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유일한, 평범'의 저자인 최현정 전 mbc 아나운서, 21세기북스 제공단아한 외모에 지적이고 차분한 진행으로 사랑받던 방송인 최현정(42) 전 mbc 아나운서.
입사 당시부터 기상캐스터 출신 최초의 mbc 아나운서로 화제가 됐던 그는 mbc 파업으로 화면 속에서 사라지더니 어느 날 퇴사 소식이 들려왔다.
종편과 ebs 등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쌍둥이 출산 이후 방송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몇 년 전부터 쌍둥이 육아 등을 담은 유튜브 '맘맘티비'를 진행하며 다시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유튜브에는 시험관 시술, 영어유치원 등 아들, 딸 이란성 쌍둥이를 육아하며 겪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갑작스런 퇴사 후 임신과 출산, 이후 대학원을 졸업한 뒤 상담가로서의 과정을 밟고 있는 최현정을 최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간 에세이집 '유일한, 평범'(21세기북스)을 들고서.
이 책은 10여년 간의 아나운서 활동을 마치고 마흔 즈음 늦깎이 엄마가 되며 생(生)의 2막을 준비하며 느낀 단상들을 담았다. '경단녀', 프리랜서, 육아 등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맞서 고군분투한 그의 일상이 켜켜히 담겨있다.
책을 읽으며 든 느낌은 단연 '솔직함'이었다. 보통 에세이집이 예쁘거나 멋지거나 그럴 듯해 보이도록 포장한 책이 많다면 이 책은 날 것 그대로였다.
"답답했어요"라며 말문을 연 그는 "퇴사 후 '아나운서'라는 사회적 존재가 없어지고 난 뒤 사회 활동에 복귀하지 못할 것 같은 초조함이 있어 겁이 났어요. 출산 후엔 육아를 겪으며 육아를 엄마에게만 지우고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풍토에 억울하고 화도 났어요. 뭔가 쏟아내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나의 사회적 위치를 설명할 단어가 없다는 것이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왜 우리 사회는 이리도 직함을 찾느냐 말이다. 그냥 "최현정입니다."라는 소개로 충분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불친절한 소개란 이름 자체로 브랜드가 된 '셀럽'에게나 허락되는 것이지,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한대 방송을 조금 했던, 퇴직한 아나운서가 하기엔 건방진 소개가 되어버리는 것이 슬프다. 정말이지 지금의 나를 소개할 말을 못 찾겠다.
-24쪽
나는 마치 '영업 중'이라고 불을 켜두었건만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식당 같았다.
-25쪽
아나운서의 일이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드러나는 외모나 이미지로 평가되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탱탱한 젊은이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는 게 순리로 여겨진다. 특히 여자 아나운서의 실질 수명은 길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기게 막연히 마흔 이후에는 다른 일을 찾는 게 어떨까, 생각은 했었다. 그럼 어떤 일? 방송만큼 짜밋하고 재미있고, 버젓하게 생색도 나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일이 또 있을 수 있나?
-165~166쪽책 곳곳에는 아나운서를 그만 두게 된 과정과 그 뒤의 심리적 방황과 정체성 혼란 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회사 그만두던 당시 하루 종일 들었던 노래가 '걱정 말아요. 그대'였어요. 지금도 사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마음 아픈 지점들이 있는데 그냥 지나간 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때가 나의 삶에 중요한 변곡점이었죠"라고 회상했다. mbc 파업 당시에 대해선 "안타까운 역사를 mbc가 지녔다고 생각해요. 각자 추구하는 대로 살았고 누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라고 했다.
그는 "아나운서라는 이유로, 과분한 대접을 받고 살았더라구요. 국민 전체를 대표해 유명인을 인터뷰하고, 공공재인 전파를 통해 국민들이 위임해준 나름의 권력을 누렸던 거 같아요. 어디서든 사랑을 받았고 그 즐거움을 누렸죠"라고 털어놨다.
"상담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어요"퇴사 후 '프리랜서'의 삶에 직면하며 고민하던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평소 꿈꾸던 상담학을 공부하게 된다.
"살면서 관계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고 다 내 맘같지 않더라구요. 아나운서일 때도 비슷한 연차들끼리 캐스팅을 놓고 경쟁하다 보니 관계가 어려운 면이 있어 대중심리서를 많이 찾아보기도 했어요."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지금은 상담사 수련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아직은 상담이 특정 사람들 만의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효용성을 널리 알려 상담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상담은 인생을 더 이해하고 인간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인생과업 중 하나로, 상담사가 되어 가는 과정도 하나의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 아나운서 출신인 장점을 최대한 살려 연예인 등 대중에게 노출되는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상담에 특히 관심이 많다. 대중에게 사적인 부분까지 노출되는 직업이 정서적으로 취약해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심리 건강을 살피는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한다.
"오은영 박사를 보면 정신 건강에 대한 분석을 넘어 치유가 되더라구요. 그 분의 상담을 통해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마음을 다룬다는 것이 되게 중요한 일이죠. 지금 사회 전체가 오 박사께 의지하고 있는데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에는 상담사로의 단계를 밟아가며 느끼는 고민과 에피소드도 담겨있다. 수련 중 내담자와의 사이에서 경험한 일들에 대한 기억과 감정,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며 '나'와 세상, 인생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고 느낀 것들을 기록했다.
감정은 우선,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유를 찾는 건 그다음이다. 무서운 것도, 미운 것도, 화나는 것도 다 옳다. 모든 감정은 옳다. 아니, 옳고 그름이 없이 그저 귀하다. 생생히 살아 숨 쉰다는 확인이고, 감정을 건강히 다루어나갈 방법을 배울 소중한 기회이다. -191쪽
특히 '울 권리'라는 제목의 울음에 대한 단상들이 눈길을 끈다.
"울음은 좋은 것이다. 정서 관리에 좋다. 울음이 가진 해소의 힘, 정화의 힘, 위안의 힘을 나는 믿는다. 이것을 더 정밀하게 과학적 수사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가 아쉬울 뿐이다. 가슴이 답답한 건, 울어야 하는 때에 못 울어서고,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거나 짜증이 올라오는 것도, 충분히 우는 시간을 가지지 못해서다, 라고 나는 정리한다.
-201~202쪽아나운서 경험이 상담가로서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오히려 해가 됐던 거 같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뷰를 많이 해서 자연스럽게 밴 습관이 오히려 방해가 됐다는 것. 아침 프로그램에서 질문을 던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진행 패턴과 상담은 결이 전혀 달라 이를 깨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했다.
"50분 동안 우왕좌왕하지 않고 잘하겠지 했는데 정말 다르더라구요. 지금도 불쑥불쑥 옛 습관이 나올 때마다 깨는 중입니다.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제가 가끔 엉뚱하게 짚기도 해요. 상담사로서 잡아내야 하는 힌트와 아나운서로 재밌는 이야기를 잡아내야 하는 힌트가 매우 달라요."
이 책에 담긴 담담하고도 솔직한 고백들은 방송인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의 그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거창한 교훈을 들려주기보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과 공감하고자 한다. 책을 낸 소감에 대해선 "뿌듯해요. 책을 통해 독자와 만나게 되니 마음과 마음이 제대로 포개지는 느낌이예요. 방송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라며 미소지었다.
저자인 최현정은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으로,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및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10년여간 MBC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오랜 기간 난임으로 고생한 끝에 시험관 시술로 2017년 쌍둥이를 출산했다. 엄마가 되면서 달라진 일상과 육아의 고충을 유튜브 채널 '최현정의 맘맘티비'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 자신의 절절한 경험이 묻어나선지 '맘맘티비'에서도 시험관 시술 편이 가장 조회수가 높다.
신간 '유일한, 평범', 21세기북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