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현 씨네 12살, 7살, 5살 삼형제 모습. 정수현 씨 제공 삼형제가 만드는 '작은사회'··서로 놀이·게임 통해 사회성 배워
첫째 12살, 둘째 7살, 셋째 5살. 아들만 셋이다.
아들 셋이면 바람 잘 날 없다고들 하는데 정수현(41)씨네 삼형제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놀이와 게임을 통해서 사회성을 배워나간다. 양보·배려·인내·규칙·판단·사랑·계급·섬김·존중 등. 형제라는 '작은사회' 속에서 사회에 필요한 인성들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정 씨는 때로는 같게 때로는 다르게 각자의 개성 속에서 서로가 스며드는 모습을 볼 때면 '많이 낳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전남 순천시에 사는 정 씨는 불과 6개월 전까지 간호사였다. 3교대 근무를 했던 정 씨는 처음에는 '맞벌이 부부인데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제도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두려움과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하나, 둘 낳아 기르며 느끼는 기쁨이 더욱 커 '다둥이 부모'의 길을 걷게 됐다.
"11년 전 첫째를 낳은 지 72일 만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뒤돌아 나오는 순간을 잊지 못해요. 불안함과 미안함,걱정 때문에 일하면서도 많이 힘들었죠. 지금도 그 때의 감정들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생생해요."
가까운 곳에 친정과 시댁이 없어 남편과 오롯이 일과 육아를 함께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녹록치 않은게 현실이다. 그러나 정 씨 부부는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키워야 한다는 신념 아래 일부러 양가 도움을 받지 않았다. 정 씨가 새벽 근무를 가면 남편이 모든 집안일과 양육을 도맡았다. 정 씨는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근무 중에 유축했고 쉬는 날이면 3~4일치 이유식을 만들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어린이집이 공휴일이나 국가적인 비상사태로 휴원을 할 경우 남편이 연차를 내서 돌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상황이 안될 때가 큰 문제였다.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이 아프거나 갑작스런 경우로 어린이집이 휴원할 때 였어요. 아이가 입원했을 때는 저보다 근무 변경이 가능한 남편이 연차를 냈지만 이것도 불가능할 때는 '아이를 직장에 데려가야 하나' 너무 막막했죠. 둘 다 연차를 낼 수 없을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타 지역에 사시는 부모님까지 불러야 했죠."
식당에서 찍은 정수현 씨네 가족. 정수현 씨 제공 그럼에도 정 씨는 세 명까지 아이를 낳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며 여건이 되면 더 낳고 싶다고 한다. 세 아이가 각자 성향이 다르다 보니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달라 조율하기는 힘들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타협과 양보, 배려를 배워나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정 씨에게는 감동이고 기쁨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분명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힘든 일이예요. 하지만 기쁨은 더 커요. 이게 사는 것이고 행복이구요. 아이를 낳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나중에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저희 부부는 부부만의 인생을 재밌게 만들어 나갈거예요.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현실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하는게 저희 부부의 목표예요."
"엄마 진짜 잘하고 있어" 세자매 위로에 엄마는 오늘도 '힘'
순천시 풍덕동에는 세 딸 엄마 정은희(40)씨가 산다.
'다둥이를 키우면 어떤 점이 좋냐는' 질문에 정 씨는 "특별한 건 없다. 다 똑같아요"라고 말한다. 다둥이 엄마라고 해서 육아에 지친 목소리 모습일 줄 알았는데 정 씨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활기찼다.
가족 나들이에 나선 정은희 씨 가족. 정은희 씨 제공 정 씨 부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세 딸이 있다. 11살, 9살, 7살. 첫째를 낳은 후 둘째가 찾아왔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기쁨은 잠시 둘째가 태어난 지 4일 째 되던 날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정 씨가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암세포가 림프로 전이 된 위험한 단계여서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정 씨는 수술 후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둘째와는 모유를 한달도 못 먹인 채 이별을 했다. 아이가 엄마와 갑작스럽게 분리되고서 우유를 거부하고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 정 씨도 병원에서 내내 슬픔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핏덩이를 두고 암 수술을 받고 요양병원에 머물때는 제 걱정보다 아이 생각에 더욱 힘들었죠. 그래서인지 둘째는 제게 늘 '미안한 손가락' 이예요."
갑상선 수술 이후 호르몬 이상으로 셋째가 찾아왔다. 갑상선 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가슴 조리며 뱃속 아이의 건강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고 건강하게 출산했다.
정 씨는 셋째 딸이 3살 되던 해 그림책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는 순천에서 그림책 강사로 일한다. 셋 딸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도 펴냈다. 딸들과 시장에 간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웃고 울었던 이야기로 말이다. 이것도 뜻깊은 경험이었지만 그림책을 통한 소통은 아이들과의 유대감을 키워주고감동을 받는 시간이라고 한다.
정은희 씨 세 딸의 모습. 정은희 씨 제공 "한번은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는데 딸들이 '엄마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뭐야?'라고 물었어요. 저는 '엄마 진짜 잘하고 있어'라고 답을 했고요. 제가 너무 힘들때 아이들 앞에서 '엄마 힘들다'라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 순간 아이들이 '엄마 진짜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울컥하더라구요. 아이들이 주는 이런 소소한 감동들에 힘이 나고 행복함을 느끼죠."
정 씨는 각각의 개성과 생각이 다른 세명의 아이에게 모두 맞춰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게 힘들다 했다. 어릴 때는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면 됐는데, 지금은 마음과 생각까지 자라면서 감정적으로도 잘 헤아려줘야 하기 때문.
"각 아이들의 개성을 모두 받아주지 못하는 점이 가장 힘들어요. 하지만 늘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죠. 저는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에 맞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하길 바라요. 기적처럼 찾아 와준 아이들에게 고맙고 세 딸을 늘 지켜주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36살 큰 딸부터 13살 막둥이까지··재혼 통한 다둥이 가족 '끈끈'
급변하는 사회만큼이나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엄마·아빠로 이뤄진 가정, 한부모 가정, 재혼을 통해 재구성되는 가족 등. 과정은 다르지만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특별하고 끈끈한 인연이 된다.
김재연 씨 둘째 딸의 생일파티. 김재연 씨 제공 순천시 공무원인 김재연(56)씨는 40대 중반에 넷 째를 낳았다.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두 딸과 아들 한 명을 힘겹게 키우던 김 씨는 14여년 전 초등학교 동창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 재혼했다. 이후 46세 늦은 나이에 넷 째를 낳았다. 첫 째와 막내는 무려 23살 차이가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지에서 직장다니는 딸들은 집에 오면 막둥이 기저귀 가방을 들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다. 오랜만에 집에 오면 '엄마' 하며 문을 열고 들어왔던 아이들이 막둥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막둥아' 하며 들어온다. 사랑이 넘치는 남매의 모습이다.
"늦은 나이게 임신을 하면서 조산기와 임신성 당뇨를 심하게 겪었어요. 현미밥과 채소만 먹어야 했죠. 힘겹게 막내가 태어나면서 봄에 개나리가 핀 것처럼 집안 분위기가 화사해졌어요. 누나들과 형은 일하는 엄마를 위해 수시로 막내를 돌봐줬고 이런 자녀들로 웃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김재연 씨와 네 남매의 즐거운 파자마 파티 모습. 김재연 씨 제공
김 씨는 막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할머니랑 왔구나'라는 의사의 말에 당황할 때도 있었지만 나이 먹은 엄마·아빠를 대신에 누나와 형이 부모 노릇을 대신 하는 것을 보면 고맙고 '네 명 낳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달 결혼을 앞둔 큰 딸이 '마음 아픈일을 겪으면서도 네 남매를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엄마가 힘들었을텐데도 자신들을 위해서 밀가루 반죽 놀이, 미술 놀이 등을 해줬고, 이런것들이 모두 미술 치료, 심리 치료였다고. 자신들도 힘들었지만 엄마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요. 고생해서 키운 보람이 이런거구나 느껴요. 가족이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내는 것 만큼 큰 기쁨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