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임혜숙·해양수산부 박준영·국토교통부 노형욱 장관 후보자. 윤창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임혜숙·박준영·노형욱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오는 14일까지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들 거취 문제가 또다시 여의도로 넘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과 최대한 협력할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민주당 지도부는 임명 강행 반대를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후보자들의 거취와 관련해 명확하고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與 원내대표단 "野 최대한 이해시킬 것"
윤창원 기자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를 재송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여야가 합의 불발로 애초 시한인 지난 10일까지 청문보고서를 청와대에 보내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었다.
문 대통령이 여야에 약 사흘의 시간을 다시 주면서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국민의힘을 최대한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12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단독 처리한다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야당과 최대한 협력하려고 애를 써야한다"며 "장관 후보자들의 의혹 자체가 큰 것도 아닌데 야당이 발목잡기를 하고 있으니 최대한 이해 시켜야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단은 장관 후보자 3인의 자질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각 상임위원회 간사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결과를 보고했는데, 부적격 내용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자칫 낙마자가 나올 경우 문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 절차도 남아있고,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일정도 예정돼 있어, 민주당이 향후 야당의 협조를 얻으려면 지금 시간을 갖고 협력하는 모양새를 유지해야하는 상황이다.
이에 민주당 윤호중·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해 '임·박·노' 문제와 총리 후보자 인준 등에 대해 논의했고 오는 14일까지 만남을 이어가기로 했다.
◇송영길 대표는 침묵…당대표·원내대표 모두 靑 눈치보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그런데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원내대표단과는 생각이 조금 다른 분위기다.
애초 송 대표 측은 '임·박·노' 문제와 관련해 "민심을 경청하고 반영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사실상 여론을 고려해 3명의 후보 중 한두 명은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의지였다. 앞서 송 대표는 지난 2일 취임과 동시에 '당 주도의 당청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정작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이들 후보자에 대한 임명 강행 의지를 피력하자 송 대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된 모양새다.
송 대표는 문 대통령의 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 이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송 대표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국회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집중 논의하지 않겠느냐"며 "당 대표 차원에서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당대표도 원내대표도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서도 쓴소리…당 의사결정 구조 비판도당 지도부가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면서 당 내부에서는 비판론이 터져나오고 있다.
12일 열린 송영길 대표와 재선 의원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장관 후보자 3인에 대해 쓴소리가 터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계인 김병욱 의원은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 임혜숙 후보자는 여성 후보자라는 점에서 보호받아야 할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결단이 필요하다"며 "어제 대통령 기자회견은 아쉬웠다. 당 지도부가 대통령과는 별개로 결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응천 의원은 "마지막 1년이라도 당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대선 전까지 청와대 요청에 따라간다면 대선에 플러스 요인이 될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민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영길 대표, 윤호중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임혜숙·박준영 장관 임명 반대를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 머뭇거리거나 지체해서는 안 되고 최대한 분명하고 단호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에 미룰 일도 아니다. 그것이 민심"이라고 지적했다.
당에 쓴소리를 냈던 일부 초선 의원들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총회에 참석했던 한 초선 의원은 "의총에서 상임위 간사들이 각자 상임위 소속 장관 후보자들은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어버리니 이후 대놓고 반기를 들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당내 의총 분위기가 문제였던 것 같다"고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비판했다.
한편, 인사청문회법상 대통령의 재송부 요청 기한까지도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내지 못한다면 대통령은 장관을 그대로 임명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이번에도 국회 합의 없이 '임·박·노' 후보자를 임명한다면, 현 정부 들어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32명으로 늘어난다.
그래픽=김성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