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서 해군이 공개한 경항공모함 모형. 김형준 기자국회 국방위에서 2년 연속 퇴짜를 맞았던 해군 경항공모함 사업 예산이 예결위에서 부활해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본설계에 필요한 예산 등이 반영돼 진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국회는 3일 오전 본회의를 열고 국방부가 제출했던 경항공모함 예산 72억원이 포함된 2022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72억원은 해군과 방위사업청이 관련 예산을 짜면서 기본설계 착수금 62억원, 함재기 자료와 대외군사판매(FMS) 예산 9억원, 간접비 1억원을 모두 합쳐 신청한 금액으로 구성돼 있다.
2년 연속 대폭 삭감됐지만…'현 정부 역점 사업' 예산 예결위서 부활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는 지난달 16일 국방위 전체회의에 내년도 예산 심사 결과를 제출하며 방위사업청이 제출한 원안 72억원을 모두 삭감하고 간접비 5억원만 반영했다.
함재기 운용 비용 등이 제대로 계산되지 않았고, 필요성에 대한 대국민 설득이 모자라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는데, 기획재정부가 방위사업청이 제출한 예산 101억원을 전액 삭감하고 국방위원회가 연구용역·토론회 예산으로 1억원만 배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도로 진행된 사업타당성 조사에서는 '조건부 타당성 확보', 국방부가 한국국제정치학회에 의뢰해 수행한 연구용역에서도 '확보 필요' 결론이 나왔었다.
지구 곡면과 레이더 탐지범위에 대한 그래픽.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수상함에 달린 레이더는 일정 거리 이상에서 적 함대나 저공으로 날아오는 항공기를 탐지하기 어렵다. 국제해양안보센터(CIMSEC) 제공경항공모함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자주국방 등을 위해 전력 증강을 강하게 추진해 왔던 현 정부 역점 사업이었다. 군사적으로 보아도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수상함에 탑재된 레이더로는 적 함대나 항공전력 등을 멀리서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항공모함 함재기를 운용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비행기는 수상함이 탐지하지 못하는 수백킬로미터 거리까지 날아가 적을 포착하고 정보를 함대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항공모함 함재기를 운용하는 해군은 수상함과 잠수함만 운용하는 해군보다 정보·감시·정찰과 표적화(ISR&T) 능력에서 우월하다. 2차 세계대전 이래 전 세계적으로 항공모함이 해군의 중심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방부가 한국국제정치학회에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도 항공모함에 대해 미래 전략자산으로 확보가 필요하며, 회색지대(gray zone, 전투나 전쟁 위험을 피해 일부러 점진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목표 달성을 노리는 것) 영역에서 분쟁 강도·상황별 최적의 억지능력을 제공할 수 있고, 군사력을 현시(show of force)해 도발을 억제하며 미래전 전략·전술과 운영교리 개발에 기여한다고 판단했다.
청와대는 다음 정부에서 사업을 이어가려면 이 예산이 복구돼야 한다고 판단했고, 당청을 잇는 정무라인이 움직였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경항모 사업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이 예산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부활했다.
방위사업청은 "간접비 5억원으로는 안정적인 사업착수가 제한돼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 반영을 설명했고 당초 정부안으로 반영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항모 예산 72억원 두고 여야 대치, 600조원 규모 예산안 처리 미뤄져
다만 국민의힘이 이를 반대하면서 1일 여야가 협상에 들어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경항모 설계에 필요한 최소 금액인 43억원에 국방위에서 책정한 간접비 5억원을 합친 48억원 정도를 반영하는 방안도 제시했다고 전해졌지만 국민의힘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항모 예산 72억원에 대한 문제로 600조원 규모 예산안 처리가 미뤄지는 보기 드문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협의가 다음 날로 미뤄졌지만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2일 의원총회에서 "경항모 사업의 필요성과 긴요성에 대해 다음 정부가 판단할 일이지 임기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정권이 판단해 대못질하느냐"며 "은근슬쩍 몇십억 넣어서 수십조원짜리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라 당연히 엄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이날 협의 결렬 뒤 기자들에게 "경항모 사업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사업이고 타당성이 충분히 검토됐기 때문에 내년도 예산으로 편성돼서 반드시 집행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밤 여야 합의가 최종적으로 불발되면서 민주당은 3일 오전 본회의를 열어 '당정 수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원내지도부를 포함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율적으로 본회의에 참석해 표결에 참여했고, 반대토론을 진행했지만 실력 저지나 장외 투쟁 등 강력한 반대는 하지 않았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예산안 통과 뒤 코로나19 추가 백신접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경항모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한 정권이 결정한 문제가 아니라 기획하고 시작한 지 20년 넘은 오래된 것"이라며 "해군의 역할이 과거처럼 주변국만 의식하는 그런 전력증강이 아니라 앞으로 수출 한국을 위한 중요 자원, 안전판이라는 판단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기본설계 발주…10년 뒤 항모 물에 뜬다
올해 2월 해군이 공개한 경항공모함 전투단 개념도. 해군 제공예산안 통과에 따라 군 당국이 편성했던 예산이 어느 정도 반영되면서 경항공모함 사업은 내년부터 기본설계 등을 진행할 수 있게 돼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내년 5~6월쯤 기본설계 발주를 낸 뒤 3개월 가량 이를 평가해 배를 건조할 업체를 정하고, 9~10월 정도에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어 2025년까지 기본설계를 진행하고 이듬해 건조를 시작해, 2031년쯤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식을 열고 2033년에 군에서 인수할 전망이다. 다만 공군 소속 함재기 운용 훈련과 항모 자체 전투훈련 등도 필요해 실제 전력화는 2035년 정도로 예상된다.
해군 관계자는 "경항모 사업 예산편성 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