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올림픽' 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독일과 8강전에서 신유빈이 득점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17살 막내, 신유빈(대한항공)의 첫 올림픽이 마무리됐습니다. 한국 탁구 역대 최연소 올림픽 출전 기록, 비록 원했던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스타 기근으로 침체에 빠져 있던 한국 탁구에 희망을 안겼습니다. 앳된 얼굴과 목소리에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서 싸운 '탁구 신동'의 투지는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됐을 겁니다.
신유빈은 오늘(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독일과 8강전에 나섰지만 아쉬운 패배를 안았습니다.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최효주(삼성생명) 등 언니와 함께 여자 단체전 9년 만의 4강 진출을 노렸지만 2 대 3 역전패로 대회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출발은 좋았습니다. 신유빈은 전지희와 호흡을 맞춘 1복식에서 샨 샤오나-페트리사 솔자에 3 대 2(9-11 11-8 6-11 11-6 11-3)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신유빈은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로 전지희의 예리한 백핸드와 환상 조합을 이뤘습니다.
대표팀은 2단식에서 최효주가 상대 에이스 한잉에 완패하면서 승부가 원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맏언니 전지희가 3단식에서 솔자에 역시 완승을 거두면서 대표팀이 다시 리드를 잡았습니다.
4단식에 나선 신유빈. 여기서 승리하면 2012 런던 대회 이후 9년 만의 올림픽 4강행이 결정되는 경기였습니다. 끈질긴 수비로 끊임없이 커트로 공을 올리는 한잉에 신유빈은 초반 고전하며 1게임을 6 대 11로 내줬습니다. 그러나 한잉의 구질에 적응한 듯 접전을 펼쳤습니다.
'피나도 괜찮아!' 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독일과 8강전에서 신유빈이 한잉과 4단식 경기 중 긁힌 상처에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특히 3 대 4로 뒤진 가운데 신유빈은 한잉의 공을 받는 과정에서 오른 팔꿈치 부근이 탁구대에 긁히면서 피가 났습니다. 지혈을 위해 치료를 받은 신유빈. 이게 자극이 된 걸까요? 신유빈은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이 살아나며 듀스 접전 끝에 12 대 10으로 2게임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한때 단식 세계 6위까지 오른 38살 베테랑. 귀화해서도 근 10년 동안 독일을 이끈 한잉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을 이끌었습니다. 노련한 한잉의 경기 운영에 말린 신유빈은 3게임을 내준 데 이어 4게임에서도 마지막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회심의 카드 신유빈이 지면서 분위기가 넘어간 대표팀은 최효주도 마지막 5단식을 내주며 패배가 확정됐습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 나선 신유빈은 언니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8일 전 개인전 단식 3회전에서 졌을 때만 해도 신유빈은 울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은 진했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단체전에 대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러나 그 단체전까지 마무리되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진 겁니다.
신유빈은 인터뷰 내내 안타까운 한숨을 많이 내쉬었고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경기 소감에 대해 "부족한 거 많이 느낀 시합이었고 단체전에서 내가 단식을 이겨서 끊었어야 했는데 못 잡은 거에 대해 언니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훌쩍였습니다.
경기 중 상처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라면서 "경기를 어떻게 할 건지 생각했고, 지희 언니도 잘 잡아줬는데 마무리 못 해서 그냥 다 미안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첫 올림픽 출전에 대한 소감도 "크게 다르다고 느낀 건 없는 것 같고, 나라를 대표해서 나와 더 책임감이 있었는데 하~ 그냥 마지막에 졌다"면서 "응원해주신 분들도 많고 샘들(감독, 코치 선생님)도 같이 해왔는데 성적으로 보답을 못 해서 죄송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신 덕분에 국내 탁구 인기가 높아졌다는 말에도 "그럼 좀 성적을 냈으면 좋았을 텐데 못 내서…"라고 아쉬워 했습니다. 탁구 선수 출신 아버지 신수현 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대해서도 "응원해주셔서 고맙고 부모님도 계속 도와주셨는데 성적으로 보답해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해요' 신유빈이 3일 독일과 도쿄올림픽 단체전 8강전에서 아쉬운 패배를 안은 뒤 눈물을 글썽거리며 취재진의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도쿄=노컷뉴스하지만 신유빈이 미안하고 죄송해야 할 것은 1도 없습니다. 17살 막내로서 충분히 역할을 해냈습니다. 물론 메달을 따내면 더 좋았겠지만 한국 탁구의 희망을 키웠다는 점에서 첫 올림픽의 값진 성과를 거둔 겁니다. 리우올림픽에 나섰던 전지희도 "유빈이가 첫 올림픽이라 경험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라면서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유빈은 한국 탁구의 인기를 회복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미 5살부터 탁구 신동으로 주목을 받은 신유빈은 중학생 때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과 이번 올림픽 최연소 출전으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대회 참가를 위해 출국할 때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신유빈은 코로나19 의료진을 연상하게 할 만큼 두터운 방호복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투명 안면 보호대와 마스크도 두 겹을 낀 신유빈은 "더워 죽겠지만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 낫다"며 밝게 웃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아버지에게 사 달라고 했답니다.)
무엇보다 신유빈은 단식 2회전의 명승부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신유빈은 자신보다 41살이나 많은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렌에 대역전승을 거두며 국내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니시아렌은 역시 중국 귀화 선수로 올림픽에만 5번 나선 베테랑. 여기에 동호인들 사이에서 사파(邪派)로 불리는 이질 러버(핌플)를 쓴 라켓에 왼손 펜홀더의 까다로운 구질을 자랑합니다. 신유빈도 첫 게임을 2 대 11로 내주며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적응하며 2게임을 접전 끝에 무려 19 대 17로 잡아내면서 4 대 3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냈습니다.
국내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신유빈과 58세의 룩셈부르크 니시아렌의 도쿄올림픽 여자 단식 2회전 경기 모습. 연합뉴스
경기 후 니시아렌도 신유빈이 탁구 스타가 될 것이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비록 3회전에서 신유빈은 2 대 4로 졌지만 세계 15위의 강호 두호이켐(홍콩)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단체전에서도 상대 노련함에 밀렸지만 17살의 패기로 맞서며 다음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신유빈도 "까다로운 선수들이랑 해서 게임이 쉽게 풀리지 않았는데 쉬운 경기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려운 선수들이랑 많이 해보니까 좋은 경험이었던 거 같다"고 이번 대회를 돌아봤습니다. 이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한국 가서 (올림픽을) 경험 삼아서 더 좋은 플레이를 하도록 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한숨과 눈물을 짓던 신유빈은 방호복 얘기가 나오자 그제야 웃음을 지었습니다. 귀국할 때도 방호복을 입을지 묻자 신유빈은 "입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라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막내에게 짊어진 에이스의 부담감을 비로소 떨친 듯한 미소. 신유빈의 다음 올림픽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입국 때도 입을까요?' 신유빈이 지난달 19일 도쿄올림픽 참가를 위해 출국 비행기에 오른 모습. 노컷뉴스P.S-알려진 대로 신유빈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년소년단(BTS)의 열혈 팬입니다. 이번 대회 기간 니시아렌과 경기 후 신유빈은 BTS로부터 직접 응원 메시지도 받았습니다. BTS 팬 커뮤니티플랫폼 위버스에 신유빈이 "방탄소년단 신곡을 자주 들으면 컨디션이 좋아진다"고 인터뷰한 방송 뉴스 화면이 올라왔는데 BTS 멤버 뷔가 자신의 아이디로 '파이팅'이라는 댓글과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으로 응원한 겁니다.
이에 신유빈은 "그 경기 뒤 버스 타고 선수촌으로 가고 있는데 메시지를 올린 게 떴다"면서 "'설마 나한테 보낸 건가?' 했는데 내 얘기여서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고 흥분한 모습이었습니다. "SNS에도 올리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경기가 있어서 들뜰까 봐 스스로 (기분을) 낮췄다"고 했지만 우상에게 받은 메시지, 날아갈 듯했을 겁니다.
우연인가요? 과연 신유빈은 BTS의 찐팬이 맞나 봅니다. 공교롭게도 신유빈은 독일과 단체전 경기 중 피를 흘렸습니다. 당연히 경기 전부터 몸을 풀며 땀을 흘렸고, 경기 후에는 진한 눈물도 흘렸습니다. BTS의 노래 중에 '피 땀 눈물'(Blood Sweat & Tears)이라는 히트곡이 있습니다. 물론 가사 내용과는 관계 없지만 신유빈은 BTS의 노래처럼 오늘 영광의 상처로 인한 피와 값진 땀, 후련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신유빈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은 향후 한국 탁구의 대들보로 자라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겁니다. 아마도 신유빈은 한국 탁구, 아니 세계 탁구계의 BTS가 되지 않을까요?
신유빈이 도쿄올림픽 여자 단식 3회전에서 15위의 강호에게 진 뒤 단체전 선전을 다짐한 모습. 파리올림픽에서도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