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종민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종민 기자
		
	
	 
 
더불어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특별한 개인사'를 연이어 공개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대중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저의 10대는 아버지 원망하며 필사적으로 좌충우돌하던 날들"이 지사는 노동절 다음날인 지난 5월 2일, 생애 첫 노동을 '배달'로 시작하는 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하며 자신이 소년공 출신임을 드러냈다.
			
		
그는 "40년전 열다섯살 소년공도 그랬다. (컨베이어) 벨트 속에 손이 말려들어갔지만, 누구도 노동법을 설명해주지 않았고 회사는 제가 부주의했다는 얘기만 반복했다"면서 "치료받는 동안 월급은 커녕 다친 손을 붕대로 싸매고 일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일하다 다치거나 죽지는 않게, 청년을 기만하지 않는 어른은 되어야 다른 사회개혁의 과제도 함께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10대 시절, 아버지와의 불편했던 관계를 담담하게 소개했다.
			
		
이 지사는 먼저 "공부 좀 해보겠다는 제 기를 그토록 꺾었던 아버지이지만 사실은 학비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청년이기도 했다"면서 "저의 10대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필사적으로 좌충우돌하던 날들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을 한 명의 인간으로 연민하게 됐다'며 아버지와의 화해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고시생 시절 말없이 생활비를 통장에 넣어주시고, 병상에서 전한 사법시험 2차 합격 소식에 눈물로 답해주셨다. 그때서야 우리 부자는 때늦은 화해를 나눴다. 제 청춘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던 순간이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이 지사는 지난해 3월 작고한 모친 구호명 여사에 대해서도 "떠나시기 직전까지 자식 형제들 걱정하던 어머니, 이제 제 꿈에 나타나 걱정 안 하시도록 잘 하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학원비 받지 않던 '검정고시 학원 선생님' 잊지 못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종민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종민 기자
		
	
	 
 
5월 14일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정한 공수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군사독재시절의 반인권적 학교교육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그는 "70~80년대의 학교에는 아련함과 씁쓸함의 기억이 교차한다. '나'의 잘못이 없어도 단체기합을 받거나, 별 이유도 없이 그냥 매를 맞기도 했다"며 "군사독재의 질서와 강자에게 순응하는 법을 국민학교에서 처음 배웠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그 엄혹했던 시대의 끝자락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굴종과 반(反)교육의 벽을 부숴 참교육의 꽃을 피우려 피흘렸고 교직에서 쫓겨나셨다"며 "해직교사 복직이 민주주의가 전진하는 상징이 된 것은, 90년대 초반 그 선생님들이 교정에 돌아오면서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그러면서 공수처가 '해직교사 특별채용 사건'을 '1호 사건'으로 다루기로 한 것과 관련해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나 말할 법한 일"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그는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도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이어갔다.
이 지사는 특히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돈이 없어 더 학원을 못 다닌다'고 하자, 흔쾌히 이 지사의 동생까지 무료로 학원을 다니게 해 준 성남 성일학원 김창구 선생님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선생님이 주신 것은 무료 학원비 만이 아니었다. 가장 생경했던 것은 기름밥 먹던 가난한 소년이 사회에서 받아본 적 없던 따뜻한 눈빛이었다. '재명아 너는 가능성이 있어', '너는 다른 놈이다. 널 믿어라' 무심한 듯 던지는 말씀마다 내심 제가 뭐라도 된 양 마음이 화사해졌던 기억이 난다"
		
		
이 지사는 김창구 선생님의 가장 큰 가르침에 대해서는 "'그 사소해 보이는 애정이 타인의 마음을 얼마나 환하게 할 수 있는지 일깨워줬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광주민주시민을 '폭도'로 비난하기도…5월 광주는 나의 '사회적 어머니'"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인 5월 18일에는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과거 자신의 삐뚫어진 인식에 대한 고해성사가 이어졌다.
그는 "80년 5월, 저는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노동자였다. 제가 들은 5.18은 '북한군과 폭도들의 폭동으로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 였다"며 "모든 언론이 그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랬기에 저도 동조해 '폭도'들을 비난했다"고 참회했다.
이어 대학에 가서야 진실을 알게 된 후 "2차 가해에 대해 참으로 수치스럽고, 죄송하고,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며 "이런 부끄러움이 저의 인생 경로를 바꿨다"고 술회했다.
		
		
이 지사는 특히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한 것도,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던 한 청년을 공정사회 대동세상을 꿈꾸는 공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도 5월 광주"라며 "그래서 5월 광주는 이재명의 '사회적 어머니'"라고 말했다.  
이 지사측 인사는 "이재명이 걸어온 '흙수저 삶'의 궤적은 그로 하여금 서민들의 고통에 더 크게 공감하도록 했다"면서 "그가 개인사를 간간이 꺼내는 것은 힘겨운 시기를 겪는 소시민의 아픔을 위로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