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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정말 책임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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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별들의전쟁'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사건 토대로 한 재판극
대한민국 정부, 사건 진상규명과 사과 부재한 현실 짚어
관객 배심원 참여…유죄 20명, 무죄 19명, 기권 8명

극단 신세계 제공극단 신세계 제공
지난 26일 재판극 형식의 연극 '별들의전쟁'이 공연 중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법정으로 꾸며진 이 곳에서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증언과 변론이 한창이었다.

원고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쭝'이고 피고는 민간인 학살 가해자로 지목된 대한민국. 재판에 출석한 참전군인, 전쟁포로, 간호장교, 참전군인 가족, 라이따이한 등은 베트남전에 얽힌 저마다의 기억을 풀어냈고, 양측 변호인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관객도 배심원으로 참여했다. 대한민국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역할이다. 유죄로 결론나면 대한민국은 국가 자격이 상실되고 무죄로 결론나면 국가 자격을 유지한다.

연극은 베트남 '미퐁 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형식이다. 미퐁 마을은 1968년 실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하미 마을'과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 글자씩 재조합해 만든 지명이다.

증언은 잔뜩 날이 서 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격앙되고 급기야 증인끼리 멱살잡이하는 살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참전군인은 "한국군도 피해자다. 우린 미국을 돕기 위해 파병됐을 뿐이다. 미국한텐 찍소리도 못하면서"라고 씩씩댔다. 간호장교 역시 "지금의 한미동맹은 군인들이 묵숨 바쳐 만들었다. 그런 우릴 강간범·살인자로 낙인 찍다니"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다른 시선도 있다. 한국군 성범죄로 태어나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라이따이한은 "한국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관심 없다. 제발 라이따이한이라는 이유로 나를 한국과 엮지 말아달라. 여기서도, 베트남에서도 위로받는 응우옌티쭝이 부럽다"고 울먹거렸다.

극단 신세계 제공극단 신세계 제공
연극이 증언을 통해 드러내려는 것은 그 누구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슬픈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나도 대한민국에 버림받았다"면서 "대한민국 대신 사과"하는 전쟁포로에게 응우옌티쭝이 "난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다. 당신 편하자고 하는 사과는 받고 싶지 않다. 나도, 당신도 피해자"라고 흐느끼는 장면, 참전군인의 손녀가 "할아버지는 가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국가가 살인자를 키웠고 방목했다"고 쏘아붙이는 장면 등이 연극의 메시지를 대변한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재판을 묵묵히 지켜본 또다른 존재가 있다. 무대 한 켠에 자리잡은 '미퐁 마을'의 증인나무다. 증인나무가 굽어보는 가운데 응우옌티쭝은 최후 증언했다.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겠네요. 이제 좀 기억이 나요.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숨어있던 나무 밑에 여자가 누워 있었어요. 죽었어. 얼굴을 보니까 응우옌티쭝이야.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울기만 했어요. 내가 그때 죽었으니까요. 원고는 1968년 미퐁마을에서 죽었습니다. 대체 왜 우릴 죽였습니까. 누가 죽인 건가요? 그리고 왜 여기 안 왔어요?"

연극은 2018년 4월 서울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을 모티브로 했다. 당시 주심을 맡은 김영란 전 대법관은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의 성격을 띠는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부 차원에서 민간인 피해 사실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피고 대한민국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이날 재판의 배심원 평결은 유죄 20명, 무죄 19명, 기권 8명. "이로써 대한민국은 국가 자격을 상실합니다." 재판장의 선고가 내려지자 관객들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모래사장과 포퓰러 나무들이 하미 학살을 가슴 깊이 새겨 기억할 것이다. 한 줄기 향이 피어올라 한 맺힌 하늘에 퍼지니 저세상에서는 안식을 누리소서." (-민간인 학살 피해지역 '하미 마을' 비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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