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사망 사건 피의자들.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나체로 숨진 채 발견된 피해자가 지난해 11월 남루한 행색으로 음료수를 훔치다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함께 살던 친구들에 의해 감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숨졌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 양재파출소는 지난해 11월 4일 '음료수 1병을 훔쳐갔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절도한 피해자 A씨의 모습이 한 눈에도 초라해 보였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 직원들이 현장에 출동해보니 늘어진 옷을 입고 옷에 지저분한 것들이 묻어있는 등 행색이 남루하더라"며 "한 마디로 불쌍해보였다"고 말했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0.2도로 때이른 한파가 찾아온 날이었는데 당시 피해자 A씨는 반팔 차림이었다.
당시 신고를 했던 편의점 주인도 막상 처벌은 원치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편의점에서 빵을 먹고 있던 A씨를 임의동행으로 파출소에 데리고 온 것으로 파악됐다. 편의점 주인이 '안타까워서' 빵을 건넸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A씨의 '친구' 2명이 파출소를 찾아왔다. 바로 A씨를 마포구 연남동 오피스텔에 가두고 굶기는 등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안모(20)씨와 김모(20)씨다.
이들은 경찰 측에 "우리한테 인계해 달라"며 본인들이 A씨를 데리고 가겠다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A씨 몸에서 폭행 흔적을 발견한 파출소 경찰관은 "안 된다"고 거부한 뒤 A씨의 연령 등을 감안해 대구에 있는 A씨 부친에게 연락해 A씨를 인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한형 기자
경찰 관계자는 취재진이 A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자 "당시 배가 고파서 계산도 안 하고 꺼내서 먹은 거고, 먹으니까 (주인 입장에서) 신고를 한 것"이라며 "친구들(안씨·김씨)한테 또 갔구나" 하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아버지와 대구로 내려가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 경찰 조사를 받고 피해진술조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 아버지가 안씨와 김씨를 지난해 11월 이미 상해죄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은 피의자들의 주거지 관할권 문제로 같은 달 26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이첩됐다.
올 1월 말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한 안씨와 김씨는 A씨의 피해신고 사실에 앙심을 품고 3월 말 A씨를 서울로 데려와 함께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경찰의 연락을 받은 A씨에게 '지금 지방(대구)에 있다' 등 허위진술을 하도록 강요하고, 결국 고소를 취하하게 압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지난 13일 새벽 6시쯤 이들과 함께 지내던 마포구 연남동 소재 오피스텔에서 나체로 숨진 채 발견됐다. 안씨와 김씨의 상해죄 혐의를 수사한 경찰은 지난달 27일 사건을 불송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포경찰서는 안씨와 김씨를 중감금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해 살인죄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다"며 이들의 영장을 발부했다. 두 사람은 A씨에게 물류회사의 일용직 노동을 강요하는 등 수백만 원을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연남동 오피스텔로 이사 온 지난 1일에는 A씨가 혼자 걸을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르러 두 사람이 A씨를 부축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A씨는 그날 이후 오피스텔을 나오지 못했다. 그는 숨질 당시 34kg 정도의 극심한 저체중에 영양실조로 몸에 폭행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