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7회 육군력 포럼 현장에서 공개된 육군우주발전 기본계획 '페가수스 프로젝트' 홍보영상 가운데 한 장면. 육군 제공"지상에서 폴짝 뛰면 그 때부터는 공군의 영역이지만, 달이든 화성이든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는 육군의 영역이다."군에서 우주를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하는 이들이 하는 우스갯소리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태생 자체가 하늘을 날아야 하는 공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 인류가 달이나 화성에서 전투를 벌일 일은 없는데 지상에서 전투를 벌이는 육군이 왜 우주를 연구할까.
육군은 지난 22일 육군대학 지상전 연구실 주최로 연 웨비나와 지난달 18일 열린 7회 육군력 포럼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요약하면 미래 전쟁에서는 우주라는 영역을 활용해야 지상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주경쟁이 낳은 ICBM과 인공위성…첨단 과학 통해 지상군 승리 기여
군과 민간이 우주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위성이다. 1957년 10월 소련은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스푸트니크 쇼크'라 불리는 충격을 서방에 안겨주었다.
미국과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만든 세계 최초 탄도미사일인 V2를 기반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경쟁을 벌여 왔는데, 소련이 그 과정에서 세계 최초 ICBM인 R-7 로켓으로 스푸트니크 1호를 대기권에 올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공위성 기술에서 미국이 소련에 선두를 뺏겼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소련이 미국을 선제 핵공격하려면 그전처럼 폭격기를 보낼 필요 없이 미사일을 쏘면 된다는 점을 뜻하기도 해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우주를 통해 먼 거리에서 대기권을 뚫고 날아오는 ICBM 요격은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방법 자체가 아예 없었다.
합참이 제시한 '우주정보지원' 작전개념. 이는 우주에 떠 있는 각종 위성들이 지상군 작전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의미한다. 국방부 제공인공위성 자체도 군사적으로 유용하다. 통신위성을 통해 교신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먼 거리에서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고, 정찰위성은 적 영공처럼 아군 정찰기가 가지 못하는 곳을 우주에서 찍어 적 동태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항법위성을 통한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GPS)을 활용하면 전장에서 내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타격을 준비할 때, 환풍구 근처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다는 점을 이용해 이를 관측하면 목표가 어디인지 보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주변에 이 시설을 지키는 병력은 어느 정도이며 작전에 어떠한 위험이 있는지도 위성정찰을 통해 파악하고, 모든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멀리서 미사일을 쏴 타격할지 또는 전투기나 특수부대를 보낼지 결정한다.
위성을 통한 정찰·통신 등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군이 작전을 벌일 때 미리 우주를 통해 해당 지역 근처를 정찰하고 날씨가 어떤지 살펴보며, 실제 작전에서는 위성 자체 또는 지상통제소와 무선통신을 끊김 없이 주고받고 작전이 끝나고 나면 결과가 어떤지 평가하며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
미 국방부는 이같은 수준의 전쟁을 3세대 우주전, 네트워크중심전(NCW)이라고 칭한다. 미군이 이런 방식으로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빠르게 격파하는 성과를 올리면서 강대국들은 미래전에 우주를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미래엔 우주 자체도 전장…'다영역' 주목받는 이유는
1985년 미국이 F-15 전투기에서 시험발사한 ASM-135 위성요격미사일. 미 공군 제공우주는 작전을 돕기 위한 터전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전장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주에서 목표를 노려 직접 지상을 폭격하는 무기를 만들면 현재 기술로는 요격이 어렵다.
물론 우주에 그만한 질량을 가진 무기를 띄워 올리는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아직 실용화되지는 않았다. 1967년 채택된 외기권조약 4조는 지구 궤도에 핵무기나 대량파괴무기를 설치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다른 나라들이 이미 우주에 띄워올린 자산을 못쓰게 만들어, 지휘통신체계에 혼선을 주고 정찰을 못하게 하는 쪽이 있다. 인공위성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무기체계를 '위성요격무기(ASAT)'라고 부른다. 다만 외기권조약을 감안해 현재는 위성이 직접 위성을 타격하게 만들기보다는 지상발사 미사일이나 레이저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미국 우주전문매체 스페이스뉴스에 따르면 지난 11월 러시아는 '코스모스-1408'로 추정되는 자국 첩보위성에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해 파괴했다. 지구 상공 약 485km 높이 저궤도를 돌고 있던 이 위성은 파괴되면서 각종 잔해를 남겼는데 이 때문에 국제우주정거장(ISS) 우주비행사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직후 미 국무부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이 사실을 확인하며 추적 가능한 잔해만 1500개 이상이 발생했고, "러시아의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은 외기권의 장기간 지속 가능성을 위태롭게 했으며, 우주 공간의 무기화에 반대한다는 러시아의 주장이 위선이었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직접적으로 위성을 파괴하지 않더라도 전자전 또는 사이버 공격을 통해 적 위성을 못쓰게 만들 수도 있다. 러시아는 지난 7월에도 유럽우주국(ESA)의 센티넬-1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 전파를 교란해 탐지 능력을 마비시켰다. 위성이 파괴되지 않고 떠 있더라도 탐지 기능이 마비되거나, 수집한 정보를 아군에 보낼 수도 없게 되면 무용지물이 된다.
미군 다영역작전 개념도. 미 육군 미래사령부 제공미군은 이러한 맥락에서 미래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상, 해상, 공중, 우주, 사이버/전자전이라는 여러 영역을 동시에 활용하여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활용한 작전개념을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이라 이름지었다.
예를 들어 지상작전이라고 해도 레이저나 미사일 등을 통해 적 인공위성 전파를 교란하거나, 지상통제소 또는 인공위성 자체를 파괴해 지휘 또는 정찰체계를 마비시키는 식으로 여러 영역을 전투에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처럼 육군은 지상만, 공군은 공중만 맡는 식으로 작전을 벌여서는 효율성도 떨어지고 승리도 담보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개선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기 위해 미군은 각군 전투정보공유체계를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라는 이름으로 통합해 운용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한국군 등과 상호운용하고 있는 공동 표준규격을 통해 동맹국에도 이를 포함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개념 정립해가는 우리 군…민간 기술 활용하고 통신체계 잘 갖춰야
우리 국방부는 지난달 3일 서욱 장관 주관으로 국방우주력발전 추진평가회의를 열고 점점 늘어나는 우주위협에 대비해 국방우주기술과 우주전력을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국방부 차원에서는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합동성에 기반한 우주정책·전략·교리를 발전시켜 나가며, 합동참모본부 차원에서는 각 작전사령부와 연계하는 합동우주작전 수행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합참이 제시한 우주작전 수행개념 4가지. 우주정보지원(왼쪽 위), 우주영역인식(오른쪽 위), 우주통제(왼쪽 아래), 우주전력투사(오른쪽 아래). 국방부 제공특히 합참은 합동우주작전 목표달성을 위해 우주작전 수행개념을 4가지로 나누어 정립했다. 이는 △감시정찰, 항법, 통신 지원활동 등을 포괄하는 '우주정보지원' △우주위험(잔해 등)과 위협(적 공격)을 식별하는 '우주영역인식' △우주자산 생존성과 자유보장을 위한 방어·공세적 활동을 하는 '우주통제' △우주전력을 우주로 운반·배치하거나 우주 내에서 이동시키는 '우주전력투사'로 구분된다.
이를 위해 국방과학연구소(ADD)는 현재 영상 레이더 위성, 적외선 카메라, 위성관제와 수신처리체계를 개발하고 있으며 군은 이를 정찰위성체계로 운용할 계획이다. 우주에서 지상을 감시할 수 있는 SAR 탑재 초소형 위성을 여러 개 쏘아올려 이를 연계시키는 방법(군집위성)으로 실시간 탐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민간 우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군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감시·정찰(ISR)자산을 강화하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미군에서는 육군도 위성을 활용하기 위해 90분마다 한 번씩 지구를 도는 저궤도 위성을 활용하려 하고 있으며, 민간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처리하고 통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육군미래혁신연구센터가 펴낸 '미래 합동우주작전 수행개념과 육군의 역할' 연구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육군 자체 자산과 타군 자산들이 미군 JADC2처럼 한 가지 통신망으로 통합될 수 있는 초연결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해야 하고, 우주영역에서 지상군 부대가 작전수행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요인을 이해해 계획을 수립하며 필요시 우주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적과 아군의 상황 등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데이터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체계가 말단 제대까지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군 일선 야전부대 통신과 네트워크 체계가 아직도 미비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양욱 겸임교수는 웨비나에서 "이제는 JADC2가 갖춰지지 않으면 미군과 연합작전도 어려워질 텐데, 현재 한국군 통신체계를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고 비판했다.
미래전 개념을 확립하는 데 있어 미군 다영역작전이 좋은 사례이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작전을 벌이는 미군과 우리의 현실이 다르기에 정확한 현실 인식과 평가를 바탕으로 우리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군 관계자는 "다영역작전은 중국 전략 때문에 탄생했는데, 막상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선 전략이 없었고 이 때문에 동시방위전략이 탄생했다"며 "미국의 논리와 전술과 전략을 그대로 대입하면 안 되고 우리 입맛에 맞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한 뒤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