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어깨동무]굴곡진 가족사에 '충격'…"여순사건 기록화, 증명된 것만 그렸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편집자 주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도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의 이웃을 응원합니다. 전남CBS 위드코로나 특별기획 '어깨동무'는 특별한 나눔과 사연이 있는 광주·전남의 중소기업, 소상공인, 기관·단체, 문화예술인을 찾아 코로나로 인해 사라진 공동체 의식, 연대와 나눔의 가치를 확산하겠습니다.

박금만 화가, 할아버지 경찰 기록 보고 여순사건에 관심
사실적 그림 위해 역사학자 고증 거친 것만 붓 들어
"여순특별법 제정··이제 여순의 희망 그리고 싶어"
'불꽃, 여순희망의 역사'展 19일까지 여수 예울마루

▶ [어깨동무] IN 코너 : 여순사건을 그리는 화가들
① 15m 화폭에 담긴 73년 전 여순사건…"질곡의 역사, 양심이 누른 붓"
② 굴곡진 가족사에 '충격'…"여순사건 기록화, 증명된 것만 그렸다"
(계속)


지난 14일 여수 예울마루서 열린 '불꽃, 여순희망의 역사'전에서 박금만 작가를 만났다. 박명신 VJ지난 14일 여수 예울마루서 열린 '불꽃, 여순희망의 역사'전에서 박금만 작가를 만났다. 박명신 VJ여순사건 유족 작가로 알려진 박금만 화가(51)는 '기록'을 위한 그림에 충실한 대표적인 기록화 작가다.

박 작가는 여순사건과 관련한 책과 기록을 통해 내용을 파악한 뒤 역사학자에게 고증을 받는다. 고증 다음에는 사건의 현장에 직접 찾아가 영감을 얻는다.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나서야 붓을 든다.

"여순사건의 학살, 피, 죽음 등을 주제로는 이전 선배님들이 많이 그려왔습니다. 저는 관람객들이 최대한 쉽고 편하게 여순사건을 접할 수 있도록 사실에 입각한 그림을 그리려고 했어요. 작품의 설득력과 전달력을 위해서는 제가 먼저 여순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했고요.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작품에는 고증을 받아 증명된 것들만 담았습니다."

작가가 작품에 사실성을 가미하는데 초점을 두다 보면 상대적으로 예술성을 표현할 기회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로서 답답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활짝 미소로 답했다. 그러면서 "작품에서 저와 닮은 인물이 안 보이냐"며 반문했다.

박 작가의 말을 듣고 다시 작품을 보니 곳곳에 박 작가 자신과 닮은 인물이 숨어 있었다.

작품 '잉구부 전투'에서 한 여인에게 손을 내미는 민간인, '오동도'에서는 총살 직전 도망치는 사람, '막내 태식이'에서는 봉기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만성리로 끌려간 실존인물인 17살 태식이. 박 작가는 등장인물들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넣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순사건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서 인물들이 했을법한 포즈를 직접 취하고, 이것을 사진으로 찍어 그림으로 그렸다.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작가로서 영감을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작품 속에 제 자신을 넣어서 하나의 퍼포먼스를 펼친거죠. 단순히 등장 인물에 제 얼굴을 넣은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서 당시 사람들처럼 흰 한복을 입고 연출을 한 후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을 토대로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제가 여순사건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고, 작품과 동일시 되고 싶은 욕망이기도 했죠. 매일 여순사건 안에 사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좌익 활동', '광천 다리밑', '총살'.

이는 박 작가의 할아버지에 대한 경찰 측 기록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의 아버지가 11살이던 때 여순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여순사건으로 숨진 할아버지에 대한 흔적을 찾던 박 작가는 15년만인 지난 2018년 이 기록을 본 후 일주일간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인물화로 밥벌이 하던 그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여순사건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함구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할아버지를 대나무발에 싸고 멍석에 말아서 시신으로 모셔왔다'는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러면서 '내 이야기를 누가 소설로 좀 써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하셨죠. 공무원이던 종숙(아버지의 사촌형제)은 돌아가시기 전 제게 '너희 집안 때문에 내가 진급을 못했다'고 했어요. 저희 할머니는 여순사건으로 남편과 남동생을 모두 잃었고요. 이 모든 과정이 제가 여순작가가 되도록 결심하게 한거죠."

이때부터 그가 여순사건을 그린 작품은 모두 50여 점.

전남대학교는 지난 6월 통과된 여순특별법 제정을 기념하며 박 작가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기획했다. 오는 19일까지 여수 예울마루에서 '불꽃, 여순 희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총 47점이다.

'14연대-시작'(박금만 作). 박명신 VJ'14연대-시작'(박금만 作). 박명신 VJ박금만 작가 '불꽃, 여순 희망의 역사'전 주제작 '여순항쟁행진도-함꾸네가세'. 박명신VJ박금만 작가 '불꽃, 여순 희망의 역사'전 주제작 '여순항쟁행진도-함꾸네가세'. 박명신VJ이 중 73년 간 한번도 그림에 등장한 적 없는 14연대 군인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다. 주제작인 '여순항쟁 행진도-함꾸네 가세'에는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을 보탠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수의 심장이었던 진남관 앞에서 한 인민대회를 그린 '여수군 인민대회'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박 작가는 '항쟁'으로써의 여순사건을 증명하려고 했다.

전시관 마지막 공간에 가면 그의 주전공인 인물화에다 여순사건을 접목한 '불꽃'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다. '불꽃' 시리즈의 배경은 황폐화된 여수의 옛 모습이다. 여기에 알루미늄 갑옷을 입은 여전사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여전사는 박 작가 분신이다. 현재의 박 작가가 여전사가 돼 여순사건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여순특별법 제정의 기쁨과 그 동안의 수고, 앞으로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불꽃' (박금만 作). 박명신VJ'불꽃' (박금만 作). 박명신VJ이제 여순사건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는 박 작가. 이 같은 바람은 그가 이번 전시의 주제를 '불꽃, 여순 희망의 역사'라고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순사건 작품들은 대부분 피, 죽음, 학살 등을 주제로 했죠. 저는 여순특별법 통과 이후 여순사건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희망을 말하고 싶어요. 죽음, 반란, 학살 쪽으로만 역사를 부각시키면 닫혀진 역사가 되고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여순사건에 대해 논할 수 있는 범위 또한 넓어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박 작가는 여순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이런 전시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도 여순사건 작가로 더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순사건을 알릴 작품들은 준비돼 있으니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혼자서 다른 지역에 전시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중단된 적도 있고요. 이제는 지역 차원에서 여순사건을 알리는 목적으로 이러한 전시회를 확산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순사건 작가로 매진할 계획입니다. 작품을 통해 '여순항쟁'의 의미를 전달하고, 여순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더 노력해야죠."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