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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그리는 그림은 싫증만 난다” …여전히 ‘동심’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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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갤러리서 '오세열: 은유의 섬'
5월 5일까지

오세열 화백, 학고재갤러리 제공

 

“잘 그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잘 그리는 그림은 싫증만 난다. 이제 어른이 된 몸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순 없다. 난 흉내만 내는 것”

“아이들은 생각하면서 낙서하지 않는다. 신이 나서 하고 싶은대로, 손이 가는 대로 끄적인다. 가장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그 안에 있다”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5일까지 열리는 오세열(76) 개인전 ‘은유의 섬’에는 동심 가득한, 장난끼 있는 작품들이 펼쳐진다.

오세열의 '무제'(2018), 학고재갤러리 제공

 

검은색 칠판에 빼곡히 숫자를 적어 놓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반복해서 적혀 있다. 물감을 여러 차례 덧칠해 바탕을 마련한 다음, 뾰족한 도구로 긁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 화백은 “캔버스를 몸이라고 생각하고 못이나 면도날 같은 도구로 긁어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아픔과 슬픔, 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오세열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굴곡진 현대사를 경험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이 드러나는 어두운 시대를 살며 내면의 순수함을 탐구해온 그는 동심이 깃든 그림으로 세상을 ‘은유’한다.
오세열의 '무제'(2016-2020), 학고재갤러리 제공

 


어딘가 완전하지 않은 인물화는 소외된 현대인을 위로하는 치유의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오 화백은 “변방과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 부모를 떠나 방황하는 아이들. 전쟁 후의 세상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았다. 마음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들”이라며 “그런 아이들의 형상으로부터 외로움과 쓸쓸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고 했다.

화면 위에는 보잘것없는 일상의 오브제들을 활용한 콜라주가 더해진다. 길에서 주운 플라스틱 칼, 돌멩이, 단추 등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오 화백은 “누군가 버린 것들을 주워서, 의미 없는 조각들에 역할을 주고 특별한 존재감을 찾도록 돕는 일”이라며 “뜻밖의 것을 찾는 재미 덕에 나는 기쁘고, 그것들이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도우니 사물들도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이와 노인의 마음이 공존하는 노(老)화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회화 24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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