배우 오영수의 수상이 갖는 의미는 세계적인 보수성의 벽을 넘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나라와 언어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또 다른 벽인 '나이'까지 허물었다는 점에서도 오영수의 수상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
지난 1963년 극단 광장의 단원으로 입단하며 연극계에 발 들인 오영수는 '낮 공원 산책'(1968)을 통해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리어왕' '파우스트' '피고지고 피고지고'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하며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연기 인생을 지켜 왔다. 그는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한국연극협회 등 굵직한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평단으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연극 무대뿐 아니라 드라마 '선덕여왕',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도 배우 오영수는 존재감을 입증했다.
79세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 시청자에 이어 평단마저 사로잡으며 또 다른 보수성인 '나이'의 장벽까지 뛰어넘었다. 영화 '미나리'로 '화이트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노배우로서, 워킹 맘으로서 유리천장을 깨뜨렸던 윤여정에 이은 또 다른 쾌거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속 배우 오영수. 코리아픽처스 제공하재근 평론가는 "우리나라 영상계가 외국보다 활동하는 연령대의 폭이 굉장히 좁다. 연령대가 올라가면 주요한 배역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이번에 한국 원로 배우가 연이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원로 배우들의 힘이 재발견되고, 입지가 강화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오영수가 죽음밖에 남지 않는 무한 경쟁이 펼쳐진 '오징어 게임' 안팎으로 전한 것은 단순히 그의 연기력뿐 아니라 장벽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힘이다.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 이겼지 않은가. 모두가 승자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승자는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승자고, 그렇게 살면 좋겠다." _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배우 오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