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앙의 '조각가들', 학고재 제공연두, 파랑, 분홍, 보라, 하늘색 등
알록달록한 근육과 뼈대 모습의 인체가 각기 다른 포즈를 하고 있다.
엎드려 뭔가를 만지는 모습, 작업대 위에 올라 허리를 구부리고 뭔가를 잡으려는 모습, 발판에 올라 허공을 잡고 있는 모습 등 각자 위치에서 작업에 열중해 있다.
실제 인체 구조와는 다르게 형태에 변형을 주고 밝은 채색으로 역동성을 더했다.
이 작품은 최수앙(46)의 '조각가들'. 뭔가를 제작하는 모습이지만 작업 대상물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이들이 만드는 조각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수앙 작가의 개인전 'Unfold(펼치다)'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29일까지 열린다.
피부 주름까지 그대로 재현한 극사실주의 조각으로 주목받은 조각가 최수앙은 2018년 여름 양손목 인대가 끊어져 외과 수술을 받았다. 1년 넘게 작업을 중단하고 재활 기간을 거치며 기존 작업 방식을 되돌아봤다.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본질을 살리는 조각들을 실험하며 변화를 시도하게 됐다.
조각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양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채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최 작가는 "수술로 인해 물리적으로 손이 묶이면서 습관적이었던 것들을 못 하게 되었고, 오히려 '열린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열린 생각은 그의 작품 세계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
최수앙 작가가 개인전 'Unfold'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올해 제작한 작품 '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그는 "사실적으로 재현된 형상은 그 자체가 갖는 상징과 서사가 너무 강했다. 그간 작업과 거리를 두고 열린 상태로 해부학 책을 통해 인체 구조를 공부하고 근육을 뜯어봤다"며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정해져있는 시스템 너머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는 피부를 벗겨내고 근육과 골격만 남은 외팔 조각 작품 '손'이 관객들을 맞는다. 16세기부터 미술 해부학 교육에 사용해왔던 인체 근육·골격 모형 '에코르셰(écorché)'를 활용하면서 기초로 돌아가 만든 작품이다.
마치 색동 저고리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종이에 다양한 도형을 그려 전시장 곳곳에 세운 '언폴디드' 연작. 평면 작품이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어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서 상상의 여지를 남겼다. 앞뒷면은 서로 연결된 듯하지만, 각각 독립된 형태로 존재한다.
원치않던 '쉼'을 통해 과거의 몸에서 벗어나 변화의 바다에 뛰어든 최 작가는 철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준비 중인 새로운 작업을 내년에 선보일 계획이다.
최수앙의 '언폴디드 10G', 학고재 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