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갈등으로 중단될 위기에 놓였던 경기도 광주시의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 조성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추진된다.
광주시, 남한산성 일대에 성지 순례길 조성
경기 광주시와 천주교 수원교구는 지난 8월 26일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광주시 제공25일 경기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오는 2025년까지 남한산성면의 와 퇴촌면 천진암 성지를 잇는 총 121.15㎞ 길이의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순례길은 총 7개 코스로 나뉘며, 1코스인 성지 순례길은 남한산성 순교지에서 시작해 광지원, 조선백자도요지, 신익희 생가, 허난설헌 묘, '위안부' 역사관, 경안천 습지 생태공원, 천진암 성지로 마무리된다.
천진암은 1700년대 정약용, 이벽, 이승훈 등이 모여 천주교 서적을 읽던 장소로,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이다.
시는 순례길을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밝히고 지난 8월 천주교 수원교구와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시는 순례길 조성과 유지 관리, 성지 순례 활성화를 위한 행정적 지원을 하고, 수원교구는 광주 지역의 천주교 역사를 추가로 발굴하는 데 힘쓰기로 했다.
"천주교만의 성지 아냐"…불교계 반발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세워진 순교자 현양비. 광주시 제공업무협약 체결 소식이 알려지자 불교계는 천진암과 남한산성이 천주교만의 성지가 아니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지난 9월 15일 광주불교사암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종교화합을 저해하는 가톨릭 성지순례길 추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고, 13일에는 조계종이 해당 사업에 대한 해명과 전면 재고를 촉구하는 민원서류를 접수하기도 했다.
이들은 "천진암은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폐사됐던 자비의 공간이며 남한산성 역시 의승군이 쌓은 호국불교를 상징하는 공간"이라며 "천주교 성지라는 점을 반영해 순례길 조성에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수원교구는 사업 중단을 결정, 시도 불교계와 소통해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주교·불교 특색 살린 사업 추진으로 갈등 봉합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 위치도. 광주시 제공시와 불교계 갈등은 양측 대표가 만나면서 해소됐다.
신동헌 시장은 지난 17일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을 만나 "광주시에 있는 문화 자산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욕심에 역사적 배경 등 세세한 부문을 살피지 못하고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불교계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원행스님도 "역사성 있는 사업을 추진할 때는 더욱 면밀히 검토해야한다"며 "각 종교의 특징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순례길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시는 조계종 등 불교계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사업 명칭을 '광주 역사 둘레길'로 변경하고, 불교 관련 스토리와 콘텐츠 발굴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원행스님과의 만남 이후 사업과 관련된 민원이 더 이상 접수되지 않고 있다"며 "추후에도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수용을 해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관계자도 "남한산성과 천진암 일대에 순례길을 조성할 경우 불교에서 반발할 것은 이미 우려했던 상황"이라며 "우리는 오히려 시측에 불교계의 의견을 듣고, 사업 방향을 정한 것인지 반문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천진암은 천주교와 불교의 아픔이 함께 공존하는 곳으로, 불교계를 배려한 시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사업 방향이 당초 계획과는 달라지겠지만 불교계와 함께 사업을 추진한다는 길은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