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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라이와 빈과일보는 어떻게 反中을 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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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에 충격
1990년 미디어 사업 시작, 1995년 빈과일보 창간
빈과일보 초기엔 선정적 보도로 논란
1차 보안법 제정 저지 이후 베이징 비판
2019년엔 반중시위 와중에 미국 방문

홍콩 반중매체 빈과일보.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캡처

 

대표적인 홍콩의 반중매체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 그는 빈과일보가 24일 마지막 신문을 내고 문을 닫는 현장을 지키지 못했다.

2019년 반중시위 기간 두 차례의 불법시위에 연루된 혐의로 징역 20개월을 선고 받고 감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홍콩보안법으로도 기소돼 형량이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미 라이는 중국 광둥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2살 때 홍콩으로 도망쳐 공장노동자에서 30대에 지오다노를 창업해 아시아 굴지의 의류 기업으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중국 정부의 유혈진압에 충격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각성된 그는 이듬해 넥스트 미디어 그룹을 설립하고 넥스트 매거진을 발행하면서 언론계에 진출했다.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넥스트 매거진은 본토 반환 임박을 걱정하는 홍콩의 독자들과 빠르게 연결됐다. 넥스트 매거진의 성공에 힘입어 1994년에는 지오다노를 떠나 미디어 사업에 집중해 1995년에 빈과일보를 창간한다.

그러나 빈과일보는 초기에 선정적인 보도와 가십성 기사로 여러 차례 논란을 자초했다. 1995년과 2006년 사이에 음란물 조례 등에 따라 최소 56회 유죄 판결을 받을 정도였다.

홍콩 빈과일보 2021년 6월24일 마지막 신문. 연합뉴스

 

빈과일보의 논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둥젠화 행정장관 때부터다.

당시 홍콩정부가 오늘날 홍콩보안법과 유사한 반전복법을 시행하려 하자 반대의 선봉에 섰다. 홍콩의 1차 보안법 제정 시도는 2003년에 50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대의 물결에 밀려 실패했는데 여기에 빈과일보가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지미라이와 빈과일보는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송환법 반대시위 때도 시위대 편에 서서 베이징 중앙정부를 통렬히 비판했다.

중 매체 사주 지미 라이. 연합뉴스

 

특히 2019년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속에서 지미 라이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나 중국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다.

지난해에 5월 중국 전인대에서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기로 의결했을 때는 #TrumpSavesHK 캠페인을 시작해 미국 대통령에게 이를 막아달라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미라이는 홍콩 보안법이 시행된 이후인 8월에 체포됐고 12월에는 보석도 불허돼 구금된다. 이후 20개월의 형을 확정받았다.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감옥에 훨씬 오래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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